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아래의 6월은 여름의 길목이지만 한라산 윗쪽은 아직도 봄이 한창이다.

한라산의 오월은 막바지 봄꽃들이 다투어 꽃을 피워내며 나무들의 꽃잔치가 열리고 

선작지왓은 그야말로 진분홍 산철쭉이 출렁이는 꽃바다를 이룬다.

가자! 한라산 봄을 만나러 '선작지왓'으로~

[윗세족은오름에서 바라본 화구벽(백록담)]

이른 아침이지만 영실 주차장을 꽉 채운 차량 

일기예보에는 바람 없는 맑은 날씨였지만 세상의 모든 바람이 이곳에 와 있는 듯 

얼굴에 스며드는 찬바람은 한라산의 봄을 시샘하는 듯하다.

[제주황기]

오를수록 더욱 세차게 불어대는 거친 바람 

숨이 부칠 때쯤 반갑게 얼굴을 드러내는 연초록 잎이 아름다운 '제주황기' 

영실기암과 오백장군을 배경으로 통형의 깔때기 모양을 한 붉음이 가득한 '붉은병꽃나무' 

병풍바위를 배경으로 만개한 산철쭉은 꽃바다를 이루며 멈춰 서게 한다.

[붉은병꽃나무]
[병풍바위]

수직의 바위들이 마치 병풍을 펼쳐 놓은 것처럼 둘러져 있는

신들의 거처라고 불리는 영실 '병풍바위' 

기암괴석들이 하늘로 치솟아 있는 오백나한(오백장군)상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뒤로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 하늘과 바다가 하나로 이어지고 

볼레오름 너머로 우뚝 선 산방산 주위의 오름 능선 

눈부신 아침 햇살에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싱그러움이 품에 들어온다.

[산철쭉]

진달래와 철쭉은 진달래과의 낙엽활엽 관목으로 

진달래는 꽃이 먼저 핀 후 잎이 나오는데

개화기는 4~5월로 깔때기 모양의 꽃은 꽃잎이 처음부터 따로 떨어져 있고

꽃잎은 독이 없어 식용 가능해 '참꽃'이라 부르기도 한다.

철쭉은 잎이 먼저 나온 후 꽃이 피는데 개화기는 4월 말~6월 초다.

꽃은 통꽃으로 꽃색에 적갈색 반점이 보이고 꽃을 따면 꽃자루가 끈적끈적하다.

주걱 모양의 잎은 4~5장으로 가지 끝에 돌려나고

식용이 불가능해 '개꽃'이라 부르기도 한다.

[붉은병꽃나무 등반로]
[윗세오름과 화구벽(백록담)]

윗세오름은 

1,100 고지 부근의 세오름보다 위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붉은오름, 누운오름, 족은오름을 함께 부르는 말이다.

[백록담 '화구벽']

숲길을 벗어나자 사방이 탁 트인 

웅장한 모습의 백록담 화구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산철쭉]
[윗세족은오름에서 바라본 화구벽(백록담)]

장구목~화구벽(백록담)~웃방아오름~방아오름으로 이어지는 광활한 대자연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 오름 군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산상의 정원 '선작지왓'의 출렁이는 진분홍 꽃바다 

산철쭉의 '봄의 왈츠'는 한라산의 봄을 더욱 화사하고 아름답게 물들이고 

선작지왓의 넓은 고산 평원과 범섬, 마라도와 가파도, 송악산과 산방산까지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는 이곳은 액자 속 그림이 되어준다.

[산상의 정원 '선작지왓'의 진분홍 꽃바다]

돌과 바람, 그리고 물이 만들어낸 하늘과 땅을 가득 담은 신선들의 정원 '선작지왓' 

한라산의 봄은 꽃바다를 연출하는 선작지왓에서 시작된다.

선작지왓은 한라산 고원 초원지대로 

'작은 돌이 서 있는 밭'이라는 의미를 지닌 곳이다.

키 작은 관목류가 넓게 분포되어 있고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고원 습지로 생태적 가치가 뛰어난 명승지이다.

돌 틈 사이로 봄에는 털진달래와 산철쭉이 진분홍 꽃바다를 이루는 산상의 정원에는 

눈향나무와 시로미 등 고산식물도 군락을 이루고 있다.

[시로미]
[윗세오름 해발 1,700m]
[장구목]
[산철쭉과 눈향나무]
[제주조릿대]
[고사한 구상나무]
[구상나무]
[구상나무 군락지]

한라산 해발 1,400m 이상에서 자라는 구상나무는 

소나무과의 상록 침엽수이면서 한국 특산식물이다.

구과의 색에 따라 푸른 구상, 붉은 구상, 검은 구상으로 불리는데

살아 백 년, 죽어 백 년이란 구상나무는

털진달래, 산철쭉과 더불어 봄의 한라산을 신선들의 정원으로 곱게 물들인다.

[푸른 구상]
[검은 구상]
[붉은 구상]

한라산 해발 1,700~1,800m에는 

상록 침엽수인 구상나무와 사스래나무(좀고채목) 같은 낙엽활엽수 등이

한라산의 아름다움을 빛내준다.

[사스래나무(좀고채목)]
[무너져 내린 암벽 모습]

남벽 주변으로 무너져 내린 암벽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동릉 정상보다 조면암류 암반이 발달한 백록담 서벽과 남벽 일대에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경사가 가파른 백록담의 특성 때문에 풍화작용이 지속되면서

골짜기가 깊어져 바위가 아래로 떨어져 나가고 있다.

[산철쭉]
[방아오름 전망대에서 바라본 백록담(남벽)과 웃방아오름]

남벽분기점으로 가는 길~

웃방아오름에서 용출수가 솟아난다고 하는 

방아오름 샘의 물은 흔적도 없이 말라버렸지만 주변에는 

한라산 봄의 시작을 알리는 구석구석 하얀색으로 수놓은 '세바람꽃' 

풍차를 닮은 행운의 열쇠 '설앵초' 

한라산 습한 고지에 군락을 이룬 '흰그늘용담'도 꽃잎을 활짝 열었다.

해발 1,400m 이상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세찬 비바람을 견디며 왜성화된 특징을 갖고 있다.

[세바람꽃]
[설앵초]
[흰그늘용담]
[산철쭉]

선명한 날씨 탓에 서귀포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지귀도, 제지기오름, 섶섬, 문섬, 범섬으로 이어지는 서귀포 앞바다가 시원스레 조망된다.

[남벽분기점 전망대]

한라산 정상 외곽인 화구벽 중 남측 수직 절벽을 '남벽(백록담)'이라 하고 

등터진괴는 바위 그늘 집자리(괴)가 앞뒤로 터져 있다 하여 '등터진괴'라 한다.

남벽분기점은 돈내코 코스 남벽 앞 지점으로 

윗세오름 가는 길과 돈내코 지구로 갈리는 장소라 하여 '남벽분기점'이라 한다.

[흰병꽃나무]
[산철쭉]

다시 만난 병풍바위 '산철쭉' 

쉬지 않고 흔들어대던 바람은 멈추고 점점 맑아지는 하늘 

짙고 화려한 진분홍 산철쭉 꽃색은 꽃바다를 이루며 다시 멈춰 서게 하고 

자연이 빚어낸 마술 같은 풍광은 사각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다.

[병풍바위]

아침 햇살에 화려한 색채를 담지 못한 채 지나쳤던 등반로에는 

내려갈수록 꽃잎이 시들어가는 산철쭉도 보이고 

하얀 부케를 닮은 '마가목', 병아리가 봄나들이 나온 듯 '섬매발톱나무', 

소박하지만 순백의 하얀 꽃이 청초하고 아름다운 '민백미꽃' 

햇살에 은빛으로 빛나는 보리수나무가 반겨준다.

[마가목]
[섬매발톱나무]
[민백미꽃]
[보리수나무]
[영실 소나무숲]

녹음이 짙어가는 한라산 마지막 봄꽃 '산철쭉' 

선물 같은 하루로 지친 일상을 따뜻한 가슴으로 안아준다.

털진달래가 지기 시작할 무렵 한라산 해발 1,400m에서 피기 시작하는 산철쭉은 

선작지왓을 따라 백록담에 이르면 진분홍 산철쭉의 향연은 

막을 내리고 한라산은 서서히 여름을 준비한다.

고은희

한라산, 마을길, 올레길, 해안길…. 제주에 숨겨진 아름다운 길에서 만난 작지만 이름모를 들꽃들. 고개를 숙이고 납작 엎드린 생명의 꽃들과 눈을 맞출 때 느껴지는 설렘은 진한 감동으로 남습니다. 조경기사로 때로는 농부, 환경감시원으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평범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담고픈 제주를 사랑하는 토박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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