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월봉 응회암 퇴적층의 아름다운 층리. 수성화산은 해안선 부근에서 상승하는 마그마가 물과 만나 격렬한 폭발을 한다. 제주도 해안을 따라 10여개의 수성화산체가 분포되어 있다. 수천년 전이라고 하는 지질학적 시간 개념으로 '최근'에 분출한 화산체이기 때문에 이 화산재층에 인간의 흔적이 화석으로 남겨진다. 제주인들이 신석기시대의 화산활동과 함께 한 삶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사진=강순석)
수월봉 응회암 퇴적층의 아름다운 층리. 수성화산은 해안선 부근에서 상승하는 마그마가 물과 만나 격렬한 폭발을 한다. 제주도 해안을 따라 10여개의 수성화산체가 분포되어 있다. 수천년 전이라고 하는 지질학적 시간 개념으로 '최근'에 분출한 화산체이기 때문에 이 화산재층에 인간의 흔적이 화석으로 남겨진다. 제주인들이 신석기시대의 화산활동과 함께 한 삶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사진=강순석)

꽤 오래 제주대학에서 시간강사로 학생들에게 제주지질을 강의하면서 학생들이 '제주'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제주에서 학교를 다니거나 제주에 거주한다고 반드시 제주를 상세히 알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역의 자연과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분명 삶의 영역을 넓혀주는 길이 된다. 

제주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화산섬이다. 화산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러나 제주대학에는 아직 지질학과가 없다. 누구나 필요성을 말하고 있을 뿐, 관련 강좌도 없고 담당 교수도 없다. 제주의 대학은 지역에서 무엇을 교육하고 연구하는 곳인가 질문하게 된다. 

당장 보이는 피해가 없더라도 결국 그렇지 않다. 우리 삶의 토대인 지역 환경 연원과 분리된 삶은, 미래에 영향을 끼치는 결정을 내릴 때 오판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나는 학생들에게 세계유산을 비롯한 자연환경을 직접 보여주기 위해 야외답사를 많이 했다. 성산의 일출봉에서, 송악산에서, 비양도에서 학생들은 들뜬다. 거기 활자 밖 진짜 자연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주의 자연을 온몸으로 느낀다. 그것으로 선생인 나는 만족하고 있다. 

나의 전공인 제주도 지질학에 대해 피력해 보고자 한다. 이것은 어쩌면 자아비판이다. 1995년 봄에 나는 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고향 제주에 돌아왔다. 공부를 통해 더욱 제주를 알고 싶어졌다. 우선 제주의 지질학을 깊게 알고 싶었다. 그런데 자료가 거의 없었다. 

당시 제주에서 자연과학은 1800여종이나 되는 식물학이 대세였다. 한라산의 식물 분포와 생태에 대한 앎이 제주에서 유행하고 있었다. 지하수는 ‘도민의 생명수’라고 하면서 중요하다고 하는 말이 돌고 있을 뿐이었다. 지하수는 땅속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것이므로 지질학을 모르면 알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에 고민이 됐다. 

오름동호회가 처음으로 결성되어 오름을 다니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김종철 선생의 ‘오름나그네’가 출간되었고, 그 영향으로 사람들이 오름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오름은 화산 분화구를 봐야 하고 작은 화산체이기 때문에 화산지질을 알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제주도, 환경에 대한 이해 없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추진

당시 제주에서 유명 관광지 모두 모두 화산지질 경관자원이었다. 제주는 환경 특성상 화산지질과 무관한 경관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굼부리 분화구, 만장굴, 성산일출봉, 천지연폭포, 지삿개 주상절리, 산방산, 송악산, 한림공원 등 모두 화산이 만들어낸 지질학적 자원이 아닌가. 그러나 이에 대한 기초적 설명은 너무 부족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은 일면 김태환 당시 제주도지사의 정치적 산물이다.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곤경에 처해있었고, 도민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서둘러 추진한 사업이다. (이유야 어쨌든 이미지가 좋은 사업이었기 때문에 모두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문제는 갑자기 도입한 유네스코 사업으로 인해 도청 공무원들이 지나치게 이 사업에 몰두하게 된 거다. 지금은 세계유산본부가 기피 부서로 전락하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긴 안목으로 설계된 사업이 아니었기에 책임지기 어려운 일도 생겨났다. 월정리에서 새롭게 발견된 용천동굴이 그러했다. 자연유산이라는 환경에 대한 이해가 없이 벌인 사업들은 탈이 난다.  그 경관은 물론 경관이 품은 공동자원의 보존 및 역할에도 문제를 초래한다. 공무원들은 서류상 문제 없이 책임지지 않게끔 사업을 진행했다.

당시 우리나라 지질학자들에게는 잔치판이 벌어졌다. 이 사업을 추진한 학자들은 명예도민증을 받는 등 한껏 고무되었다. 그래서 대한지질학회에서는 제주도청의 후원으로 매년 열리는 학술대회를 격년제로 제주에서 열기로 했다. 매년 전국의 대학을 순회하는 학회가 2년에 한 번씩 제주에서 열리는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세계유산과 관련된 학자들에게 제주는 개척지이자 신세계였다. 학회를 통하여 편법으로 수주하는 용역사업을 독점하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유산본부의 연구사업을 도맡아서 하게 된다. 제주가 지질학의 보고로 새삼 주목받기 시작하자 젊은 학자들에게도 선호하는 연구의 장소가 되었다. 

지질학 연구, 제주에 무엇을 남겼는가

연구의 장소는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다. 나는 우리나라의 많은 지질학 연구자들이 제주에서 연구하는 것을 장려한다. 다만 연구 결과만 남겨두면 된다. 누구나 그것을 읽고 인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참고문헌이며 연구 논문이고 보고서이다. 전과 비교해 많은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그러나 이런 연구가 제주에 어떤 것을 남겼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등재 당시 주장했던 이론들에 문제가 많았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만장굴과 거문오름의 연대도 반론을 무시한 채 오류가 채택되었고, 세계자연유산 등재의 주요한 근거가 되었던 월정리 용천동굴의 유로까지 왜곡되었다. 오류가 드러나도 학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과거 주장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주민의 몫이 되어갔다. 

하모리층 사람발자국화석지의 사슴발자국. 송악산이 바닷속에서 분출하던 지금부터 3600년 전, 후기 신석기시대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제주의 선사인들은 이곳 해안가에서 사슴을 사냥했던 것이다. (사진=강순석)
하모리층 사람발자국화석지의 사슴발자국. 송악산이 바닷속에서 분출하던 지금부터 3600년 전, 후기 신석기시대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제주의 선사인들은 이곳 해안가에서 사슴을 사냥했던 것이다. (사진=강순석)

세계지질공원은 세계유산 등재 당시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게 되자 부랴부랴 추진했던 사업이다. 제주도 곳곳에 분포된 다양한 화산지질 자원들을 면밀히 조사한 후에 신청해야 했으나 그리하지 못했다. 산굼부리는 개인소유라는 이유 때문에, 송악산은 개발대상지이기 때문에 제외되었다. 

그러던 차에 2004년 유네스코에 지질공원(geoparks) 프로그램이 등장하자 이번에는 마치 새로운 사업을 하는 것처럼 지질명소들을 이 프로그램에 포함시켰다. 서귀포층과 천지연폭포, 산방산과 용머리해안, 지삿개 주상절리, 수월봉, 우도 등은 2010년에 지질명소로 지정되었다. 송악산은 이때도 포함되지 않았다. 송악산은 여전히 개발대상지였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가 학문을 지배했다. 

유네스코의 국제적인 프로그램으로 재미를 본 도지사 정치인들은 또다시 이런 프로그램에 눈독을 들이게 된다. 이 결과 다시 탄생한 것이 ‘세계 7대 경관’ 사업이다. 국제적 사기에 가까운 사업 타이틀 획득을 위해 도민들은 대대적인 전화와 모금 캠페인에 동원되었다. 이전 제주지사의 유네스코 등재 사업을 부러워했던 우근민 지사가 열정적으로 추진한 사업이다. 이런 식으로 제주도민들은 약 20년간 도지사들의 정치쇼에 동원되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제주도민의 생명과 직결된 지하수는 더욱 가관이다. 질적으로 오염되어가고 있고 양적으로 절대 부족하다. 용천수는 대부분이 말라버렸다. 그 원인을 밝히기 위해 수십 년간 막대한 연구비가 투입되었다. 연구 결과는 ‘강수량이 부족해서’였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결과였다. 결국, 지하에 있는 지하수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지하수가 지하에서 어떻게 이동되며 어디에 매장되어 있는가. 기본적으로 제주에서 지하수는 겹겹이 쌓여있는 현무암 암반층에 높은 압력으로 지하수체를 형성하며 저장되어 있다. 아무도 볼 수 없고 누구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거짓말도 가능한 것이다. 

이제는 지속가능한 이용량을 조작하려고 하고 있다. 함양량을 늘리는 공식을 제시하고 있다고 한다. 엄청난 이용량의 증가, 개발에 의한 함양력 감소로 제주는 홍수 피해를 매년 겪고 있다. 정치적으로 건드릴 수 없는 양식장의 염지하수 문제, 농업용수의 과다 이용과 농약에 의한 오염을 이제는 드러내야 한다. 

우리나라 지질학자들, 개발사업에 동조하고 있어

사계리 사람 발자국 화석은 발견 당시 5만년 전의 중기 구석기 유적이라며 아시아 최초의 인류 화석으로 대서특필되었다. 필자는 당시 즉각 경향신문에 이 사람 발자국이 수천 년 전의 신석기 현생 인류의 발자국이라고 주장하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당시 남제주군에서는 이곳에 아시아 최초의 인류 발자국화석 박물관을 짓겠다는 거창한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그 후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가? 화석지는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에서는 단 한마디 해명도 없다. 아직도 최근 연구 결과와는 달리 문화재청 홈페이지에는 다른 설명이 버젓이 등장하고 있다. 거론하기조차 부끄럽지만, 도내 관광개발 사업장에서 제출되는 환경영향평가서나 문화재 조사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지질학자들이 동원되어 개발사업에 동조하고 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연구용역비를 받아서 하는 일이라지만 이들은 한결같이 학회에서 발표할 때와는 달리 해당 지질자원이 지질학적 가치가 없다고 쓰고 있다. 학자적 양심이라는 단어 이전에 부끄럽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다. 

연구는 개인이 한다 해도 연구의 결과는 모두에게 기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학문이란 결국 진실을 추구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연구 결과를 감춘다고 해서 결국 감춰지지 않는 것이 연구의 본질이다. 모르면 모른다, 밝힐 수 없으면 밝히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연구의 결론이 될 수도 있다. 완성되지 못한 연구는 그것대로 후대의 몫이 되기도 하는 까닭이다. 

제주의 자연환경을 지키는 일이나 환경단체에서 환경을 보존하는 개발 반대 측에 지질학자는 아무도 없다. 누가 제주의 지질을 지킬 것인가? 이렇게 구차스럽게 자아비판을 하는 이유는 제주의 자연을 지킬 사람은 특정한 전문가나 공공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껏 제주는 누가 지켜왔는가? 바로 아무 권한도 없이, 대가도 없이 싸운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이들이야말로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제주는 그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

일찍이 일본에 유학하여 니가타대학 지질학과에서 1995년 3월 박사학위를 받고 줄곧 고향 제주에서 제주의 지질을 연구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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