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50만 교원 7차 총궐기 대회'가 열렸다. 주최 측 추산 30만여명이 모였다. (사진=교사 온라인 커뮤니티 인디스쿨 제공)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50만 교원 7차 총궐기 대회'가 열렸다. 주최 측 추산 30만여명이 모였다. (사진=교사 온라인 커뮤니티 인디스쿨 제공)

이례적이다. 선생님들이 거리로 나와 피켓을 들었다. 그 수는 적게는 수만에서 많게는 수십만에 이른다. 집회 운영은 교원단체나 교원노조가 아닌 한 교사 온라인 커뮤니티 중심으로 이뤄졌다.

한국 사회에서 지금까지 이런 광경은 없었다. 정치권도, 교육계도, 여론도 놀랐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는 교사들이 쉽게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환경이라는 반증이면서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거리로 나온 교사들의 절박함을 짐작케 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시작은 지난 7월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던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교사가 목숨을 끊은 사실이 알려지면서였다. 7월22일부터 지난 16일까지 매주 토요일 전국 교사들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모였다. 총 9차례. 선생님들은 서이초 교사와 한국의 또다른 ‘서이초 교사’들의 죽음을 기리며 더 이상의 죽음은 안 된다고 외쳤다. 

최근 교권 보호 4법(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교육기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과연 이 정도면 충분할까. 교실은 교사들에게 안전한 공간이 된 걸까. 

제주투데이는 지난 17일 제주시 내 모처에서 제주지역 초·중·고 교사를 만나 대규모 교사 집회의 의미와 오늘날 학교 현장, 교사들이 바라는 교실의 모습 등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3차례에 걸쳐 싣는다. 참고로 이 만남은 ‘종이호랑이’의 기고(나는 운이 좋았다)가 발행된 이후 자신의 목소리도 보태고 싶다는 선생님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성사됐다. (이들은 이전에는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였다.)

 *인터뷰이 실명 사용 시 개인정보 노출에 따른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별칭을 사용했다.(종이호랑이: 고등학교 교사, 여우: 초등학교 교사, 루피: 중학교 교사)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7차 50만 교원 총궐기 대회가 열렸다. 이날 참가자 수는 주최 측 추산 30만명이다. (사진=종이호랑이 제공)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7차 50만 교원 총궐기 대회가 열렸다. 이날 참가자 수는 주최 측 추산 30만명이다. (사진=종이호랑이 제공)

 

30만이라는 ‘숫자’ 어떻게 가능했을까

종이호랑이_분노 때문 아닐까. 서이초 선생님의 죽음을 둘러싼 배경들을 학교 측에서 숨기고 은폐하려고 했다는 얘기가 선생님들 사이에서 퍼졌다. 분노가 극대화됐다. 

여우_우선 응축된 ‘무언가’가 있었다. ‘아동학대처벌법’(2014년 제정)이 생기고 나서 법으로 선생님들을 괴롭히는 일들은 학교 현장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일반 시민들에겐 이번 사건이 뉴스를 통해 잘 알려지게 됐지만 최근 4~5년 정도 건너건너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가 계속 들렸다. 교사에게 말도 안 되는 비난을 퍼붓는 사회적 계층이 높은 학부모들, 순수하고 열정이 있지만 아무 힘이 없는 초임 교사, 그리고 문제가 터져도 면피하는 관리자…. 이 구조를 보면서 대부분의 교사들이 자기 일로 '빙의'했을 거다. 현실과 타협해 가며 열정을 잃어갔던 순간들이 떠오르면서 폭발했다. 그래서 시위로 이어질 수 있었다. 

둘째로는 정보의 공유다. 요즘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소통 방식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집회 관련 소식도 빠르게 알 수 있고 무엇보다 교사들끼리 실시간 토론이 이뤄진다. 이걸 통해서 우리 스스로 엄청나게 많은 학습을 했다. ‘이번에 바꾸지 못하면 우리나라 공교육 진짜 무너질 수 있겠구나.’라는 데 모두가 공감한 거다. 잘못된 법 하나가 공교육을 끝장낼 정도로 얼마나 치명적인지, 이대로 가면 왜 무너질 수밖에 없는지를 알게 된 거다. 

종이호랑이_여우 말을 듣고 보니 나 역시 학습한 게 있다. 교직 생활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나만 참으면 된다’거나 ‘내가 부족한가’하는 자책을 많이 했다.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을 보면 ‘사춘기니까 내가 이해해야 해’라고 참고, 간혹 관리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그런 것까지 왜 나한테 묻나. OO선생이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라‘는 답만 돌아오니 ’역시 내가 부족해서 그런가 보다‘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이게 나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모두가 같은 문제로 힘들구나, 참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구나,를 알게 됐다. 

루피_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도 영향을 줬다. 최근에 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오픈카톡방이 많이 생겼다. 익명성이 보장되니까 사람들이 수많은 얘기를 쏟아낸다. 이전엔 쉽게 말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그러다 보니 예전엔 내가 힘들었던 이유가 막연했는데 이젠 그 이유에 대한 본질을 깨달아 갔다. 본질이 명확하게 보이니까 ‘아, 이건 법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법을 바꾸려면 우리 서로가 힘을 모아야겠구나’ 하는 걸 알게 된 거다. 

여우_하나 더 덧붙이자면 이번 일을 통해 정치적 효능감을 느낀 것도 한몫했다. 우리 목소리가 반영된다는 걸 느낀 최초의 사건이다. 누가 우리 대신 해결해줄 수 없다. 우리가 직접 나서니 여론이 움직이고 바뀐다는 걸 경험했다. ‘우리가 한목소리를 내니까 사람들이 듣는구나’라는 걸. ‘나 하나 집회장에 가고 안 가고가 크게 다르겠어?’하는 마음이 아니라 ‘내 한 몸이 보태지는 게 의미가 있구나’하는 걸 느꼈다. 앞으로는 이전과 확실히 다를 것이라는 가능성을 느꼈다. 

전교조 제주지부와 제주도교원단체총연합회 등 도내 6개 교원단체가 주최한 '9·4 추모문화제'가 4일 제주도교육청 앞에서 열렸다.  (사진=박지희 기자)
전교조 제주지부와 제주도교원단체총연합회 등 도내 6개 교원단체가 주최한 '9·4 추모문화제'가 4일 제주도교육청 앞에서 열렸다.  (사진=박지희 기자)

 

교육부장관이 ‘징계 운운’하는 데 대해 위축되는 분위기는 없었나.

여우_‘어떻게 할 거냐’하는 토론이 이뤄지긴 했다. 하지만 징계가 무서워서 못하겠다는 의견은 거의 못 본 것 같다. ‘우리 아이들 어떡하지’하는 고민이 있었고 한쪽에선 ‘더 크게 보면 참여하는 게 아이를 위하는 길’이라는 의견이 있었을 뿐이다. 일부에선 교육부의 대응 방식에 화가 나서 연차를 낸 분도 있다. 위축된 분위기는 없었던 것 같고 오히려 ‘우리를 도대체 뭘로 보는 거지? (징계)하려면 해라. 나도 같이 당하겠다. 이건 협박이다’라는 분노가 더 컸다. 

루피_나 역시 화가 나서 서울 집회에 가겠다고 했다. (교육부의 대응 방식이)30만이 모이게 한 원동력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여우_그런데 생각해 보니 관리자와 교사가 느끼는 온도차가 달랐던 거 같다. 원래 그날 재량휴업하겠다는 학교 수가 500여곳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징계 얘기 나오면서 많이 줄었다. 관리자들이 몸을 사리는 경향이 있는 거다. 하지만 연가나 병가를 쓰겠다고 했던 교사 수는 거의 줄지 않았다. 그날 어떤 학교장은 병가를 쓰는 교사에게 ‘학교를 버리는 행위’라고 했다더라. 교사를 힘들 게 한 건 교육부장관이 아니라 오히려 매일 만나는 관리자였던 거다. 

종이호랑이_‘공교육 멈춤의 날’에 동참하려고 교장에게 결재를 받으러 가니까 ‘교육부에서 그날은 연가 쓰면 안 된다고 공문이 내려오지 않았느냐. 절대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하더라. 그래서 제주도교육감도 그날만큼은 복무검사 안 하겠다고 기자회견까지 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더니 교장이 ‘교육감이 뭐가 중요하냐. 교육부가 안 된다고 하는데’라고 하더라. 

전교조 제주지부와 제주도교원단체총연합회 등 도내 6개 교원단체가 주최한 '9·4 추모문화제'가 4일 제주도교육청 앞에서 열렸다.  (사진=박지희 기자)
전교조 제주지부와 제주도교원단체총연합회 등 도내 6개 교원단체가 주최한 '9·4 추모문화제'가 4일 제주도교육청 앞에서 열렸다.  (사진=박지희 기자)

 

공교육 멈춤의 날, 제주도교육청에 2000여명이 모였다.

루피_전혀 예상을 못했다. 넉넉하게 준비한다고 손피켓 1000개를 가져갔는데 금방 동이 났다. 나중에 2000명이 모였다고 하는데 소름이 끼쳤다. 내 생각보다 분노가 더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우_무엇보다도 교사들이 큰 위로를 받았을 거다. 다들 지금까지 느꼈던 감정은 무력감이 가장 컸을 거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할 수 있는 게 없고 목소리를 내봤자 나 혼자만 ‘벌떡교사’(침묵하지 않고 벌떡 일어나 목소리를 내는 교사를 뜻한다고 한다)로 찍힌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선생님들이지만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문제라도 뚫고 나갈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나만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구나.(웃음)

종이호랑이_손피켓이 모자란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다. 서울에선 다들 잘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눈치를 안 볼 수도 있는데 제주는 지역 특성상 '누가 누가 나왔네'라는 걸 쉽게 알 수도 있다. 그래서 그렇게 많이 모일 줄 몰랐다. 무대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나 역시 용기 내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자리에 함께 했던 선생님들을 보며 용기를 낼 수 있었고 매체에도 글을 기고할 수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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