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훈 제주도지사(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오영훈 제주도지사(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제주 행정체제 개편을 위한 주민투표 근거는 마련됐지만

지난 9일 제주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오영훈 제주지사의 주요 공약 중 하나인 행정체제 개편을 위한 절차를 밟아나갈 수 있게 됐다. 행정체제 개편 관련 주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오영훈 도정은 행정체제 개편 주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확보됐다고 반겼다. 그러나 주민투표 근거를 마련했지만 주민투표 결과가 행정체제 개편으로 나올지는 주민투표를 한 뒤에나 알 수 있다. 주민투표 결과가 나온 뒤에야 오 지사의 행청체제 개편 공약 실현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

11일 제주도 행정체제개편위원회는 '제주형 행정체제 도입 등을 위한 공론화 추진 연구용역' 최종보고회에서 주민투표에서 행정체제 개편안을 놓고 찬성과 반대를 묻는 방식보다 현행 행정체제 유지와 행정체제 개편안 중 하나를 고르는 방안을 제시했다. 행개위는 다음주중 행정체제 개편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오영훈 도정은 행개위가 제시하는 개편안으로 이르면 올해 하반기에 주민투표를 실시하려 하고 있다.

일정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오 지사의 주요 공약인 만큼 임기 중에 마무리하기 위해 서두르는 모양새다. 하지만 주민투표를 실시한다 해도 행정체제 개편으로 결과가 확정될지는 알 수 없다. 행정력과 예산을 쏟아가며 주민투표까지 실시했는데도 불구하고, 거꾸로 현재 행정체제를 바란다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가장 최악인 상황은 주민투표 참여도가 낮아서 결과를 확정하지 못하는 경우다. 그렇게 되면 오 지사의 입지도 좁아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제주특별자치도 행정체제개편위원회가 실시한 도민 여론조사 결과, 행정체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60.8%, 행정구역 개편이 필요하다는 응답률은 54.9%로 나타났다. 이는 행정체제 개편안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시된 여론조사이다. 행개위가 제시하는 행정체제개편안에 대한 도민의 판단은 얼마든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선출직 정치인을 뽑는 선거에 비해 투표율이 저조하게 나타날 수 있다. 주민이 직접 체감하기 어려운 정치적 이슈인 경우, 주민투표 참여도가 낮게 나타나기도 한다.

제주도 행정체제의 근거가 된 2005년 제주 지역 행정구조개편에 따른 주민투표 당시 투표 참여도를 묻는 한 조사 결과 82.8%의 도민이 주민투표에 참여한다고 했지만, 실제 투표율은 그 절반에도 한참 못 미쳤다.투표율은 36.7%에 불과했다. 간신히 주민투표 결과를 확정할 수 있었다. 그처럼 낮은 투표율이 주민 의견을 충분히 담보한 것인지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렇게 주민 여론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상태로 행정체제를 개편한 뒤, 불과 20년만에 행정체제 개편을 위한 주민투표를 실시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도 내외 주민투표 사례들

투표율 저조로 인해 개표조차 못했던 사례도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실시했지만 투표율 25.7%로 저조해 개표조차 못했다.(당시는 3분의 1 이상이 투표에 참여해야 개표할 수 있다) 투표 거부 자체가 주민의 의사표시로 작용했고, 오세훈 시장은 결과를 승복하며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제주에서는 김태환 전 제주지사에 대한 주민 소환 투표가 실시됐지만, 역시 저조한 투표율로 인해 투표함을 열지 못했다. 소환 투표 전 실시된 투표 참여 여론조사 결과 투표에 참여하겠다는 응답률이 49.1%에 달했지만, 정작 투표율은 11%로 저조했다. 주민투표법이 개정되면서 현재는 주민투표 시 투표율과 상관없이 개표해야 한다. 투표율이 4분의 1에 미달되면 주민투표 결과는 확정되지 않는다. 주민투표에 부쳐진 사항은 투표권자의 4분의 1 이상 참여하고, 유효투표수의 절반을 넘는 표를 얻어야 확정된다. 주민들이 관련 내용에 대해 충분히 인지해야 투표 참여도를 높일 수 있다.

서두르다 체할 수도..일정과 과정 냉철히 분석해야

오영훈 도정이 목표대로 올해 안에 주민투표를 실시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행정체제 개편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도의회·시민사회와 논의하고 동의를 구하는 작업도 진행해야 한다. 주민투표 실시 그 자체보다, 주민투표에 붙이는 사안에 대해서 도민이 충분히 인지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20년 뒤에 다시 행정체제 개편을 위한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일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26년 7월 차기 도정 출범에 맞춰 행정체제를 개편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서두르다 체할 수 있다. 공약 실현을 위해 급히 서두르기보다 일정과 과정을 냉철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행정체제 개편을 위한 마무리 작업을 차기 도정에 넘기게 되더라도.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