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은 최소한 하지 말자. 그리고 불필요한 말장난도 될 수 있으면 줄이자. 최근 제주도가 공들였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부산 개최 확정에 따른 후유증이 확산되자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제주민심 달래기에 부심하고 있다.

지난 30일에는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과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잇따라 제주를 방문해 내년 APEC회의는 제주와 분산 개최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앞서 28일 강창일, 김우남, 김재윤 등 국회의원 당선자들은 열린우리당 제주도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선정위원회가 발표한 내용도 분명히 `분산개최'였다"며 "개최지 발표도 `부산개최'가 아닌 `분산개최'로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공인되지 않은 주장일 뿐이다. 오히려 더 혼란스럽다.

공인되지 않은 주장은 결국 공허한 말장난일 뿐
 
사실이 그렇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 27일 대통령 권한대행인 고 건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13차 APEC 정상회의 준비위원회에서 26일 APEC 개최도시 선정위원회가 건의한 '2005년 11월 20∼21일 부산 개최'안을 최종 확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준비위원회에서 APEC 정상회의와 그 기간에 열릴 각종 장관급 및 고위관리회의 등 15개 관련회의를 각 지방도시에서 분산 개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설명했다.

이에앞서 최종무 APEC준비기획단실장은 APEC 부산 개최 확정 발표와 관련해 "통상장관회의를 제주에서 연다면, 분산개최로 봐도 되나"는 기자들의 질문에 "2005년 APEC 정상회의는 11월14∼21일까지로 이중 14∼15일 고위관리회의, 17∼18일 합동각료회의, 20∼21일 정상회의가 예정돼 있다. 이 회의는 모두 부산에서 열린다. 또 여기에 재무장관회의, 고위관리회의, 실무그룹회의 등을 포함해 15개의 국제회의가 국내에서 개최된다. 이 중 정상회의 다음으로 규모가 큰 통상장관회의를 제주에서 하겠다는 것이고 나머지 회의는 서울 등 여타 도시에서 열릴 수 있다"고 밝혔다.

APEC 회의는 크게 ‘정상회의’와 통상·재무, 중소기업 장관회의 등 ‘장관급 회의’로 나눌 수 있으며 이번에 서울, 부산, 제주가 유치 경쟁을 벌인 것은 가장 규모가 큰 APEC ‘정상회의’다.

제주와 부산이 끝까지 경합을 벌였던 것은 바로 정상회의다. 월드컵처럼 정상들을 반은 제주에서 반은 부산에서 모여 회의를 개최할 수 없지 않은가? 그리고 6000명 가량 참가 예상되는 정상회의와 1200~1500명 가량 참가가 예상되는 통상장관회의를 견줄 수 있는가? 언어의 유희일 뿐이다. 공허한 말장난에 오히려 분노와 허탈감이 앞선다.

부산은 잔치집, 제주는 초상집

도민들이 궁금증은 선정기준이다. 객관적인 심사와 점수에서 밀렸다면 수긍을 할수 밖에 없다. 이번 결정에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선정위는 선정기준을 반드시 공개돼야 한다. 그래야 불을 끌 수 있다.
 
그러나 APEC 정상회의 개최지 선정과 관련한 평가결과 공개를 두고 의견이 엇갈려 그 결과에 관심이 모아진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오늘 제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객관성 시비를 없애기 위한 평가결과 공개에 긍정적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같은 날 제주를 찾은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원칙적으로 점수가 매겨지지 않은 평가결과여서 일반 공개는 어렵고, 다음주쯤 실무기획단 관계자를 제주에 파견해 선정과정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더욱이 도민들이 정치논리 개입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는 이면에는 선정위가 객관적인 기준을 벌고 느닷없이 표결처리 수순을 밟았기 때문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서울, 대구, 경주가 뛴다

미국의 언어학자 B.Wharf는 "말이라는 것은 인간이 이 세상에서 펼치는 최대의 쇼(show)이다"라고 했다. 정 의장이나 반 장관의 '분산 개최' 표현대로 라면, 서울이나 대구, 경주에도 '분산개최'라는 말이 해당된다. 분산개최가 어디 제주뿐이겠는가? 

대구의 경우를 보자. 외교통상부 APEC준비기획단이 APEC 정상회의와 관련, 중소기업장관회의를 대구에서 개최할 것을 적극 검토 중이다. 준비기획단은 지난 4월 초순께 국제회의장이 있는 대구전시컨벤션센터와 인터불고호텔에 대한 현장 실사를 마쳤으며 5월중에 개최지를 확정할 계획이다. 대구시는 APEC 관련 15개 회의 가운데 중소기업장관회의가 지역에서 열릴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고 있다.

경북도의 경우에도 최고경영자(CEO)회의와 산업과학기술 실무그룹회의 등을 경주.포항시 등에 유치하기로 하고 정부와 협의를 진행 중이다. 경북도는 지난해 12월 부산시가 APEC유치 신청서를 제출할 당시 CEO회의를 경주에 유치하기로 사전 합의한데다 중앙 정부가 APEC 관련 회의를 지방도시에 분산 개최키로 방침을 정해 경주 CEO회의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도는 또 포항 철강단지와 구미 반도체 산업단지 등의 산업시설을 활용해 산업과학기술 실무그룹회의를 포항시 등에 유치할 계획이다.

더욱이 정 의장이 제시한 2005 유엔 세계포럼 제주개최 지원은 아직 유효한 게 아니다. 정부혁신 세계포럼은 UN사무총장을 비롯, 189개국에서 국가원수급 20명, 각료와 NGO 지도자 3,000여명 이상이 참석하는 매머드급 박람회로서 규모와 내용면에서 APEC정상회의를 능가한다.

그러나 제6차 UN정부혁신 세계포럼은 이미 서울에서 열린다고 일부 언론이 보도한 바 있어 제주 개최여부에 논란이 일고 있다. 고 건 총리는 지난해 11월 UN정부혁신 세계포럼 제5차회의 차기주최국 결정 회의에 참석, “2005년 제6차 세계 포럼을 서울에서 개최할 것을 제의한다”고 연설한 바 있다.

그동안 우리는 대중매체를 통해 정치인들의 끊임없는 언어의 유희에 분노와 허탈속에 지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인되지도 않은 주장으로 설득하려드는 것은 공허한 말장난이 될지 모른다.

우리는 그러나 죄송하고 안타까운 일이라고 표현한 정동영 의장과 반기문 장관의 통상과 재무장관 회의 제주 개최와 UN 정부혁신 세계포럼 제주개최 지원, 국제회의도시 지정 등의 약속을 지켜보고자 한다. 그만큼 절박하다. 여당과 정부각료가 약속한 만큼 이번 약속은 반드시 지켜질 것인지 도민들은 주목하고 있다.  지금은 정치인들의 책임있는 말과 행동이 아쉬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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