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지나 언 땅을 뚫고 일찍 봄을 맞는 작은 들꽃부터 

겨울이 오기 전에 수분을 마치려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생명의 꽃들은 

제주의 세찬 바람과 뜨거운 태양,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며 

자기들만의 세상을 만들어간다.

바닷길을 시작으로 올레길, 곶자왈, 오름, 계곡, 한라산 둘레길과 정상까지 

수없이 걷고, 오르고 내리기를 하는 동안 

발아래 작은 꽃들의 속삭임은 늘 감동을 준다.

봄꽃의 향연, 여름꽃의 향기, 가을꽃의 동화, 겨울꽃의 여행 

사계절 들꽃세상을 계절별로 담아본다.

[왕이메 굼부리]
[세복수초]

음력 2월, 영등달~

마지막 꽃샘추위와 봄 꽃씨를 가지고 제주섬에 찾아온 '영등할망' 

할망이 봄을 만들기 위해 뿌리는 바람은 

1만 8천 빛깔의 바람을 움직이는 할망의 변덕 

할망이 영등에 뿌린 칼바람은 헤아릴 수 없지만 영등달 15일에

영등할망을 실은 배가 우도를 떠나야 제주에 봄이 온다.

[세복수초]

제주의 봄은 언 땅을 뚫고 나온 세복수초에서 시작된다.

이 맘 때가 되면 찾아와 주는 마음씨 고운 꽃 아기씨들은 봄의 기운을 불어넣으며 

차가운 바닥에도, 돌 틈에도, 나무 밑에도 소리 없이 찾아왔다.

[변산바람꽃 '겹꽃']
[변산바람꽃 '녹화']

숲 속으로 들어서자 차가운 땅 위로 

바닥을 하얗게 수놓는 변산 아씨 '변산바람꽃' 

영등할망이 뿌리는 거센 바람을 이겨내며 용기를 내준 순박한 아씨 모습 

밟힐까 조심, 또 조심하며 한 발짝 한 걸음 그냥 스치기엔 

너무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산쪽풀: 대극과/여러해살이풀]
[세복수초: 미나리아재비과/여러해살이풀]
[개복수초: 미나리아재비과/여러해살이풀]
[변산바람꽃: 미나리아재비과/여러해살이풀]
[금잔옥대: 수선화과/여러해살이풀]
[제주수선화: 수선화과/여러해살이풀]

간밤의 추위를 견디고 

남들보다 일찍 겨울잠에서 깨어난 봄의 전령사 '세복수초' 

숲 속 나무들이 초록색을 감췄기에 세복수초의 샛노란 색감이 도드라진다. 

꾸미지 않아도 자연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자태로 

시간이 멈춰 버린 듯 마법 같은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내며 

자연스레 마음의 문을 열게 한다.

[세복수초 피는 계곡]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어야만이 볼 수 있는 들꽃들은 

작은 바람에도 흔들거리며 수수하지만 고운 자태는 걸음을 멈추게 하고 

들꽃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늘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한다.

고은희
고은희

한라산, 마을길, 올레길, 해안길…. 제주에 숨겨진 아름다운 길에서 만난 작지만 이름모를 들꽃들. 고개를 숙이고 납작 엎드린 생명의 꽃들과 눈을 맞출 때 느껴지는 설렘은 진한 감동으로 남습니다. 조경기사로 때로는 농부, 환경감시원으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평범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담고픈 제주를 사랑하는 토박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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