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지법 제4-1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29일 오전 두 차례에 걸쳐 내란죄와 국방경비법 위반 등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고(故)고학남씨 등 40명에 대한 직권재심 재판을 열었다. [제주투데이]
제주지법 제4-1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29일 오전 두 차례에 걸쳐 내란죄와 국방경비법 위반 등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故 고학남씨 등 40명에 대한 직권재심 재판을 열었다.(사진=기자단 공동취재)

제주4·3 불법 군사재판에 회부돼 억울한 옥살이를 한 수형인들이 검찰의 청구로 열린 사상 첫 직권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제주4·3 재심 전담 재판부인 제주지법 제4-1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29일 오전 10시 내란죄와 국방경비법 위반 등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故 고학남씨 등 20명에게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곧이어 오전 11시에 열린고 김경곤 씨 등 수형인 20명에 대한 직권재심 재판에서도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40명은 4·3 당시 군법회의 수형인 명부에 기록이 남아 있는 2530명 가운데 이름과 나이 등 인적사항이 확인된 희생자들이다.

앞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는 개정된 제주4·3특별법에 따라 지난해 11월 법무부에 검찰 직권으로 2530명에 대한 재심을 청구할 것을 권고했다.

검찰은 이에 광주고검에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 수행단'을 설치, 검토 결과에 따라 순차적으로 제주지법에 직권재심을 청구해 왔다.

그동안 제주4·3 생존 수형인과 유족들의 개별적 재심 청구는 꾸준히 있어 왔다. 그러나 국가 주도 아래 검찰이 직권재심을 청구하고 재판이 열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 측이 재심 청구인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하고 있다. [제주투데이]
검찰 측이 재심 청구인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하고 있다.(사진=기자단 공동취재)

검찰은 최종 변론에서 4·3 당시 군법회의가 이뤄진 배경을 설명한 뒤 “이번 직권재심으로 부당한 잘못을 바로 잡고 앞으로는 이러한 비극이 다시는 없길 바란다. 희생자 명예도 회복되고 유족들의 아픔이 조금이라도 위로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이어 “피고인들은 내란죄와 국방경비법으로 기소됐다. 그러나 아무런 죄가 없이 군법에 의해 처벌받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내란죄 등으로 처벌받을 만한 증거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피고인 측 변호인이 재판부에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사진=기자단 )
피고인 측 변호인이 재판부에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사진=기자단 )

피고인 측 변호인도 “피고인들은 군경에 연행돼 죄를 선고 받고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억울하게 생을 마감했을 피고인들의 모습을 떠올릴 유족들은 평생 한이 맺혀 살아왔다”면서 “74주년을 맞은 직권재심 선고 결과는 과거사 해결의 모범적 사례로 남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에 “검찰은 공소제기 이후 입증할 책임이 있지만 증거가 없다”면서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속한다”면서 피고인 전원에게 각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자 4.3 유족들이 박수를 치며 기뻐하고 있다. [제주투데이]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자 4.3 유족들이 박수를 치며 기뻐하고 있다.(사진=기자단 공동취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자 방청석에서는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일부 유족들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故 양두봉씨 조카 양상우씨는 “제 백부는 화북 거로마을에 살다 집 담장을 넘어 도망갔다.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다. 폭도한테 잡힌 줄로만 알았지 군사재판에 끌려간 줄은 몰랐다”면서 “이번 직권재심을 통해 하늘에서 어느 정도 위로받지 않았을까 싶다”면서 울먹였다.

故 허봉애씨 딸 허귀인씨는 “사실 오늘 재판을 들며 아버지 죄명이 내란죄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저희 아버지는 내란죄를 저지를 분이 아니”라면서 “억울하게 누명을 써서 목포형무소에 가신 아버지에게 편지도 두 차례 왔지만 그 다음 소식이 없었다고 할아버지께 들었다. 이번에 무죄 판결을 받아 감사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자 제주4.3 수형인 유족이 명예회복에 대한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사진=기자단 공동취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자 제주4.3 수형인 유족이 명예회복에 대한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사진=기자단 공동취재)

故 이기훈씨의 외조카 김영철씨는 “외삼촌은 4.3 당시 열여덟살에 일하러 나갔다가 끌려갔다고 한다”면서 “외할아버지가 밤중에 밖에 나와 ‘기훈이냐’ 물으며 외삼촌을 찾은 기억이 있다. 그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특히 유족 중 한 명은 변호인 자격으로 재판에 참석했다. 강병삼 변호사는 이날 두 번째 직권재심 공판 변호인 의견에서 “희생자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는 국선변호인으로 서게 될 수 있어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전했다.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자 제주4.3 수형인 유족이 명예회복에 대한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사진=기자단 공동취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자 제주4.3 수형인 유족이 명예회복에 대한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사진=기자단 공동취재)

강 변호사는 이어 “수형인들이 무죄를 선고받아 유족들의 아픔이 조금이나마 위로되길 바란다. 무죄가 적힌 판결문을 갖고 큰아버지 묘에 찾아가 술 한잔 따라드리고 싶다”고 눈물을 보였다.

장찬수 부장판사는 “‘살아시민 살아진다’는 말처럼 삶이 아무리 험해도 살아있는 한 살기 마련이다. 그러나 삶이 소중함에도 피고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극심한 이념대립으로 목숨을 빼앗겼다”면서 “피고인들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말한다.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이라면서 허영선 시인의 시 구절로 첫 직권재심 재판 소회를 밝혔다.

장찬수 부장판사가 허영선 시인의 시 구절을 인용, 첫 직권재심 재판 소회를 밝히고 있다. [제주투데이]
장찬수 부장판사가 허영선 시인의 시 구절을 인용, 첫 직권재심 재판 소회를 밝히고 있다.(사진=기자단 공동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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