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지중해의 가장 동쪽에 있는 섬 ‘키프로스’엘 갔다. 디오니소스 때문이었다. 묘하게 그리스 신화 중에서 내 마음을 끄는 신(神)은 디오니소스이다. 술을 무척 좋아하시던 아버지에게서 자라서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섬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대학시절 영화에 미쳤던 나는 ‘쥬르스·닷신’ 감독의 ‘히 후 마스트 다이(He who must Die)’ 라는 영화를 보고 감동했던 기억이 새로웠다. 이 섬을 무대로 그리스도의 수난을 현대로 바꿔 놓은 영화였다. 내용은 이 섬의 그리스도계(그리스도교도)와 터어키계(이슬람교도)주민의 대립을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섬 전체는 포도밭이다. 소나무 숲을 빼면 그야말로 불모의 갈색 흙뿐이다. 거칠고 캉마른 땅. 쏟아지는 태양과 암벽에 부딪쳐 부서지는 하얀 파도. 태고적 부터 언제나 그렇게 있었던 것 같은 푸른 하늘. 어떻게 보면 태고적 파란이 그냥 남아 있는 듯한 풍경이다.

뷔너스의 탄생지이며 ‘오셀로’의 무대이기도 한 이 섬은 수많은 애증극을 갖고있는 사랑의 섬이기도 하다.
이 섬 서남쪽에 있는 항구도시 ‘바포스’에 디오니소스 집이 있어서 가 봤다. 디오니소스의 집은 로마시대의 귀족관으로 방마다 그리스신화의 명 장면을 그린 모자이크타일로 되어있었다. 수 천년을 모래 속에 묻혀 있다가 1961년부터 10여 년에 걸쳐서 발굴되었다.

엄청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림의 선명함과 화려함은 여전했다.

내가 나의 눈을 의심하고 다시 본 것은 형 헤르메스에게 안긴 아기 디오니소스의 모습이었다. 경계심이 없고 통통한 모습의 신이었다. 사람들이 술을 마시면 무방비해지고, 때로는 어린아이 같아지는 모습이 그래서 일까.

이 섬에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포도의 품종 마브로와 시니스테리로 지금도 와인을 만들고 있다. 마브로는 주로 적포도주용으로, 시니스테리는 백포도주용으로 사용된다.

게다가 ‘고만다리마’라는 자랑스러운 와인이 있다. 이 와인은 고대 중세 현대에 이르기까지 같은 방법으로 제조하고 있다는 게 놀랍다. 호메로스 시대(기원전 9세기)부터 만들고 있던 와인을 당시에는 ‘사이프레스·마나’ (신이 준 음식)이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고만다리아’는 알 사람은 다 아는 디저트 와인이다. 역사적 사실과 나름대로의 풍부한 얘깃거리를 갖고 있는 이 고만다리아가 셰리랑 보르도 보다 지명도가 낮은 게 안타깝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