제주산 양배추. (사진=제주투데이DB)
제주산 양배추. (사진=제주투데이DB)

기후변화가 제주농업을 강타하고 있다.

지난해 제주지역 연평균 기온은 16.7℃로 2010년보다 1.1℃ 상승하였다. 일 최고기온이 역대 최고를 기록한 이상고온 현상도 1월 7일 23.6℃, 11월 17일 26.7℃ 등 세 차례나 나타났다. 6월은 이른 폭염이 한 달 내내 지속되면서 폭염일수가 최고치를 경신했다. 기상특보 발표 횟수도 2010년에 비해 22.4% 증가하였다. 장마는 49일이나 지속되어 역대 최장기간을 기록했고, 건조특보는11회나 발령되었다.

이와 같은 이상기후로 농업재해보험 가입농가(21,858호)의 73.3%(16,029호)가 556억원의 보험금을 지급받았다.

통계로 나타나지 않는 피해는 더 심각하다. 기상재해로 습·풍·병·충해를 입은 농작물보호를 위해 농약이 살포되고, 대파하면서 화학비료가 더 뿌려진다. 화학비료·농약의 과도한 살포는 토양생태계를 파괴하고 저항성 해충을 증가시켜 더 많은 비료와 농약을 투입하게 하는 악순환으로 이끈다. 건조특보가 발생하면 동시에 지하수를 사용하기 때문에 지하수 수위가 낮아지고 해수가 유입되어 지하수를 사용하지 못하는 현상도 발생한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체결로 시장이 개방되면서 제주농업은 고투입 농업으로 전환되었다. 과수농사는 한라봉, 천혜향 등 만감류와 망고, 용과 등 아열대과일로 품목을 다양화하고, 온주감귤도 시설, 비가림 등 연중 출하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밭농사는 보리-콩·고구마 위주의 윤작체계에서 질소비료와 수분 요구량이 많은 양배추, 무, 브로콜리 등의 연작체계로 바뀌었고, 비닐멀칭 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그 결과 하우스면적은 경지면적의 9.6%를 넘어가고 있고, 농약 사용량은 1995년 5071톤에서 2019년 1만1287톤, 비료 사용량은 1995년 6만7686톤에서 2019년 24만1806톤으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농업용지하수 관정 수도 1994년 1554개소에서 2020년 3064개소로 많아졌고, 질산성질소 검출치가 28.3mg/ℓ가 나오는 등 지하수 수질기준(10.0mg/ℓ)을 초과하는 관정이 생겨나고 있다.

농약과 비료 사용량에 있어 육지부는 감소하는 추세인데 반해 제주도는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단위면적당 사용량도 육지부와 비교해서 비료인 경우 1.6배, 농약인 경우 2.3배가 넘는다. 농업용수의 95.1%를 의존하는 지하수는 고갈되고 오염되고 있다,

시장 개방 후 제주농업은 고투입농업으로 경쟁력을 확보해왔지만 기후위기의 대응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고, 그 결과가 피해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기후위기가 심화될수록, 탄소중립농업정책이 가시화될수록 탄소발자국이 농산물가격을 결정하는 중요요소로 부상할 것이다. 따라서 환경적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경쟁력 확보차원에서도 생태적 먹거리 생산·순환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바로 지금이 1970년대부터 이어져온 ‘녹색혁명농업’의 틀을 생태농업의 틀로 바꿀 골든타임이다.

그 전환의 첫걸음은 먹거리 자급률을 높여 먹거리 선순환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다품종 소량생산 농업에 대한 지원을 통해 풋고추, 깻잎, 고구마, 배추, 쌈채소 등의 자급률을 높여야 푸드 마일리지를 줄일 수 있다.

제주연구원 안경아 책임연구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제주산 농산물 생산액 1조6539억원(2019년 기준) 중 도내소비 비중은 18.8%에 불과하다. 고구마, 깻잎, 배추, 풋고추, 오이, 상추, 시금치 등은 제주가 적지임에도 육지부에서 대부분 들어온다. 또한 김치, 된·간장, 식용유, 두유, 발효주 등의 농산가공품은 제주산이 거의 없다. 심지어는 제주라는 브랜드 파워로 팔리는 오메기떡, 보리빵, 제주맥주 등에도 제주산 원료가 들어가지 않는다.

이처럼 자급률이 낮기 때문에 푸드 마일리지는 길어지고, 제주도민은 유통비용을 더 부담하면서도 신선하지 않은 식재료를 구입해야한다. 또한 소면적 재배작물의 감소는 월동채소의 과잉생산으로 이어져 산지폐기가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15일 농협중앙회제주지역본부에서는 한국외식업중앙회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제주농업과 외식업의 상생발전을 위해 협력하기로 하였다. 또한 ‘낭푼식당’, ‘한라산아래첫마을’ 등 제주산 식재료 사용을 우선으로 하는 47개 업소를 지정하여 Go!Go!Go!(제주산 먹거리 찾아보고, 먹어보고, 소문내고)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필자는 로컬푸드의 방향을 외식업에서 찾은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제주도는 연 16백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고, 미식여행이 관광트렌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Go!Go!Go!운동이 성공하려면 최소한 다섯 가지가 전제되어야 하고, 이 전제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이 운동은 보여주기식 행사의 하나로 남을 것이다 .

첫째는 흑돼지구이, 고기국수, 성게국, 옥돔구이, 자리돔물회 등을 넘어서는 다양한 로컬푸드 메뉴가 개발되어야 한다. 구좌의 당근케이크처럼 미식가들의 눈과 입을 사로잡을 수 있는 신선한 제주산 재료로 만든 독특한 메뉴가 전파되어야 한다.

둘째는 고구마, 풋고추 등 제주에서 재배되지 않는 작물들을 공급할 수 있는 생산자조직을 구성하여 직거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제주산 식재료를 구입하기도 힘든데 로컬음식점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셋째는 제주산 신선편이식품을 생산·유통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음식점에서 마늘장아찌 등의 밑반찬을 직접 만들어 제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넷째는 제주음식을 어떻게 알릴 것인가 하는 문제다. 알지 못하면 찾을 수가 없기에 먹을 수가 없다. 덴마크에 가면 코페하겐 스트리트 푸드 마켓이 있다. 셰프들이 직접 참여하여 독특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음식거리다. 국적불문의 식재료를 사용하는 동문시장 야시장에서 주말마다 제주산 식재료만 사용하는 음식경연대회를 개최하고 이를 SNS을 통해 알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음식점 원산지표시대상 품목 이외에도 원산지를 표시하고, 확인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농수산물의 원산지표시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소·돼지·닭·오리·양·염소 고기와 밥·죽·누룽지에 사용하는 쌀, 배추김치의 원료인 배추와 고춧가루, 두부류·콩비지·콩국수에 사용하는 콩만 음식점에서 원잔지를 의무적으로 표시해야 하는 농축산물이다.

따라서 음식점 주인이나 소비자들은 밑반찬 등의 원산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외식업체 스스로가 제주산 식재료에 원산지를 표시하고, 소비자는 로컬푸드를 적극적으로 찾아서 먹는 문화를 만들 필요가 있다.

필자는 제주농업이 지속하려면 토양생태계와 지하수가 보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콩, 녹두, 보리, 고구마, 메밀, 참께, 조 등 비료요구량이 적은 작물을 월동채소와 윤작하는 작부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나아가 친환경농업이 확산되어 제주도 전체가 생태농업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집약형 축산으로부터 탈피해야 한다.

하지만 그 전환의 열쇠는 먹거리를 선택하는 소비자에 손에 쥐여 있다. 내가 어디에서 어떻게 생산된 음식을 먹는가에 따라 제주의 미래는 다른 길을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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