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관계자와 장애당사자 활동가들이 웰니스관광지로 지정된 서귀포시 곶자왈 환상숲에 대한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양유리 인턴기자)
지난달 24일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관계자와 장애당사자 활동가들이 웰니스관광지로 지정된 서귀포시 곶자왈 환상숲에 대한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양유리 인턴기자)

"아이고, 곶자왈은 돌로 이뤄진 숲이라 흙길이 없어요. 미리 알아보고 오시지..."

지난달 24일 오후 서귀포시 곶자왈 환상숲. 뇌성마비 장애인 당사자 강문종씨의 전동휠체어가 숲길 입구 앞에 멈춰섰다. 바퀴 앞에는 돌길이 펼쳐져 있었다.

한 관광객이 강씨의 옆을 지나쳐 바위길을 뚜벅뚜벅 걸어갔다. 강씨 등 장애인 활동가들이 이도저도 못하고 애매하게 있자, 옆에서 지켜보던 해설사가 한 마디 했다. 

이곳은 '제주도 웰니스 관광 육성 및 지원 조례'에 따라 지정된 '웰니스 관광지'다. 제주도는 2021년 당시 전국 최초로 이 조례를 제정, 웰니스 관광지 인증제를 도입한 바 있다.

'웰니스(wellness)'란 웰빙(well-being)과 행복(happiness), 건강(fitness)의 합성어로,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건강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인 상태다. 신체적 건강 뿐만 아니라 종합적인 건강을 지향하는 개념이다.

도가 인증기관으로 지정한 제주관광공사는 웰니스 관광지 11곳을 선정했다. 참가자격은 제주만의 특별하고 청정한 자연 지원과 힐링.치유의 장소, 연중 운영되는 체험 또는 프로그램등을 보유한 곳이다. 

지난달 24일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관계자와 장애당사자 활동가들이 웰니스관광지로 지정된 서귀포시 곶자왈 환상숲에 대한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양유리 인턴기자)
지난달 24일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관계자와 장애당사자 활동가들이 웰니스관광지로 지정된 서귀포시 곶자왈 환상숲에 대한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양유리 인턴기자)

매해 다른 주제를 선정, 장애인 이동권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는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지난 11월 10일부터 이번달 4일까지 웰니스 인증 관광지 4곳에 대한 접근성을 살펴보고자 했다. 웰니스 관광에 관광약자 및 장애인 당사자가 배제되면 안된다는 취지다.

구체적으로 △곶자왈환상숲 △파파빌레 △머체왓숲길 △치유의숲이다. 뇌성마비·시각·지적·지체 장애인 활동가 4명과 활동지원사 1명, 센터 관계자 1명이 모니터링에 함께 했다.

이들은 편의시설의 구조 및 재질 등 세부기준을 참조한 체크리스트를 작성했다.  정보 및 안내, 장애인 주차장, 매표소, 관광지 이동로, 다목적화장실 등 항목으로 구성했다.

지난달 24일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관계자와 장애당사자 활동가들이 웰니스관광지로 지정된 서귀포시 곶자왈 환상숲에 대한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화장실 단차가 높아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모습. (사진=양유리 인턴기자)
지난달 24일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관계자와 장애당사자 활동가들이 웰니스관광지로 지정된 서귀포시 곶자왈 환상숲에 대한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화장실 단차가 높아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모습. (사진=양유리 인턴기자)

하지만 이날 모니터링은 허무하게 끝났다. 휠체어가 숲길에 진입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장애 당사자의 경우 해설사의 동행으로 관광할 수 있었다. 

활동가들은 아쉬움에 출구 쪽 간이 통로로 자유코스 초입부까지는 이동했다. 하지만 이조차도 자갈길이라 휠체어 장애인에게는 쉽지 않았다. "바퀴에 구멍날 것 같아요." 바퀴를 굴리던 김동우씨가 농담반 진심반으로 말했다.

본코스 앞에 도착했다. 역시 휠체어 바퀴가 굴러가기엔 무리였다. "곶자왈에는 임의로 시설물을 설치·변경할 수 없다"고 말한 해설사는 아쉬운대로 이곳이 가수 BTS의 뮤직비디오와 유명 뷰티브랜드 광고 촬영지였다며 해설을 이어갔다. 

"이제 비켜줘야 할 것 같아요."  활동가들이 사진을 찍고 있는 동안 외국인 단체 관광객 열댓명이 우르르 몰려오자 해설사가 말했다. 

매표소 바로 옆 마련된 화장실과 대기소의 단차도 7~8cm로 높았다. 비장애인은 가뿐히 넘을 수 있는 턱이지만, 최대 2cm만 되도 겨우 지날 수 있는 휠체어를 탄 사람에게는 벽과 같다.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지난 11월 10일부터 이번달 4일까지 웰니스 인증 관광지 4곳에 대한 모니터링을 진행했다.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파파빌레 관람로 입구, 파파빌레 카페 출입구, 머체왓숲길 화장실, 치유의 숲 관람로. (사진=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제공)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지난 11월 10일부터 이번달 4일까지 웰니스 인증 관광지 4곳에 대한 모니터링을 진행했다.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파파빌레 관람로 입구, 파파빌레 카페 출입구, 머체왓숲길 화장실, 치유의 숲 관람로. (사진=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제공)

'울퉁불퉁한 길, 경사로 없는 계단' .... 대부분 부적합 

곶자왈환상숲은 장애인 전용주차 구역이 마련돼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영역에서 적합하지 않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 외 모니터링을 진행한 웰니스 관광지도 마찬가지다.

11일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제공한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머체왓 숲길은 멍석길, 잔디조성 통로로 요철이 심해 수동휠체어 사용자는 혼자 이동하기 무리였다.

파파빌레의 경우, 일반 주차장에 장애인전용표시를 사용해 규격에 맞지 않았다. 이조차도 통행로로 이용을 못하는 상황었다. 별도 다목적 화장실도 준비되지 않았고 휠체어 사용자는 관람로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치유의숲은 15km 규모 관람로 중 무장애관람로가 1km 마련돼 있었다. 관계자는 "현재도 일부 구간을 무장애숲길로 개선 중"이라며 "향후 1km 구간이 추가 개장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관람로 곳곳마다 촉지도(시각장애인용 지도)가 배치돼 있었으며, 음성안내서비스 스위치도 마련돼 있었지만 작동은 되지 않았다. 

지난달 24일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관계자와 장애당사자 활동가들이 웰니스관광지로 지정된 서귀포시 곶자왈 환상숲에 대한 모니터링을 진행한 가운데, 김홍주 팀장과 강동우.강문종 활동가가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양유리 인턴기자)
지난달 24일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관계자와 장애당사자 활동가들이 웰니스관광지로 지정된 서귀포시 곶자왈 환상숲에 대한 모니터링을 진행한 가운데, 김홍주 팀장과 강동우.강문종 활동가가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양유리 인턴기자)

"말만 웰니스? ... 모두 누릴 수 있는 관광지 조성돼야"

활동가들은 장애인에 대한 세심한 고려 없이 이같은 제도가 이뤄지는 것에 대해 지적했다. 장애인 권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기준은 비장애인에만 맞춰지고 있다는 것.

명칭대로 '웰니스' 관광이 목적이라면 장애인·비장애인 구분없이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각장애인 문채영 활동가는 "시각장애인의 경우 사전 예약시 해설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었지만 점자 안내책자 미비 등 부족한 부분이 훨씬 많았다"며 "'웰니스'라는 말 자체는 번지르르하지만 소외되는 사람도 있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제주도에서 무장애 관광 정책을 펼치고 있다지만 극히 일부"라며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어울리며 자유롭게 관광을 할 권리가 있다. 장애인을 위해 개선된 환경은 비장애인들에게도 편한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최희순 제주장애인자립센터 소장은 "웰니스관광지 선정시 장애인 접근성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장애인 관련 지침이나 규정은 전무한 상태"며 "자격 제한 기준도 국세 및 지방세 체납, 채무불이행 등에 국한돼 있다"고 말했다.

또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여부와 접근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조례에도 관광약자에 대한 조항은 없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 이동 및 관광약자의 편의를 위한 조항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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