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강정에 와서 놀랐던 건 단체 소속이 아닌 개인 활동가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운동'을 하는 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 과거 운동은 이념, 종교의 영향이 컸다. 그러나 현 세대는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새로운 움직임을 만든다. 겉으로 표현하진 않아도 자본주의나 기후위기에 대한 위기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강정엔 커먼즈가 구성돼 있다. 이런 모델이 많아진다면 세상이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 -  자리타(이주 4년차 강정 평화여정 프로그램 '썸띵피스' 기획자) 

"엘리트주의, 관료주의에서 벗어나 내가 속한 곳, 세계 곳곳에서의 평화를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고민했다. 수년이 넘게 이어져온 강정의 일상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 미래를 함께하는 평화운동이다. 이 안에 들어가 나 역시 평화의 길을 만드는 실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용기가 생겼다." - 인혜(이주 3년차, 비건 베이커리 '평화로운 식탁' 운영자

"운동하다보면 '해군기지는 이미 다 지어졌는데 아직도 활동하냐'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하지만 우리의 행동은 또다른 연결을 만든다. 우리가 강정에서 한 외침과 행동들이 도내, 혹은 타 지역, 타국 누군가한테는 평화로 다가올 수 있다. 이곳에서 고민하는 평화는 해군기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기후, 동물성, 여성 등 다양한 이슈들로 확장된다." - 낭(활동 2년차, 국제구호단체 '개척자들' 봉사자)

2012년 3월 7일. 서귀포시 강정마을 해안 구럼비 바위가 발파된 날이다.

이를 막기 위해 도내 시민사회의 단식농성으로 시작된 반대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촛불집회가 열리고 구럼비 해안가에는 천막이 세워졌다. 이 과정에서 물리적인 공권력 행사로 강정과 주민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그러나 바위조각들은 공중으로 흩어졌다. 당시 정부가 주도했던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본격 시작됐다는 상징과 같았다. 마을의 상징이자, 주민들의 일상에 당연한 존재도 사라졌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났다. 해군기지가 완공된 지는 8년이다. 얼핏 보면 모든 게 끝난 것 같다. 강정에는 천막도 없고, 시위하는 주민을 끌고가는 경찰도 없으며, 해군기지 역시 완공됐으니 말이다. 그러나 강정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다.

강정 활동자들이 해군기지 정문 앞에 모여 백배를 하고, 인간띠를 만들고 있다.  (사진=최혜영 강정친구들 사무국장 제공)
강정 활동자들이 해군기지 정문 앞에 모여 백배를 하고, 인간띠를 만들고 있다.  (사진=최혜영 강정친구들 사무국장 제공)

여전히 새로운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 강정을 찾는다. 주축은 청년들이다. 이들은 아침 7시에 해군기지 정문 앞에 모여 백배를 한다. 11시엔 거리에 나와 미사를 하며, 점심식사 전에는 인간띠를 만들며 춤을 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이뤄진다. '일상'이 된 것이다. 

이는 활동가들이 해군기지와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말하는 방식이다. 전장이 일상이 되고 일상이 전장이 된 강정에서는 활동과 일상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구럼비 발파 12주기인 7일 오후 제주인권교육센터에서 강정평화네트워크와 강정마을해군기지반대주민회 주최로 강정활동가들의 간담회가 열렸다.

구럼비 발파 12주기인 7일 오후 제주인권교육센터에서 강정평화네트워크와 강정마을해군기지반대주민회 주최로 강정활동가들의 간담회가 열린 가운데, 최혜영 강정친구들 사무국장이 활동현황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구럼비 발파 12주기인 7일 오후 제주인권교육센터에서 강정평화네트워크와 강정마을해군기지반대주민회 주최로 강정활동가들의 간담회가 열린 가운데, 최혜영 강정친구들 사무국장이 활동현황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해군기지 건설 과정의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것, 제주가 군사기지의 섬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는 것, 평화의 문화를 만들어 살아간다는 목표를 공유한 다양한 집단.'

최혜영 '강정친구들' 사무국장은 '제주해군기지 반대운동'을 이같이 설명한다. 주민들의 결사 투쟁과 강정지킴이들의 자발적 평화운동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군사기지 건설에 맞선 평화운동인 점 ▲지역 주민과 외부 사람들이 연대한 운동인 점 ▲기지 준공 이후 현재까지 강정지킴이가 남아있으며, 새로운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현재 운동의 상당 부분을 이끌고 있다는 점 등이다.

그는 특히 많은 활동가들이 일상 행동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 의미를 뒀다. 한반도의 군사 이슈 등 평화 담론과 도내 난개발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꾸준히 강정에 모이고 있고, 운동의 모습도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 

최 사무국장은 "일상 행동은 한 명이라도 안할 때까지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활동가들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고, 매 시간을 자발적으로 행동으로 채워나가고 있다"며 "특히 활동 과정에서 함께 부대끼고, 돌보며, 때론 싸우기도 하고, 의견을 조율한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의미 있는 모습"이라고 시사했다.

강정 활동가들이 강정 앞바다 연산호 군락에 대한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최혜영 강정친구들 사무국장 제공)
강정 활동가들이 강정 앞바다 연산호 군락에 대한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최혜영 강정친구들 사무국장 제공)

아울러 활동가들은 강정 앞바다 연산호군락 모니터링도 함께하고 있다. 공사 이후 종다양성이 사라진 바닷속의 모습을 촬영하고, 결과물로 전시회를 연다. 

최 사무국장은 이를 '시민들이 해군기지를 감시하고, 피해를 받고 있는 비인간 존재를 기록하는 일'이자 '국가주의와 군사주의, 국가 권력을 고발하는 평화운동이자 예술활동'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연산호는 국가 권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상징"이라며 "해군기지 준공 이후 연산호 군락 면적은 전에 비해 50% 이상 감소했다.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과 정치적 관계를 형성하고 스스로 저항하는 능동적 주체"라고 설명했다.

구럼비 발파 12주기인 7일 오후 제주인권교육센터에서 강정평화네트워크와 강정마을해군기지반대주민회 주최로 강정활동가들의 간담회가 열렸다. (사진=박지희 기자)
구럼비 발파 12주기인 7일 오후 제주인권교육센터에서 강정평화네트워크와 강정마을해군기지반대주민회 주최로 강정활동가들의 간담회가 열렸다. (사진=박지희 기자)

11년 동안 강정에서 활동한 정선녀 천주교 제주교구 강정공소 회장도 이같은 투쟁을 지속적으로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현재 백배가 진행되고 있는 곳은 12년 전 해군기지에 반대하던 사람들이 폭언과 폭행을 버텼던 곳"이라며 "활동가들과 마을주민은 아직까지 후유증을 고스란히 품고 살아가고 있다. 현재의 자유와 평화는 과거의 상처로 얻어진 것이며, 이는 해군기지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자유 속에서 이뤄지는 활동 역시 개인이 역사의 한 획을 긋는 것"이라며 "우리는 매일 전쟁이 없는 세상, 군대가 없는 세상을 꿈꾸기에 평화를 노래하고, 씨앗을 뿌리고, 기도를 올리며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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