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이 28일 오후 제주복지이음마루 3층 강의실에서 제주도가 개최한 '제3차 인권 보장 및 증진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전문가 토론 및 공청회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이 28일 오후 제주복지이음마루 3층 강의실에서 제주도가 개최한 '제3차 인권 보장 및 증진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전문가 토론 및 공청회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제주에 별도의 인권전담기구를 설치하고, 인권기구에 대한 이해, 주민 참여 제도 확보 등을 통한 '인권행정'의 안정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은 28일 오후 제주복지이음마루 3층 강의실에서 제주도가 개최한 '제3차 인권 보장 및 증진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전문가 토론 및 공청회에서 이같이 제언했다.

전근대사회에서 국가의 성격은 오로지 통치기구였으나, 시민혁명을 통해 '국민의 인권 실현' 의무를 갖게 된다. 헌법 10조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로만 끝나지 않고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한다. 

국가사무를 일부 위임받은 지자체도 이에 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김 소장은 지자체에 인권기구를 설치, 주민들의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 새로운 시대 행정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구금과 폭행, 고문, 사형 등 자유권적 의제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사법부, 입법부가 관여를 하는데 비해 지자체는 사회문화적 의제는 지자체가 다룬다"며 "국가는 1인당 GDP 2만불까지는 성장에만 집중하다 3만불부터는 복지국가의 기획이 시작된다. 한국도 변화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뉴노멀시대 행정의 주체는 지자체가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이 28일 오후 제주복지이음마루 3층 강의실에서 제주도가 개최한 '제3차 인권 보장 및 증진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전문가 토론 및 공청회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이 28일 오후 제주복지이음마루 3층 강의실에서 제주도가 개최한 '제3차 인권 보장 및 증진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전문가 토론 및 공청회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일상 속 인권침해, 지역인권기구가 맡아야

국가인권위원회라는 인권기구는 이미 있다. 제주에도 국가인권위 제주출장소가, 제주도 자체적으로도 인권 관련 부서가 존재한다. 그런데 굳이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야 할까?

김 소장은 "그렇다"고 말한다. 국가인권위는 연방기구적 성격으로 갖추고, 일상적 문제는 지역인권기구가 담당하도록 분담하는 게 뉴노멀 시대에 합당하다는 것이다.

그는 "제주도는 관련 임무를 맡고 있지만 인권 그 자체를 자체 업무로 삼지 않고 있다. 각 부서를 조정하고, 시민사회의 소통경로 역할을 하는 인권전담부서가 필요하다"며 "인권전담부서는 각 부서들이 인권을 지향한다면 필요가 없지만, 행정적으로 인권은 아직 낯선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별도로 인권기구를 설치해야 하는 이유는 행정청 안에 있으면 객관적으로 성찰.반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라며 "당장 인권전담부서와 인권기구가 거버넌스를 구축, 협력하는 게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헀다.

양적 성장 이뤘지만 ... 인권기구 이해 부족 '여전'

2012년 국가인권위의 '지자체인권표준조례안 권고' 이후 제주를 포함한 17개 시.도 대부분 인권조례를 마련하는 등 지자체 인권체제는 양적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김 소장은 질적 성장을 모색하는 단계로는 접어들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구색은 갖췄지만 유기적 연계 고려 없이 구성돼 시너지가 나지 못하는 구조로, 불안정한 상태라는 것.

특히 성과중심적인 측면에서만 평가하게 되면 정작 인권행정의 사명과 정체성, 지속가능성과 같은 본질이 가려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원인으로 인권기구에 대한 이해 부족을 꼽았다. 그러면서 인권기구에서는 인권 교육과 실태조사, 정책기능이 유리돼 있는 것이 아닌 하나로 연계돼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수많은 지자체에서는 인권센터, 인권보호관 등 제도를 만들면서 업무의 70~80%를 성희롱.직장 내 괴롭힘 사건 조사를 담당토록 한다"며 "하지만 인권기구의 조사는 검경처럼 강제 수사로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게 아니라, 양 당사자가 동의하는 전제 아래서만 조사할 수 있다. 그런데 정체성과 맞지 않는 업무를 하는 곳이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또 "인권기구의 조사는 사건이 터진 뒤 옳고그름을 분별하는 사후 관리가 아니"라며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기적 실태조사를 하거나, 인권 교육을 통해 인식 개선을 도모하는 예방적 권리 구제가 인권위 조사의 핵심 기능"이라고 설명헀다.

이어 "사전통보를 통해 실태조사를 하는 것을 두고 실효성이 없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며 "인권기구는 관리감독기관이 아니다. 관계자들의 인식 개선, 인권적 기술 지원을 통해 기관 스스로가 인권친화적 업무.사무를 유인하는 것이 주 역할"이라고 말했다. 

제주도가 28일 오후 제주복지이음마루 3층 강의실에서 '제3차 인권 보장 및 증진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전문가 토론 및 공청회를 개최한 가운데, 토론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 (사진=박지희 기자)
제주도가 28일 오후 제주복지이음마루 3층 강의실에서 '제3차 인권 보장 및 증진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전문가 토론 및 공청회를 개최한 가운데, 토론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 (사진=박지희 기자)

그는 제주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지자체가 기존 정책 실현을 위해 시민사회 전문가를 동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주도에 인권 정책에 대해 조율하는 정책협의체를 만드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김 소장은 "제주도에 각종 자문기구가 있는 점을 활용, 각 위원회의 위원들이 인권위에 겸직하는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 국회 특별위원회를 떠올리면 쉽다"며 "정책적 유기성도 확보하고 가장 유연한 방법"이라고 의견을 냈다.

이어 "특히 인권행정이 제대로 되기 위해선 인권거버넌스의 안정화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주민들의 인권시민사회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며 "숱한 지자체가 인권거버넌스를 전문가 중심으로 운영하지만 정작 주민들은 생활의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들만의 리그'에 그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행정이 선심을 베풀거나, 시민사회를 존중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제주도의 정책을 널리 홍보하는 유용한 수단으로 인권행정을 활용할 수도 있다"며 "인권은 행정 전반에 걸친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어진 토론에서 안효철 제주인권위 제주출장소 소장은 도내 인권위 진정 중 지자체 사무 관련 인권침해 사건이 적지 않다는 것 자체가 인권행정 및 조직 체계가 필요하다는 방증이라고 주장했다.

안 소장은 "2019년 제주출장소 설치 이후 약 360건의 진정이 접수됐는데, 약 70건이 지자체와 관련된 사건이다. 이는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경찰 사건(약 90건)의 뒤를 잇는다"며 "지자체나 공공기관이 민간에 자정을 요구하지만, 자체 자정에 대해선 부족하다고 보인다"고 말했다.

김병준 한양대 교수는 특히 교육.문화 등 예방적 차원의 사업을 확장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헀다. 그는 아울러 "인권위가 각 지역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수용하고 있는지, 또 지자체와의 소통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인권행정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실무자가 느끼는 피로감에 대해 원인 분석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강협 제주평화연구소 왓 소장은 조사에 대해 행정과 인권기구의 개념 인식 차이가 크다는 점을 짚으며 인권침해 구제 기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헀다.

신 소장은 "행정에서는 조사 자체를 형사사법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도 인권조례에도 조사 관련 조항은 모호한 부분이 있다"며 "특히 인권의 진행의 역사에 있어서 민관이 상반된 입장을 보일 수 있지만, 이러한 활동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용인이 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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