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2023 제주인권포럼'이 제주시 아스타 호텔에서 개최된 가운데, '장애인 노동, 노동의 개념 전환을 이야기하다' 세션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지난달 30일 '2023 제주인권포럼'이 제주시 아스타 호텔에서 개최된 가운데, '장애인 노동, 노동의 개념 전환을 이야기하다' 세션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1990년 '장애인고용촉진법'이 제정된 지 30여년이 지난 지금, 제주지역 장애인 노동 환경은 과연 나아졌을까?

장애인일자리사업 등 여러 정부 사업이 추진되고는 있으나, 장애인 당사자 및 전문가는 장애인 노동의 개념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노동이 불가능한 장애인에게 기존 노동시장 체계를 끼워 맞추는 게 아닌, 비장애인 중심체계가 아닌, 다양한 노동을 고안해야 한다는 얘기다. 

도내 9개 시민사회단체가 협력, 주관하는 '2023 제주인권포럼'이 지난달 30일부터 1일까지 양일간 제주시 아스타 호텔에서 개최되고 있다.

제주장애인인권포럼이 주관한 '장애인 노동, 노동의 개념 전환을 이야기하다' 세션에 토론에서는 ▲고은지 제주한라대 사회복지학과 학생 ▲김홍주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팀장 ▲강경균 제주도 장애인부모회 사무처장 ▲국가인권위원회 제주출장소 소장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좌장은 고현수 제주도 인권보장 및 증진위원회 위원장이 맡았다.

지난달 30일 '2023 제주인권포럼'이 제주시 아스타 호텔에서 개최된 가운데, '장애인 노동, 노동의 개념 전환을 이야기하다' 세션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지난달 30일 '2023 제주인권포럼'이 제주시 아스타 호텔에서 개최된 가운데, '장애인 노동, 노동의 개념 전환을 이야기하다' 세션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김홍주 팀장은 장애인 당사자의 자립과 노동의 활성화를 위해 비장애인이 아닌, 장애인 당사자주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권리옹호, 문화예술, 인식개선 직무를 맡는 '권리 중심' 공공일자리가 제주에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가 제시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도내 장애인 고용률은 △2019년 34.2% △2020년 40.4% △2021년 36.9% △지난해 30.3%로 집계됐다. 지난해만 봐도 전국 평균(34.3%)보다 낮은 편이며, 타 시·도와 비교했을 때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김 팀장은 "2007년부터 추진되고 있는 장애인일자리사업은 분명 장애인당사자에게 필요하다. 그러나 직무를 살펴보면 전 장애를 고려하지 않은 직무가 많다"며 "장애 정도 및 환경에 따라 차별을 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장애인일자리사업은 일반형.복지형, 특화형으로 나뉘는데, 외상.발달.정신장애 등 이동이나 소통이 어려운 장애인에게는 일반형.복지형 직무는 무리가 따른다"며 "현재 사업은 일부 노동이 가능한 장애당사자에게만 적합해 한정적"이라고 사례를 들었다.

그는 "권리 중심 노동은 상품을 만드는 게 아닌 권리를 생산하는 것이며, 2020년 서울을 시작으로 여러 지자체에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이라며 "기존 일자리 사업과 달리 공공영역에서 중증장애인의 일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장애인이 사회에 완전히 녹아들기 위한 필수요소는 취업이다. 소득창출과 자아실현을 통해 이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경균 사무처장은 장애인 노동시장이 양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질적으로는 그렇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능력 신장, 기술 향상이 아닌 개인과 사회, 환경이 연계 협력하는 과정을 만드는 것이라고 짚었다.

강 사무처장은 "장애인 고용률은 여전히 낮고 근속기간은 짧은 상황"이라며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동료를 만나 취업을 연계시기는 공공일자리사업에 대해선 노동부가 실적 부진을 근거로 내년 예산을 삭감했다"고 말했다.

이어 "실적이 낮은 이유는 사회가 중증장애인에게 일할 자리를 내어주지 않기 때문"이라며 "해당 사업은 실적을 달성해야만 인건비를 지급하는 구조였고, 노동 방식에 대한 지원은 전무했다. 지도점검 과정에서 장애인 노동자에게 연차를 제공하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지적까지 받는 등 아직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유명한 인디언 속담처럼 장애인 노동 관련 계획을 분석할 때 실적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닌, 기관과 제도 등에 초점을 두고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피력했다.

지난달 30일 '2023 제주인권포럼'이 제주시 아스타 호텔에서 개최된 가운데, '장애인 노동, 노동의 개념 전환을 이야기하다' 세션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지난달 30일 '2023 제주인권포럼'이 제주시 아스타 호텔에서 개최된 가운데, '장애인 노동, 노동의 개념 전환을 이야기하다' 세션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장애인 당사자인 고은지 학생은 개인적인 경험을 밝히며, 장애인들도 일자리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피력했다.

그는 "제주여상 재학 당시 직업체험의 분야가 한정적이었다. 바리스타나 세탁, 제빵을 제외하면 선택할 수 있는 게 없었다"며 "'졸업하면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구나'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대학에 진학 후 취업준비를 하면서도 걱정이 많다. 장애 분야가 아닌 곳으로 취업한다면 저를 받아줄지 걱정"이라며 "장애가 있어 일처리가 느릴 순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장애인도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안효철 국가인권위원회 제주출장소 소장은 국제사회에서 국내 장애인 노동권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설명했다. 그러면서 장애인 고용시장은 하향평준화를 지향하는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안 소장은 "지난해 9월 614차 UN장애인권리위원회는 회의에서 최종권고문을 채택, 대한민국 정부에 우려 상황을 세 가지 이야기했다"며 내용을 제시했다.

△국내 노동시장에서 정신장애인의 노동 참여를 배제.제한하는 법률 △많은 장애인 근로자가 최저임금 이하의 급여를 받는 결과를 초래하는 최저임금법 △대체로 격리된 작업장에서 노동하는 장애인 근로자가 점진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구체적 국가 계획이 부재한 점 등이다.

또 "국제장애인권리위원회는 이에 따라 '노동시장에서 장애인의 참여를 배제하거나 제한하는 모든 차별적 법률을 폐지하고, 모든 장애인의 일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효과적인 조치와 광고 채용 절차, 합리적 배려, 재교육 승진 등 업무 및 고용과 관련된 기타 권리에 관한 차별을 근절하기 위한 조치를 채택해야 한다'고 권고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인적인 의견으로, 장애인 일자리 관련 정책 주무부처를 고용노동부가 아닌 보건복지부로 바꿀 필요가 있어보인다"며 "장애인의 복지정책을 보다 확장시키고 이어나가는 방향의 정부조직 개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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