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재훈 기자)
(사진=김재훈 기자)

"우리의 그늘이 되어주는 가로수...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가로수가 뽑혔다. 앞으로도 뽑힐 것이다. 보행자들은 그늘을 잃고 있다. 뜨거운 여름 땡볕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이게 다, 자동차 때문이다. 제주도는 그동안 '자동차 우선주의' 정책을 펼쳐왔다. 도로 확장에 골몰해왔다. 도로를 넓히겠다는 명분에 수십년을 한 자리에서 자라온 가로수 '따위'는 설 자리가 없다. 이쯤 되면 '자동차가 살기 좋은 세상'이다. 제주 행정의 도시 철학이 '보행자들을 위한 그늘이 없다고? 자동차를 사면 되잖나?' 식은 아닌 것인지 묻게 된다.

제주시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지난해 제주도는 광양사거리에서 신제주입구 교차로에 이르는 약 3.6km 구간에 버스중앙차로제 공사를 명분으로 가로수 벌목을 시작했다. 시민들은 반발했다. 행정 당국은 결국 공사를 중단했다. 원희룡 제주도정이 도로를 넓히며 제거한 가로수가 1만 그루가 넘는다. 이때 제주공항에서 신제주로 이어지는 가로수 터널이 제 모습을 잃었다.

(사진=김재훈 기자)
(사진=김재훈 기자)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로수길로 꼽혔던 비자림로 벌목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가로수길이 아무리 아름다워봐라, 잘라버리면 그만이지' 식의 일처리가 아니었던가. 이후 신제주 제성마을 주민들은 손수 심은 40년 된 왕벚나무를 잃었다. 제성마을 주민들은 행정의 무단 벌채로 인해 마을의 역사를 잃은 심정을 토로했다. 끝이 아니다. 정실마을 월정사 가로수길 확장공사로 인해 그 아름다운 가로수길이 훼손될 수 있는 상황이다. 더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일이 아니다.

제주참여환경연대가 연 ‘그래도, 살아간다:서광로 가로수길 세밀화 전시회’. 참여환경연대는 올해 4월, 가로수의 식생을 세밀화로 그리는 '가로수 그리너'를 모집한 뒤 서광로의 가로수와 식생을 관찰하고, 세밀화로 기록하는 활동을 진행해 왔다.  몇 달 동안 프로그램이 진행되었고, 시민들의 그림 실력도 눈에 띄게 늘었다. 처음에는 잎사귀의 형태만 그리다가, 나중에는 명암까지 표현해냈다.

시민 참여자의 작품. 장 자크 상페의 드로잉과 견줄 만하지 아니한가.(사진=김재훈 기자)
시민 참여자의 작품. 장 자크 상페의 드로잉과 견줄 만하지 아니한가.(사진=김재훈 기자)

참여환경연대는 “전시회에 참여한 17명의 그리너들은 가로수 잎 하나, 가로수와 벗하고 있는 풀꽃 하나하나를 자세히 살펴 그리면서, 가로수가 겪고 있는 아픔과 우리에게 주는 기쁨을 체감했다”며 “전시를 통해 가로수에 대한 시민의 관심을 확산되어 제주의 가로수 정책과 도시 정책이 변화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세밀화 그리기에 참여한 시민들은 서광로와 정실마을 월정사 구실잣밤나무 가로수길을 지키자는 내용의 선언문도 낭독했다. 이렇게 가로수와 만난 시민예술은 제주에 푸른 꿈을 심었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이 앞으로도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전시 참여자들에게 말했다. 당장 도로확장 공사를 앞두고 있는 정실마을 월정리 가로수길로. 이들은 “전시를 준비하면서 실무자들이 많은 고생을 했어요”라고 웃으며 답했다. ‘이 고생을 또 하라고요?’라는 뉘앙스다.

“이번 전시 참여자들이 직접 주체가 돼 계속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눈치 없이 되물었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이다. 그럼에도, 이어지길 바란다. 시민예술팀은 귀한 것이니까. 어렵게 틔운 싹이 아닌가. 일회성 프로그램으로 사라지고 마는 것은 아무래도 아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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