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주지역 학교 인권기구의 현황

헌법과 국제법에 의해 요구되는 국가의 인권의무는 크게 세 가지, 즉 존중(respect), 보호(protect), 실현(fulfil)의 의무로 구분된다.

국가의 인권책무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은 국가단위를 넘어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구체적인 인권의 현장에 맞는 제도와 규범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인권기본조례의 제정과 이에 따른 지역인권기구의 설치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방정부의 인권책무를 강조한 지 1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대부분의 광역지방자치단체에는 인권전담부서가 설치되었으며, 인권기본계획을 비롯한 지자체 인권정책이 수립되는 등 행정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고유사무로 여겨지던 인권보장과 침해 구제사업은 지방정부와 교육청은 물론이거니와 인권경영을 앞세운 공기업의 경우조차 인권침해를 구제하기 위한 기구를 설치하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고등교육법」 개정으로 전국의 모든 대학에 인권센터 설치가 의무화되는 등 민간영역까지 확산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에 맞게 제주특별자치도에도 인권전담부서로 특별자치행정국 자치행정과에 인권팀이 설치되었으며, 학생인권조례 제정과 함께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 등이 설치되는 등 국가의 인권책무를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물론 교육청의 인권관련 기구의 경우 조직의 규모나 역할, 권한 등을 고려하면 인권기구라는 명칭이 아직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오늘의 주제인 학교인권기구로 좁혀서 살펴보면, 우선 초중등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은 학생인권교육센터를 중심으로 학생과 구성원들의 인권보장을 위해 대응하고 있다. 대학교육의 경우 「고등교육법」 개정에 따라 대학인권센터의 설치가 의무화되어 제주대학교, 제주한라대학교는 인권센터를 설치하여 학교내의 인권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제주대학교는 대학 구성원의 보호 및 공동체 회복을 위하여 인권침해 사건을 공정하고 신속하게 처리하고자, 피해 당사자 또는 피해 목격자가 안심하고 익명으로 신고할 수 있는 '제주대학교 인권침해 온라인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제주한라대학교는 인권상담실, 성희롱・성폭력상담실, 직장내괴롭힘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제주국제대학교와 제주관광대학교는 아쉽지만 현재에는 담당자를 지정 등을 통해 설치를 준비 중인 것으로 확인된다.

제주도교육청 청사(사진=제주투데이 DB)
제주도교육청 청사(사진=제주투데이 DB)

2. 학교 인권기구의 역할과 한계

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는 2021년 1월 8일 제정·공포된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학생인권 조례」 제36조에 따라 설립된 기관이다. 인권침해에 관한 상담 및 조사, 인권교육 프로그램 운영, 인권존중 문화확산을 위한 정책개발 및 제도개선 사업 등을 통해 인권옹호의 역할을 수행하여 초중등 교육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의 예방과 구제를 담당하는 기구다. 대학인권센터는 학내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 사안에 대한 대응을 비롯하여 연구와 조사, 교육 등을 통해 대학 내 인권 의제를 발굴하고 확장하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대학 인권 증진을 도모하는 기구다.

학생인권교육센터나 대학인권센터는 설치근거와 기능 등에서 다소의 차이가 있지만, 주요한 기능으로 △ 인권침해에 대한 상담, 진정, 조사 및 시정권고 또는 의견표명 △ 학교 구성원의 인권에 관한 교육 및 홍보 △ 기타 학교 구성원의 인권 보호 등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으로 하고 있어 인권기구로서 요구되는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설계되어있다.

하지만 당초의 구상과 달리 학생인권교육센터나 대학인권센터가 본래적 기능을 수행하는 인권기구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제 운영을 시작한 기구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하기는 어렵겠지만 지금의 문제는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축적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는 한계가 아니기에 우려스럽다.

첫째, 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의 경우에는 2021년 8월에 개소, 5명의 인력을 배치하여 학생인권 상담과 침해구제, 학생인권심의위원회와 학생인권참여위원회 운영 등에 대응하고 있다. 2022년 실태조사와 더불어 학생인권증진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찾아가는 인권교육, 인권침해 상담, 조사 등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다양하고 종합적인 학생 인권 정책을 실행하는 인권기구라고 평가하기에는 아직은 부족함이 크다. 학생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실효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인권과 관련한 전문성과 독립성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으며, 형식적 운영을 탈피하여 인권시민사회와의 네트워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대학인권센터의 경우에는 실제 인권기구로 인식되기보다는 인권침해 사건의 처리를 담당하는 '고충상담기구'로서의 위상이 강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기구를 설치한 이후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예산과 인력을 배치하지 않은 채 그나마 성과를 내기 쉬운 영역, 예컨대 가장 시급한 인권 의제인 인권침해 사건 처리를 하는 역할에 많은 업무를 할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기구에 부여된 인권교육, 인권문화확산, 인권실태조사, 기타 인권 보호를 위한 연구 작업 등의 역할은 기획에서부터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

둘째, 취약한 법적근거와 지원의 부재로 인해 실효성이 떨어진다. 타지역보다 늦게 제정된 학생인권조례를 근거로 설치한 학생인권교육센터는 여전히 혐오세력으로부터 공격의 대상되고 있다. 최근 서울과 충남 등 학생인권조례 폐지 주민발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교과부에서부터 민주시민교육과가 폐지되는 등 학생인권지형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결국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마련한 학생인권 규범의 취약함이 여실히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초중등교육법」의 개정을 통한 법적근거의 마련이 요구된다.

대학인권센터의 경우 법정 의무화로 센터의 설치까지는 진행되었지만 역할을 수행할 ‘예산과 인력’에 대한 책무가 명확하지 않다. 지금은 인권센터 설치 및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대학혁신지원사업이나 2022년 교육부 대학 인권센터 선도모델 시범사업 예산 등을 활용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인건비 등은 결국 대학의 자체적인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따라서 대학의 경우 최소한의 예산과 인력으로 형식적 요건을 충족시켜 운영하다보니 인권센터 담당자를 겸직시키거나, 기존에 설치되었던 대학의 유사한 기관과 인권센터를 결합시키는 방식 등을 선택하고 있다.

3. 학교인권기구 강화를 위한 제언

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와 대학인권센터 등 학교인권기구의 강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권기구로서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그 설치와 지원근거를 강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는 인권기구로서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육청의 인권정책을 선도하는 정책기능과 인권교육, 인권침해 구제기능 등 인권기구로서의 세밀한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를 집행할 센터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요청된다.

대학인권센터의 경우 인권센터가 법에서 요구하고 있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안정적인 예산과 인력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학이 스스로 인권옹호를 위한 투자를 확대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따라서 “고등교육법 제19조의3(인권센터) ③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제1항에 따른 인권센터의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지원하거나 보조할 수 있다.”를 근거로 중앙정부의 책무 또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적극적 지원을 모색할 필요도 있다.

대학인권센터가 인권기구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권침해 구제사업만으로 기능해서는 안된다. 인권기구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조직을 편재하고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와 같이 대학 자율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한 해당 정부기관에서의 인권센터 설치와 운영에 대한 모니터링 및 지원체계의 수립을 위한 정책적 접근이 요구된다.

설치근거와 재원마련, 국가기관의 개입 등의 처방은 어찌 되었든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지금 현재 운영되는 기구라도 인권기구로서의 최소한의 역할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우선 조직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아쉽지만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현재의 학교인권기구의 전문성은 인권의제를 다룰 수 있는 만큼의 역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따라서 업무담당자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시급히 진행되어야 한다.

업무담당자의 역량을 높여내기 위한 프로그램을 체계화하여 진행하고, 초기에는 관련 전문기관과의 협력체계 구축을 통해 동력을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제주출장소의 정책지원과 지역인권보장체계와 지역 인권자원을 연계하는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외부동력을 활용하는 것도 유효한 방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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