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조수진 기자)
12일 오전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송령이골에서 위령제가 열리고 있다. 돗자리 위에 이날 참여한 사람들이 저마다 준비해온 제물과 제주가 놓여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12일 오전 11시 서귀포시 남원면 의귀리 송령이골 앞. 잔디 위 깔린 돗자리에 술을 비롯해 사과와 바나나, 김밥, 쑥찐빵, 카스테라, 꽈배기, 고기적, 귤, 달걀 등 여러 음식들이 놓였다. 75년 전 토벌대에 의해 목숨을 잃은 인민유격대원들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저마다 준비해온 제물이다. 

4·3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4·3 시기였던 1949년 1월10일 남제주군 남원읍 의귀국민학교(지금의 의귀초등학교)에서 벌어진 토벌대와 인민유격대(무장대) 간 전투(의귀리 전투) 과정에서 유격대원 51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진=조수진 기자)
12일 오전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송령이골에서 위령제가 열리고 있다. (사진=조미경 소설가)

매년 이맘때쯤이면 4·3연구소와 제주다크투어,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등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과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위령제를 지낸다. 올해는 세 번째 제사다. 

지금이야 안내판이 설치돼 있고 온라인 지도에 등록이 돼 있어 누구나 찾아오기 쉬운 곳이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가시덤불로 뒤덮인 곳이었다. 주민의 증언을 통해 이곳 아래 무장대의 시신이 매장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몇몇 4·3운동가들이 이곳을 찾기 시작했다. 지난 2004년부터 매년 8월15일이 되면 4·3시민사회단체와 문화예술인들이 벌초를 해오고 있다. 

12일 오전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송령이골. (사진=조수진 기자)
12일 오전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송령이골. (사진=조수진 기자)

“오늘은 양력 날짜로 1949년 벌어진 (의귀리) 전투에서 많은 사람이 희생된 날입니다. 새해가 되면 올 한 해 4·3 운동을 시작하면서 마음을 다잡기 위해 여기서 조촐하게 추모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위령제를 제안했던 김경훈 시인은 송령이골에 묻힌 이들의 꿈을 되새기며 매년 4·3 운동을 시작하고 있다. 이날 그는 수첩에 쓴 <속냉이골> 시를 통해 자신의 다짐을 대신했다. 낭독은 조미경 소설가가 했다. 

(사진=조수진 기자)
12일 오전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송령이골에서 열린 위령제에서 김경훈 시인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사진=조수진 기자)
12일 오전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송령이골에서 열린 위령제에서 김경훈 시인이 수첩에 쓴 시 '속냉이골'을 조미경 소설가가 낭독하고 있다. (사진=김누리 제공)

속냉이골_김경훈

배 곯아 죽는 사람 없게 / 낫 놓고 기역자 모르는 사람 없게 / 영원히 자유와 평등 노래하기 위해/의롭게 싸우다 여기 / 외롭게 묻혔어라 

비록 반분단 민족 자주의 염원 / 여기에 처연히 묻혔으나 / 푸르른 산하 / 정신 시퍼렇게 살아있어라

언젠가 / 기필코 일어나 / 통일의 한 하늘에서 / 대륙의 거대한 / 해방 기지개 켜리라

이날 허영선 제주4·3연구소 소장은 “그날의 의로운 항거를, 희생을 기억하는 건 그야말로 이 땅에서 ‘4·3이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며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이라며 “이날이 ‘우리가 무엇을 위해 4·3 운동을 해야하는가’라는 질문을 기억하는 날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조수진 기자)
12일 오전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송령이골에서 열린 위령제에서 허영선 제주4.3연구소 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한편 의귀리 전투가 끝나고 토벌대의 ‘보복 학살’로 인해 목숨을 잃은 주민 80여명의 시신은 송령이골에서 약 2km 떨어진 ‘현의합장묘’에 안장됐다. 유족들이 1964년 ‘삼묘동친회’를 꾸려 봉분을 조성하고 1983년 ‘의로운 넋들이 함께 묻혔다’는 의미로 ‘현의합장묘’ 묘비를 세웠다. 2003년 묘역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1983년 만들어진 현의합장묘 비석. 현재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 현의합장묘역에 세워져 있다. 2024년 1월12일 촬영. (사진=조수진 기자)
1983년 만들어진 현의합장묘 비석. 현재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 현의합장묘역에 세워져 있다. 2024년 1월12일 촬영. (사진=조수진 기자)
12일 오전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 현의합장묘. (사진=조수진 기자)
12일 오전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 현의합장묘. (사진=조수진 기자)
12일 오전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 현의합장묘. (사진=조수진 기자)
12일 오전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 현의합장묘. (사진=조수진 기자)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