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해방전선]은 삐리용과 노지의 일상 기록입니다. 오늘 화해하고 내일 다시 싸우는 부부싸움 대공개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과장과 미화 없이 씁니다. '부부'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부부의 해방'을 맞고 싶어서이기도 합니다.(필자 주)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부부해방전선]은 삐리용과 노지의 일상 기록입니다. 오늘 화해하고 내일 다시 싸우는 부부싸움 대공개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과장과 미화 없이 씁니다. '부부'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부부의 해방'을 맞고 싶어서이기도 합니다.(필자 주)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부부해방전선] 흔들리는 당근 속에서 장범준을 보게 된 거야에서 이어집니다.)

“사북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던 그의 목소리와 표정은 급격하게 불행해졌다. 믿거나 말거나 장범준이 썼다던 드럼이 주인공인 그 드라마에는 어떤 반전도 없었다. 제주의 옛날 사람이 포착한 드럼을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할 리 없었다. 사북 인근에서 남편보다 한 발 빠른 구매자가 나타난 것. 그럼 그렇지. 다시 말하지만, 나에게는 그 드럼을 허락할 의사가 분명히 있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그가 현실을 받아들이고 제풀에 지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자꾸  현실을 거스르고자 했다.

이번에는 울산에서 드럼이 발견됐다. 울산의 판매자는 나름 적극적이었다. 남편의 통화 내용을 정리하자면 판매자는 이런 과정을 거칠 예정이었다. 드럼을 하나씩 분해한다. 가전제품 대리점에 가서 커다란 박스를 최대한 많이 구해온다. 분해한 드럼들을 판매자가 직접 일일이 담는다. 그런 이야기들 끝에 판매자도 문득 현타를 느낀 것 같았다. 그가 물었다. “그 다음은요?”

“아, 그러니까 그 다음은 배나 항공을 이용해서…….”

“그건 안 되겠는데요.”

“그렇죠. 그건 무리죠. 제 생각도 그래요.”

이쯤에선, 이야기가 끝나야 한다. 하지만 남편은 방법을 찾아낸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테마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가 떠오른다. 남편이 말했다.

“그럼 제 후배가 울산에 있는데, 거기에 맡겨주실 수 있을까요?”

하필 때마침 한 후배가 울산 본가에 가 있었고, 남편을 돕고 싶다는 선의 또한 충만해 있었다. 그 귀찮은 일에 동원될 마음이. 하지만 생각들 해보시라. 그것은 평범한 시민의 선의만으로 가능한 프로젝트는 아니다. 울산의 드럼은 그렇게 멀어졌다. 그리고 천안에서 가격에 맞는 드럼이 나타났다. 드럼은 참 많기도 하지. 천안의 드럼을 구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겠다는 후배가 등장했다. 선후배도 중고 드럼만큼 많구나. 하지만 그 드럼들은 그의 삶에 도착하지 못했다.

그와는 별개로, 나는 좀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남편의 꺾이지 않는 마음은 그의 삶에서나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도 50대 후반의 중년 남자가 자기 욕망을 향해 낮은 포복으로 안간힘 쓰는 걸 그토록 도와주려는 이들의 마음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전생의 전생의 전생에서라도 나라를 구할 사람이 아닌데. 그들의 선의는 더 가치 있는 일에 쓰여야 마땅하지 않을까?

마지막 조력자가 등장했다. 그는 엉뚱하게도 나의 엄마였다. 세상 대부분의 장모와 다를 바 없이, 그녀는 당신 사위에게 순진할 정도로 진심이다. 남편은 언젠가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린 일이 있다. “따님 대신 설거지를 너무 많이 해서 습진이 생겼다”면서 되도 않는 투정을 해댔다.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설거지할 때는 꼭 고무장감을 끼게.” 그녀는 사위의 습진을 진심으로 염려했으므로, 그해 겨울 기모가 들어간 꽃무늬 고무장갑을 선물하기도 했더랬다. 그때의 마음 그대로, 엄마는 드럼 때문에 좌절한 사위에게 위로가 되고자 했다.

“이제 금방 생일인데, 한도를 두 배로 올려. 내가 사줄게.”

생일? 석 달이나 남았는데, 엄마…….

장모의 선심은 사위의 배포를 키웠다. 허나 소비의 이치란 요망하다. 언제나 선을 넘게 한다. 30만 원이 한도일 때는 자꾸 50만 원 짜리가 눈에 들어오고, 50만 원 한도면 괜히 70만 원 정도는 도전해 보고 싶기 마련이다. 이 갈등을 조율하는 데는 어마어마한 투쟁력이 필요하다.

그는 자신과의 혹독한 싸움 끝에 마침내 제법 괜찮은 드럼을 집안에 들이게 됐다. 나는 그에게서 운명의 사랑을 만난 청년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내가 허락한 한도 이상의 행복을 만끽했다. 제대로 된 방음시설을 갖추는 것은 무리였다. 지하실을 온갖 천들로 막아놓았다. 나는 잠깐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혔다. 어쨌든 그는 ‘자기만의 방’을 꾸렸다. 그렇게 버지니아 울프는 대한민국의 어떤 중년 남자의 삶에서 즐겁게 오독되고 있었다. 당근마켓을 십분 활용하여 멋진 드럼 선생님도 스스로 구했다. 드럼 연주 유튜브를 끼고 살았다. 남편은 드럼에 한해서는 기꺼이 신식 문물을 활용했다.

그렇지만 도파민만으로 완성되는 사랑은 없는 법이다. 그는 매일 조금씩 풀이 죽어갔다. 누구든 무한히 꿈꿀 수 있다. 하지만 누구라도 꿈 앞에서 초라해질 수 있다. 그는 비트를 쪼갤 때마다 자신의 초라한 초상을 확인했다. 욕망은 푸르렀으나 몸은 늙었으며 재능은 드럼 페달 바닥에 깔려 있었다. 그러니 그에게는 다른 수가 없었을 것이다. 드럼을 찾던 집요함을 성실성으로 바꾸고 날마다 열심히 드럼을 때려대는 수밖에.

미리 결론을 말하자면, 남편의 민폐 가득한 드럼 스토리 1막은 새드엔딩이었다. 후배들의 배려로 어느 직장인 밴드에 합류했지만, 혼자 연습할 때는 그럭저럭 연주를 하다가도 합주만 시작하면 고장 난 드러머가 되어 뚝딱거렸다. 밴드 연습만 다녀오면 허옇게 질린 얼굴이 되었다.

이미 백발인 머리가 한층 더 샜다. 자신이 평생 좋아한 책을 읽는 일과 악기를 연주하는 일은 차원이 달랐다. 그가 미치도록 매달리는 조기축구와 드럼은 세계가 달랐다. 결국 그해 연말 직장인 밴드 공연을 그는 포기했고, 나와 나란히 객석에 앉아서 박수를 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근에서 만난 드럼 선생님은 서울로 떠나버렸다.

내가 보기에 그는 당근 밭에서 구를 때 가장 행복했다. 연쇄적인 드럼 실패담 속에서 가장 반짝거렸다. 그는 그 장비 구입 욕망을 성취해버리는 바람에 불행한 남자가 되었다. 드럼은 남편의 '자기만의 방'에 완벽히 홀로 남았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그의 드럼 스토리 2막 엔딩을 나는 아직 모른다. 다만 지금 나는 강력한 빌런이길 자처하는 중이다.

“저 드럼, 당근에 팔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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