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마른 주민이 우물을 판다

지난 2021년 '주민조례발안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지방의회나 지자체장만의 권한인 조례를 발의할 수 있는 권한을 일반 주민들에게도 부여하는 법이다. 주민들의 정치 참여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주민조례발안법은 지방자치법에 따라 조례 제정과 개정·폐지 청구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주민의 직접참여를 보장하고 지방자치행정의 민주성과 책임성을 제고함을 목적으로 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주민들이 서명을 모아서 지방의회에 조례 제정·개정·폐지 청구하면 의회가 심사하고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볼 때 100년 이상 늦어졌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1890년대에 주민 발안 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는 그로부터 120년을 훌쩍 넘긴 뒤에야 도입된 것이다. 한참 늦게 도입된 만큼, 지자체는 이 제도가 빠르게 자리를 잡고 잘 운영되도록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제주투데이는 제주 지역에서 주민 발안 제도가 잘 활용되고 있는지 살펴보고, 주민 조례 발안 제도의 활성화를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주민조례발안법 제정 2년...제주 주민조례 청구 총 5건

그동안 제주도민은 제주도의회에 몇 건의 조례안을 발안했을까. 딱 다섯 건이다. 이는 온라인 주민조례 발안 홈페이지 '주민e직접(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종류 별로 보면 조례 제정 청구 4건, 조례 개정 청구 1건이다. 이중 가장 최근에 청구된 주민조례는 '관광산업 청년노동자 지원조례 제정안'이다. 2023년 제주 지역 주민 발의 청구 요건인 1030명 이상의 서명을 모아서 13일 제출할 예정이다. 1000명이 넘는 주민이 모아낸  이 조례 제정안은 무난히 도의회에서 통과될까? 현실적으로 주민이 청구하는 조례안은 꽤 높은 벽을 넘어야 한다.

주민이 청구한 조례 제·개정안의 본회의 가결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현재 청구 추진 중인 이 조례안을 제외한 4건만 놓고 보면 본회의에 회부된 조례는 2건 뿐이다. 그중 단 1건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1건은 여전히 심사중이다. 애초 조례를 제·개정하는 경우 일일이 주민들의 서명을 모아서 제출하는 것보다 지자체나 지방의회 의원들이 직접 발의해 처리하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 주민조례발안은 대개 조례 제·개정 권한과 의무가 있는 지자체와 지방의회가 주민의 요구를 수용하는데 소극적인 경우, 주민이 직접 나서서 조례 발의를 청구하는 차원에서 추진된다.

지자체장이 발의하거나, 의원이 발의한 조례안과 마찬가지로 주민이 청구한 조례안 역시 타당성과 상위법 충돌 등 법리적 검토가 불충분한 경우가 없지는 않다. 또 정치·사회적으로 예민한 조례안의 경우, 의원들이 처리를 미루며 심사 및 의결을 오래 끌거나 부결(대표적인 사례로, 보전지역 관리에 관한 조례 청구를 들 수 있다) 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은 이유들로 인해 의회가 주민이 청구한 조례안을 통과시키는 비율은 통상 낮게 나타난다.

제주택배표준도선료 조례안은 시간을 끄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는 2021년 11월에 청구된 조례안이다. 도의회 관련 상임위는 조례안과 관련해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해를 넘겼다. 제주도가 상위법 위반 및 택배사 자율권 침해를 이유로 들며 반대 입장을 내비쳤고, 이에 도의회 농수축위는 논의 과정을 거치며 조례를 수정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무소식이다. 그렇게, 내년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목 마른 주민들이 팔을 걷어 붙이고 우물을 파내려 갔지만 우물 바닥에서 물이 솟아나올지 말지 지켜보고만 있는 형국이다. 현행법 상 주민발안심사위원회에서 청구 수리된 조례안은 1년 내에 심의·의결하도록 하고 있으나, 1년 더 연장할 수 있다. 택배표준도선료 조례 개정을 청구한 주민들은 그렇게 마냥 기다리고 있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