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환갑의 나이로 한국대중가요협회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가수 한성운 씨. (사진=박소희 기자)

몇 년 전 방영된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내가 내년이면 오십이다. 오십. 놀랍지 않냐. 인간이 반세기 동안 아무것도 안 했다는 게. 죽어라 뭘 한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게 없어. 아무리 뒤져봐도 없어.”

고령화 사회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을 앞둔 한국. 지나온 생 먹먹하고 가야할 생 막막한 건 드라마 인물만은 아닐 것이다. 청춘을 갈아 죽어라 달리면 중년엔 나아질 줄 알았는데, 막상 밑빠진 독처럼 텅 빈 것 같다고 호소하는 중년들. 그런 이들에게 “고이 간직한 꿈에 도전하라” 말하는 이가 있다. 올해 환갑의 나이로 한국대중가요협회 신인상을 수상한 한성운 씨.

제주 성산읍 수산리에서 태어난 한성운씨는 “환갑이라고 하지 말고 중년이라고 해줘요. 중년. 살아보니 인생 별 거 없더라. 요즘은 3개월 안 보이면 양지공원(제주시 추모시설) 갔다고 한다. 쉰 넘으면 언제 부를 지 모르니 아등바등 살 것 아니라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고 했다. 

제9회 한국가요
제9회 한국대중가요발전협회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가수 한성운 씨. (사진=한성운 제공)

9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한 씨도 아등바등 살았다. 중학교때부터 가수의 꿈을 키웠던 한 씨는 노래대회만 나가면 1등을 했지만 어머니에게 가수는 그저 ‘딴따라’였다. 상품으로 세숫대야도 받고, 김치통도 받고, 야외 전축도 받아왔지만 한 번도 달가와한 적이 없다. 한 씨의 전폭적인 지지자였던 이버지는 마흔아홉에 서둘러 세상을 떠났다. 

아들이 조용히 평범하게 살기를 바랐던 어머니는 귤나무에 목을 메는 시늉까지 했을 정도로 심하게 반대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의 가장이 된 한 씨는 끝내 어머니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가난한 살림에 홀로 9남매를 키우느라 제 먹을 것 챙기지도 못하고 아궁이 옆에서 쪽잠을 자던 어머니. 그 모습이 마음에 서려 차마 거스를 수 없었다고 했다.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했던 한 씨는 스물네살 일본 회사에 취직해 배를 탔다. 당시 전두환 정권 초기였는데 외화를 벌어오면 군입대를 면제해줬다.

그는 4년 여 동안 외항선을 타고 지구를 3바퀴 반을 돌았다. 그때 봤던 네덜란드, 벨기에, 노르웨이 등 유럽은 지상 낙원 같았다.

직장에 취직해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살고 싶지 않았던 한 씨는 유럽으로 아주 떠나고 싶었지만 “죽어서도 용서 안한다”는 어머니의 말에 제주도로 돌아와 가정을 꾸렸다. 현재 슬하에 자녀가 딸 셋, 아들 하나다. 

한 씨는 제주에 어린이집을 처음으로 설립한 인물이기도 하다. 당시 맞벌이도 흔치 않았고, 돌봄 위탁도 흔치 않았던 터라 “누가 자기 자식을 남에게 맡기냐”는 우려가 많았다. 

우려와 달리 2년이 지나자 대박이 났다. 32년 동안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는 한 씨는 “언젠가는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20년 전부터 술도 하지 않고 피우던 담배도 끊었다. 운동도 꾸준히 하면서 가장 좋아하는 애월 바다에 홀로 가서 연습을 하거나 지하 주차장에 세워둔 차 안에서 연습을 했다. 가수의 꿈을 단 하루도 접은 적이 없었다.”고 했다. 

50대 중반에 접어들며 우연찮게 양복 모델을 하던 차에 당시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고 있던 가수 하나로 씨와 연이 닿았다. 제 이야기를 하니 데모를 보내달라더라. 한 씨의 노래을 들은 하나로가 한국으로 날아왔고,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노래방으로 데려갔다. 한 씨는 장장 4시간동안 혼자 노래를 불렀다.

한 씨 재능을 알아본 하나로는 가수 태진아에게 그를 소개했다. 항상 성장으로 차려입는 한 씨의 옷 차림 때문이었는지 태진아가 밤무대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지 재차 확인을 했다고 한다. '신출내기'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녹음에 앞서 하나로 씨가 일주일에 한 번 제주에 와서 3~4시간 노래를 가르쳐 줬다. 녹음 직전에는 20일 간 제주에 머물면서 8시간 가량 연습을 했다. 

서울과 인천에 있던 녹음실을 오가며 3일간 작업한 결과 2019년 11월 꿈에 그리던 앨범이 나왔다. 1000장을 뽑았는데, 노발대발 할 줄 알았던 어머니는 “저 지독한 놈”이라는 말 외엔 별 말을 안 하더란다. 

한 씨는 “성을 내면 호텔에 가서 핸드폰 끄고 숨어 있으려고 했다. 제가 위로 누나가 셋인데 이상하게 어머니는 별 반응이 없는데 대책회의를 하려고 부산에 사는 누나 둘이 제주까지 왔다. 누나들도 어머니를 닮았는지 ‘죽을 각오로 말려야 한다’며 난리를 피웠지만 이제는 어머니도 누나들도 제 팬”이라며 웃었다. TV에 한 씨가 나오면 가장 좋아하는 어머니는 이제 아흔을 넘겼지만 아직 정정하다.  

OBS W 전국가요 스타쇼에 출연한 가수 한성운 씨.

음반은 만족스럽게 나왔냐는 질문에 한 씨는 “종이컵 하나에 물만 넣어주고 계속 노래를 시켰다. 군대 갓 들어간 쫄병 마냥 바짝 긴장해서 불렀다. 도가 트고 들으니 아쉬운 부분이 많다”고 했다.  

앨범은 나왔지만 코로나 19가 확산되며 공연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나마 TV 출연은 가능했다. 그 와중에 제2공항 건설 반대측에서 집회에 그를 초대하기도 했다. 성산이 고향인지라 그는 한달음에 달려가 노래를 불렀다. 

'위드 코로나' 이후 400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했다. 사람이 많을 수록 노래가 잘 나온다는 천상 가수 한성운 씨. 그는 요즘 기분이 좋다. 지난 10일 현철, 설운도, 김수희 등을 배출한 한국대중가요발전협회 대상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것. 

꿈을 꾸는 동안 사람은 늙지 않는 걸까. 환갑이라고 믿기 힘들만큼 꼿꼿한 자세로 걷던 그는 “살면서 미친놈, 지독한 놈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저는 제가 꿈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의심한 적이 없다. 배를 타면서도, 32년간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도 하루하루를 가수가 되기 위해 살았다. 언제 꿈을 이룰 지 모르니까 건강을 위해 기름기 있는 음식도 안 먹었다. 인생 뭐 없지만, 희망은 꿈꿔야지 않나. 혹시 죽어라 달리고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하고싶은 일 하면서 살기 바란다. 우리 나이면 언제 양지공원 갈지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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