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재산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없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같이 어울리고 공존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있는 사람들은 재산이 있으면서도 무엇이 모자라서인지 덤으로 더 얻기 위해 필사를 걸다시피 하는 반면, 없는 사람은 먹고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문제는 항상 자기 분수를 알고, 검소한 생활을 해야 함에도 그것을 간과한 채 눈높이를 위로만 보려는데 문제가 있다. 그것은 사치와 유행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유별나게 사치와 유행에 민감한 국민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것이 꼭 자기 자신의 내면에 자신감이 없으니 외양의 꾸밈에만 유독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남을 인정해 주기는커녕 남이 나를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것만이 능사인 냥 호들갑을 떨고 있느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것이 과연 자신의 진정한 모습은 아닐 것이다. 삶의 행복을 밖에서 찾으려고 하는 안타까움에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자신이 생활이 다른 사람과 비교 되지 않은데도 다른 사람들이 하니 나도 뒤질세라 경쟁심리로 분수를 넘어버리는 모습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따금 신문.방송에서 이슈거리가 되곤 하지만, 사치품에 값은 문제가 안 되고, 유행에 뒤질세라 구입하고 보자는 충동심리에 서민들은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알았으면 한다.

얼마 전 명품인줄 알고 샀더니 이것이 가짜라고 하는 것에 말문이 막힌다. 이렇듯 대부분의 물건들을 보면 명품이란 이름아래 속고 속는 가짜에 유혹 되는 모습에 참으로 안타깝다.

그 물건을 감정해보면 몇 십 만원에 불과한 물건을 수백, 수 천 만원이라니 이런 행위는 이제 사라져야 할 것이다.

사치품을 보면 대부분 겉치장으로 과시하기 위한 것들이다, 호화주택에서부터 생활도구, 고급승용차, 의상, 각종 몸에서 밖으로 내보이는 악세싸리 귀금속들뿐이다. 사람이 분수가 어디까지가 끝인가.

부자는 가난을 걸쳤기 때문에 검소하게 사는 법을 안다 치더라도 가정 형편이 열악한 사람들이 오히려 더 사치에 민감한 것은 아닌지.

그리고 우리는 사회적으로나 공인으로서 그 직위에 따라 겉치레나 품위를 중요시 한다.

때와 장소에 따라 직무와 관련된 품위는 보장이 된다. 이것이 가정이나 사회까지 사치스럽게 해서는 아니 된다.

필자도 수년간 지방의회 의원으로 재직했지만 줄곧 자동차는 농사용 트럭이 내 자가용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제라도 사치가 없는 검소한 생활을 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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