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후 제주벤처마루 10층 세미나실에서 '제1회 해양시민과학자 포럼'이 열리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13일 오후 제주벤처마루 10층 세미나실에서 '제1회 해양시민과학자 포럼'이 열리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역을 중심으로 환경과 사람이 어떻게 어우러져 살 수 있을지 연구한다는 건 멋진 일입니다. 파란이 그런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다양한 사회·환경 문제를 정의롭게 해결하는 대안으로 떠오르는 시민과학.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이 주체로 나선다는 게 특징이다. 

최근 제주에서도 해양 생태계의 변화를 기록하고 시민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한 민간단체가 조직됐다.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은 지난 13일 제주벤처마루 10층 세미나실에서 창립 기념 ‘제1회 해양시민과학자포럼’을 개최했다. 

 

시민 250명이 제주 해안 감시자가 된다면

기조발제자로 나선 장이권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는 ‘국내외 시민과학의 흐름, 구체적 사례와 성과’ 주제로 발표했다. 

장 교수는 제주에 도입할 수 있는 시민과학 형태로 ‘공동체 바탕 시민과학(community-based citizen science)’를 제안했다. 하나의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공통의 임무를 수행하는 조직이다.

장 교수는 구체적인 사례로 미국 오레곤 해안 보호 연합(Oregon Shores Conservation Coalition)이 운영하는 ‘코스트와치’(CoastWatch·해안 감시)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사진=Oregon Shores  CoastWatch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Oregon Shores CoastWatch 홈페이지 갈무리)

참가 시민 한 명당 해안선 1마일(약 1.6km)씩 관리 구간으로 설정한다. ‘마일 관리자(mile adopter)’는 정기적으로 자신이 맡은 구역을 찾아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기록하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공유한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지난 1993년 프로젝트를 시작한 뒤 현재 시민들이 관리하고 감시하는 구역은 1675마일에 이른다. 

장 교수는 “관리자들이 정기적으로 사진을 찍어서 가장 높이 들이친 조수의 영향 범위, 해양 쓰레기, 외래종인 해변 잡초, 조간대 생물 다양성 등을 기록한다”며 “프로그램별로 연구기관과 같이 프로젝트로서 진행해서 연구 결과를 얻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제주에서도 비슷한 방식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제주 해안선 길이가 253km인데 1km 당 한 사람이 담당하면 시민 250명으로 제주 해안선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민과학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관련된 연구기관이나 학술기관이 처음부터 함께 하면서 분석, 결과 도출까지 염두에 두면서 진행해야 한다”며 시민과학자가 단순히 ‘자원봉사자’나 ‘지킴이’ 역할을 넘어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장이권 교수는 제주 해안선 250여km를 시민 1명이 1km씩 총 250여명이 감시하고 관리하는 '코스트와치 제주도'를 제안했다. (이미지 출처=장이권 교수 자료집)
장이권 교수는 제주 해안선 250여km를 시민 1명이 1km씩 총 250여명이 감시하고 관리하는 '코스트와치 제주도'를 제안했다. (이미지 출처=장이권 교수 자료집)

 

시민이 수집한 데이터가 정책 변화로 이어지려면

두 번째 기조발제에 나선 강은주 ㈔생태지평연구소 연구기획실장은 ‘갯벌키퍼스 사례로 본 시민과학 플랫폼의 역할과 가능성’을 주제로 발표했다.

‘갯벌키퍼스’는 시민조사자들이 국내 갯벌 현장을 기록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공유하도록 마련된 온라인 플랫폼이다. 갯벌 생태계 감시체계를 확보하고 갯벌을 보전하기 위해 생태지평연구소가 구축했다. 

강 실장은 “한국 갯벌은 생태적으로 우수한 자원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겐 경제 활동을 하는 공간이기도 하고 일터이기도 하다”며 “갯벌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사람들이 그 공간의 생태적인 가치를 지키는 주체가 되게 하는 것이 저희의 고민이었다”고 갯벌키퍼스의 개발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시민들이 (갯벌 보전 활동에) 참여하되 체계적인 조사를 바탕으로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축적할 수 있어야 하고 이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개해서 누구나 확인할 수 있도록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우린 지역주민을 시민과학자로 성장시키는 데 주목했다”고 말했다. 

또 “시민과학은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시민들이 수동적 참여가 아니라 수평적·능동적인 참여가 가능하게 하고 시간적, 재정적 한계를 극복하는 데 유용한 방법론”이라며 “연구 과정 자체가 거버넌스 기반이 되거나 토대가 될 수 있고 문제 인식부터 거버넌스를 형성하는 데 시민이 주체로서 기여할 수 있다”고 시민과학의 역할과 가능성을 피력했다. 

갯벌키퍼스 홈페이지엔 시민모니터링단이 현장 기록한 데이터를 아카이브한 플랫폼이 구축되어 있다. (사진=갯벌키퍼스 홈페이지 갈무리)
갯벌키퍼스 홈페이지엔 시민모니터링단이 현장 기록한 데이터를 아카이브한 플랫폼이 구축되어 있다. (사진=갯벌키퍼스 홈페이지 갈무리)

강 실장은 시민과학 활성화를 위한 과제로 △데이터 신뢰성 제고 △ICT 기술을 활용한 참여 확대 △네트워크 구축과 협업 지원 △정부의 제도적 지원 등을 꼽았다. 

우선 “어떻게 하면 데이터들이 의미 있는 정책을 의사결정하는 데 근거가 될 수 있게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시민과학 설계 단계부터 목적까지 전문가가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ICT 기술을 활용해 데이터와 정보를 실시간으로 소통 가능하게 해야 하고 전문가의 검증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며 “시민 누구나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제공해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지방자치단체와 대학, 공공기관 등과 시민과학자 간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시민과학 연구를 정부나 지방정부가 제도적으로 지원해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포럼에선 기조발제에 이어 △남방큰돌고래 출현 모니터링과 등지느러미 목록(장수진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 대표) △제주바다의 어류 변화를 추적하는 굿다이버 민간 잠수사들(김병직 제주 굿다이버 물고기반/수산학 박사) △백령도 점박이 물범 주민 모니터링 활동(박정운 황해물범시민사업단 단장) △제주연안 조류 개체군 변화에 대한 장기 모니터링(김예원 '제주, 그대로가 아름다워' 저자) △해양쓰레기를 기록하고 나누는 방법(박요섭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기술원)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연산호 모니터링(신주희 파란 활동가) 등의 사례 발표가 공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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