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라 님을 처음 알게 된 건 강정 투쟁 개신교대책위원회를 만났을 때였다. 교회를 다니다 그만 둔 나는 당시 교회에 대한 회의감이 컸고 개신교 그룹이 방문할 때면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러다 개신교대책위의 꾸준한 연대와 방문으로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 때 남성 사역자들 사이에 유일한 여성 목사인 임보라 님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후 모임에서 본 임보라 님은 먹을 것을 챙기고 지킴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었다. 그는 말하려고 하기 보다 따뜻한 눈빛과 미소로 답했다.

그 뒤 여러 매체를 통해 임보라 님에 대해 더 알게 됐다. 강정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의 부당함, 안타까움, 고통과 아픔이 있는 자리에 임보라 님이 계셨다. 개신교 목회자라면 낙인 찍힐까 선뜻 자리하지 못할  곳들에 임보라 님은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냈다. 내 눈에는 임보라 님이 걷는 길이 좁디 좁은 십자가의 길 같았다. 많은 교회로부터 받는 멸시와 외면을 버티며 진실을 쫓는 참된 신앙인이라고 느껴졌다.

다행이고 고마웠다. 근데 나는 그에게 미안했다. 임보라 님이 하고 있는 일이 진실과 사랑의 편에 서는 일이라고 더 많이 표현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함을 느꼈어야 했다. 뒤늦게서야 그가 보냈을 수많은 날들을 헤아려본다. 때로는 외로웠겠지, 때로는 두렵기도 했겠지. 그럼에도 끝까지 모든 존재들에게 축복 기도를 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임보라 님.

언젠가 나도 축복기도를 받고 싶다고 부탁드린 적이 있었다. 기쁜 목소리로 기꺼이 해드리겠노라고 답하셨다. 나는 진심으로 임보라 님의 축복기도를 받은 적 있는 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가 죽고 나자, 생각하지 못한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행렬을 이루어 그를 추모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도 그 무리 중 한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기적을 바라며 신을 찾는다. 나에게 임보라 님이 살아온 삶이 기적이다. 그가 우리 곁에 있었던 예수였다. 이제 가까이에서 그를 볼 수는 없지만 대신 어디에서나 그를 만날 수 있다. 지금도 그의 축복기도가 고통 가운데 있는 존재들에게 내려지고 있음을 믿는다. -호수 정주 (강정평화네트워크)

"고맙다는 말을 제가 지금이라도 임보라 목사님에게 전달할래요. 특히 강정계신교대책위와 함께 강정마을과의 오랜 연대 해주셔서 고맙다고 할래요. 힘들게 싸우는 이들과 옆에 있어주시는 예수님의 넓고 깊은 사랑을 나누는 연대이었죠. 제가 임보라 목사님을 강정에서 만날 때 마다 많은 사람들과 진심으로 격려하는 소통하고 꾸준히 연대하며 연결을 잘하시는 분인 것을 느껐어요. 우리가 덕분에 외롭지 않고 서로 연결 되어 있음을 기억할 수 있는 힘을 얻었어요. 우리가 그 힘을 가지고 서로 지지하고 단단한 연결을 키우며 사랑과 연대의 길로 걸어갑시다.” -카레

“I would like even now to extend my thanks to Pastor Lim Bora. I’m especially thankful for her long solidarity with Gangjeong Village with the Gangjeong Protestant Committee. It was the solidarity of sharing Jesus’ wide and deep love and presence together with those who are struggling. Each time I met her in Gangjeong, I could feel by her sincere and encouraging communication and consistent solidarity that she was a good connector. Thanks to her, we did not feel alone but we were strengthened with the reminder that we are connected. Let us hold onto that strength, supporting each other and cultivating firm connections as we continue along the way of love and solidarity.” -Curry

강정에 산 지 10년이 넘다 보니 많은 사람들과 인연이 생기면서 갑작스럽게 들리는 부고 소식에 함께 슬프로 침통해 집니다. 지난 겨울 콜트콜텍 해고자 재춘언니 임재춘 님의 소식이 그랬고 올해 봄이 오던 날 들린 임보라 목사님의 부고 소식이 그러했습니다. 

이번에 강정에서 마음을 모아 추모의 자리를 마련하고 추모의 글을 모아 올리는 것은 무엇보다 임보라 님이 걸어온 길에 강정에서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이기도 합니다. 강정 해군기지 반대 운동에서 개신교인들의 역할을 묻던 젊은 개신교인은 교회에서 만난 목사님들의 해군기지 찬성 목소리와 오히려 반대 운동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던 태도를 이기지 못하고 교회를 나가지 못했습니다.

강정에서 만난 개신교인들은 무엇보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웃는 자들과 함께 웃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다녔던 개신교 동아리와 고신 교단 외에 퀘이커, 메노나이트, IVF, 아침이슬 등을 만나는 것도 새로웠습니다. 여성 목사인 임보라 님은 저에게 신선했습니다. 저의 좁은 시야를 넓게 만들어 줬습니다. 강정개신교 대책위 맴버로 강정에 자주 오셔 기도회와 인간띠잇기, 대행진에 함께 했습니다. 해군기지 공사 저지로 받은 벌금 대신 노역을 살러 들어가며 “구럼비와 강정마을에 대한 사랑은 무죄다!”라며 구럼비 발파 소식을 듣고 강정으로 달려갔던 일, 공사장 앞에서 업무방해로 잡혀 갔던 일, 모든 폭력의 현장에 목격했던 일에 이유를 “사랑”때문이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다른 지역의 퀴어문화축제에서 무지개 전대를 멘 목사님은 반대의 목소리 앞에 앞장 서 상처 받은 퀴어 크리스천들을 품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존재 자체로 위안을 얻었던 시간들입니다. 종교인으로서 또 제주를 사랑하고 강정을 사랑하고 춤을 좋아했던 분으로 강정과 여러 현장에서의 보라 님의 존재는 거절 당했던 목소리에 방패막이 되어주고 따뜻한 목소리로 마음이 어떤지 물어봐 주셨던 분이었습니다.

작년에도 해결되지 않던 일로 연락을 드렸을 때 다른 무엇보다 지친 나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먼저 물어봐 주시기도 했습니다. 늘 같은 자리에 계실 같던 존재의 부재가 슬픕니다. 그 곁에 있지 못해 아쉽기도 합니다. 보라 님의 부고 이후 많은 사람들과 오랫동안 보라 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보라 님의 존재가 당연하고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보라 님을 통해 강정에서 받은 사랑과 위로들을 잘 기억하고 흘려 보내줄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추모의 글을 마칩니다. -최혜영

임보라 목사의 강정 해군기지 반대 활동 관련 기사들

-[강정해군기지 반대투쟁 5000일 특집기고-③]다시 써내려가는 평화운동의 역사

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Amp.html?idxno=224347

-소견문 : 사랑은 무죄가 아니었나요?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

http://cafe.daum.net/peacefund/jhK/5

-평화활동가들이 자기발로 감옥에 걸어들어간 이유 http://www.withoutwar.org/?p=8775

-[2014년 5월 20일] 강정마을 벌금폭탄 규탄, 자진노역 결의 기자회견

http://www.militarywatch.or.kr/?p=23

-강정마을 멘토 ‘강아지풀’이 돼주세요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402

-"제주 해군기지 논란 뒤로하고 강정마을 주민 치유위해 힘써달라"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34291

-"구럼비와 강정마을에 대한 사랑은 무죄다!"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34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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