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소재 감귤농장 내 사무실. 끈끈이 트랩에 파리가 빼곡히 붙어있다. 양웅돈씨는 근처 양돈농가의 영향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지난달 26일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소재 감귤농장 내 사무실. 끈끈이 트랩에 파리가 빼곡히 붙어있다. 양웅돈씨는 근처 양돈농가의 영향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파리가 한 두시간만에 이만큼 붙은 거에요. 한 두시간 만에 ...."

5개의 끈끈이 트랩에 빼곡히 붙은 파리들이 꿈틀거렸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파리는 우리를 괴롭혔다. 눈 앞에 파리가 알짱거려 연신 손사래를 쳐도, 금새 또다른 파리들이 몸에 달라붙었다. 감귤농장 사무실 내 마련된 테이블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야외로 자리를 옮겨도 마찬가지였다. 

지난달 26일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올려다 본 하늘은 쾌청했다. 선선한 바람은 습기를 머금었다. 나들이 가기 딱 좋은 날씨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 마을주민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여름철만 되면 이보다 더한 파리떼에 시달려 왔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참기 힘든 건 역한 냄새다. 악취는 파리처럼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다. 예기치 못하게 코를 찌른다. 밭일을 하다 말고 집으로 돌아가거나 구역질을 해가며 일한다. 식사는 이곳에서 최대한 먼 장소에서 한다. 냄새로 비위가 상해서다. 제주도 홈페이지에는 "밤마다 창문을 열지 못할 정도의 악취가 난다"는 내용의 민원이 쏟아진다. 이곳 주민들의 삶의 질이 곤두박질친 배경에는 양돈농가가 있다. 

"오늘은 남풍이 불어서 냄새가 덜한 편이에요. 북서풍이 불면 죽어요. 매일 이 냄새를 맡으면서 산다고 생각해보세요. 기자님은 살 수 있겠어요? "

이날 만난 금악리 주민 양웅돈씨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양돈장에서 풍겨 오는 악취를 "온몸에 똥을 바른 듯한 강한 냄새"라고 표현했다.

금악리에서 감귤농사를 짓고 있는 양씨는 감귤따기 체험을 하러 온 관광객, 특히 외국인들이 의아해한다고 했다. 깨끗한 환경, 청정자연을 기대하고 밟은 제주 땅인데 막상 경험한 건 파리떼와 악취다. 오죽하면 그들이 행정당국에 민원을 제기하고 돌아갈 정도라고 양씨는 설명했다. 

금악리 주민 양웅돈씨가 운영하는 감귤농장에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양돈악취를 표현한 모습. (사진=양웅돈 제공)
금악리 주민 양웅돈씨가 운영하는 감귤농장에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양돈악취를 표현한 모습. (사진=양웅돈 제공)

"한창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어느 양돈업자가 와서 '악취문제는 과학자가 나서도 해결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실랑이가 붙어 주위에서 말리는데 그 분이 '우리 아니면 제주도가 돌아갈 줄 아느냐'고 소리쳤어요. 자부심이 있는거죠."

양돈농가에서 발생하는 악취는 절대 해결하지 못할 문제라는 게 일대 주민들의 정론이었다. 심지어 마을에서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쉬쉬했다. '무기력'. 그가 2016년 육지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인 제주로 내려온 당시 마을을 지배하던 분위기였다.

양씨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가장 먼저 '금악리악취근절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한림 하나로마트 앞에서 서명운동을 벌이고, 제주공항 출구 앞에서 1인 시위를 1년 넘게 이어나갔다. 당시로써는 파격적이었다.

해당 문제가 본격 공론화된 건 2017년이다. 금악리 일부 양돈업자들이 지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2000t이 넘는 가축분뇨를 무단 배출해 제주 지하수 통로인 '숨골'로 흘러 들어가게 한 사건이 벌어진 것.  다수의 언론이 이를 주목했다. 양씨는 도 자치경찰단에 협조하고, 인터뷰에 응하는 등 전반적인 실태에 대해 알리기 시작했다.

제주도도 이를 계기로 실태조사를 벌이고, 가축분뇨와 악취에 대해 강도 높은 규제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양씨는 행정이 근본적 문제는 건드리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제주도는 지난 3월 "지속가능한 양돈산업 조성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면서 수립한 양돈악취 집중관리 시행계획을 공개했다. 전체 양돈장을 수준별 4단계로 구분하고, 인센티브와 패널티를 통해 업자들에게 악취저감에 대한 동기부여를 하겠다는 것.

악취관리 최하위 단계 업체에는 근원적 개선을 유도하되, 불성실한 농가에 대해서는 폐업을 적극 유도해 나간다는 내용이다. 반면, 최상위 단계 농가에게는 ▲악취관리지역 지정 해제 ▲2년간 지도점검 유예 ▲현 사육두수의 30% 이내 증축 허용 등 혜택을 주기로 했다(link). 악취저감보다 양돈산업 진흥에 방점이 찍힌 모양새였다.

양씨는 이를 두고 "소식을 듣고 속에서 열불이 났다"고 쓴소리를 했다. 악취를 줄이는 근본적 대책도 아닐 뿐더러, 오히려 악취는 못잡고 돼지 사육두수만 늘어나는 최악의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지난달 26일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에서 만난 주민 양웅돈씨. 양돈농가 분뇨 악취로 인한 피해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지난달 26일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에서 만난 주민 양웅돈씨. 양돈농가 분뇨 악취로 인한 피해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그는 '밀실사육'만 해결해도 악취는 확연히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한다. 영국과 덴마크, 네덜란드 등 동물복지를 강화하고 있는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돼지 사육시, 적정 사육 면적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침이 존재한다.

특히 덴마크의 경우, 모든 축산농가가 배출분뇨를 퇴비나 액비로 바꿔 뿌릴 수 있는 농지를 확보해야 한다. 농지가 부족할 때는 분뇨처리 업체에 맡기는 계약을 맺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씨는 "한국은 밀실사육에 대한 규제가 없어서 1평당 돼지 2~3마리를 키워버린다. 신고 사육두수보다 실제 사육두수가 훨씬 많은 건 다반사"라면서 "돼지들이 옴짝달싹 못하는 공간에서 분뇨가 나오면 서로의 몸에 엉겨붙어 악취는 더 심화된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지금 상황은 행정이 오히려 주민들을 위하기는 커녕, 교묘히 양돈산업에 힘을 실어준다고 본다"면서 "악취저감시설은 사실 보여주기식일 뿐이다. 쓰레기 문제를 두고 쓰레기양을 줄이는 대책 대신, 소각장만 늘리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주장했다.

이어 "어느 지역에 큰 혐오시설이 있으면 작은 혐오시설이 들어오는 건 쉽다. 금악리 소재 폐기물 소각시설이 처리용량을 3배로 늘리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치"라고 우려했다.

한편, 제주도에 따르면 1990년 양돈농가수는 1572곳, 돼지 사육두수는 10만9192마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0년도에 들어서면서 돼지농가는 394곳으로 대폭 줄었다. 반면 사육두수는 33만5645마리로 늘었다.

농가는 줄고 사육두수는 줄어드는 추세가 지속되면서 2019년엔 268곳의 농가가 55만1168마리를 기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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