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무소, 감옥, 감방, 오래전에는 옥(獄)터라고 부르기도 했던 교도소가 가까이 있었음을 최근에야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우리 사회와 격리 수용이 필요하고 교정(矯正)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막연하게 생각해 오던 게 잘못(?)인 것처럼 새삼스러운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내 주변에 가까운 이들이 그곳에 수용됐었거나 몇몇은 아직도 영어(囹圄)의 몸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와 함께 느끼는 게 또 있다.  ‘압수수색’이다.

TV뉴스에서 보는 것처럼 가택 등을 수색해 몇 십 개 종이상자 가득 트럭에 싣고 가는 것만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수사 상 필요하기에 하겠지만 이 또한 서울 등 대도시 큰 기업의 세무조사 등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최근에야 느낀다.

이 도 내가 평소에 아는 이들이 수색과 압수대상이 되기에 더욱 그런 것 같다.

말을 바꾸자.  나이가 들면서 교도소를 찾는 일이 종종 있다. 청송 감호소를 영화에서 본적이 있지만 다른 시ㆍ도의 교도소에 면회를 가본 적이 없다.

그러기에 교도소하면 나는 제주교도소만 떠올린다.

그런데 제주시 오라2동 161번지에 위치한 교도소를 찾을 때 느끼는 것이 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이란 시(詩)다.

신앙의 시며, 중ㆍ고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애송시로 교도소 가는 길에 이 시를 이야기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모순인줄 알면서도 이 시가 생각나는 것은 첫 구절인 ‘단풍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습니다’라는 내용 때문이다.

제주교도소 가는 길 교차로에 서면 산쪽으로 두 갈래 길이 나있다.

한쪽 길은 교도소 가는 길이고 다른 한길은 오라 골프장으로 가는 길이다.

한 쪽 길로 들어서면 영어의 못이 되어 꽁꽁 묶이나 다른 쪽 길로 가면 정반대의 레져 산업의 대명사인 골프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나는 종종 이 길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할 때 “일은 하지 않고 골프만 좋아하다가 오비가 나면 교도소로 갈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곤 했었다.

입이 담이 됐는지 실제 한 쪽 길을 좋아하다가 다른 한 쪽 길(교도소)에 들어섰다가 나온 지인들이 몇몇 있다.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간 것이다.

누구는 인생의 여정에 한때 영어의 몸이 되보지 않고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했지만 사회와의 잠깐 격리도 본인은 물론 이웃에게도 슬픈 일이다.

나라를 빼앗긴 일제시대나 독재 정권아래서 ,혹은 암울한 시대 민주화를 위해 투옥됐다면 모를까 다른 것과 연유해 이 길은 가지 않는 게 좋다.

수감자가 단 한명도 없어 제주 교도소 국기게양대에 백기(白旗)가 휘날리는 날을 고대하며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을 옮겨 소개하려 한다.

우연히 교도소 가는 길이 두 갈래길인 이유만에서이다.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덤불속으로 접어든 한 길을

끝간데까지 멀리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한 쪽 길을 택했습니다

먼저 길에 못지않게 아름다운 · · ·  

어쩌면 더 나은 듯도 했지요

사람들의 밟은 흔적은 비슷했지만

풀은 더 무성하고

사람의 발길을 부르는 듯 했습니다

그날 아침 두 길은 아직 낙엽에 덮여있을 뿐

아무 발자국도 없었습니다

먼저 길은 다른 날 가 보리라 생각했습니다

길은 길로 이어지기에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기 어려우리라 여기면서도 · · ·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한숨쉬며 이야기 하겠지요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지

나는 두 길 가운데 사람의 흔적이 적은 길을

선택하였네 그리고 그것은 나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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