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인간 그 자신이 과거에 가졌던 용기와 희망과 자비심과 희생을 다시 깨닫게 한다.

'분노의 포도'를 쓴 미국 소설가 윌리암 포크너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시인이나 문사의 특권은 인간 그 자신이 과거에 가졌던 용기와 명예와 희망과 자존심과 동정과 자비심과 희생을 다시 깨닫게 함으로 그들로 하여금 낙망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난관을 극복하도록 돕는 것이다."

여기 '문사'라고 번역했지만 그가 지적한 것은 소설가였다. 훌륭한 소설은 유사이래 꾸준히 사람들이 역경에 처했을 때마다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는데 큰 몫을 해왔다. 그러기에 영국에서는 "국토를 다 내줄지언정 쉐익스피어를 바꾸지 않겠다"고 큰소리쳤던 것이다.

소설은 또한 힘이 세다. 미국 남북전쟁이 끝났을 때 대통령이 참석한 승전 축하연이 벌어졌다. 한참 연회가 진행되는 가운데 링컨 대통령은 한 여인의 손을 잡고 거기 모인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게 큰소리로 말했다. "이 가냘픈 손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 여자는 <엉클 톰스 캐빈 >이라는 소설책을 쓴 스토우 부인이었다. 링컨은 이 소설을 읽고 검둥이들 당하는 설움을 알았으며, 전쟁을 해서라도 흑인 노예를 해방시켜야겠다는 결의를 굳히게 됐던 것이다.

이것은 한 예에 불과하지만 우리 나라의 경우도 조선시대 소설 <홍길동전 >의 내용이 나중 벽초의 <임꺽정>으로 이어지고, 다시 황석영의 <장길산>으로 연결되면서 우리 국민 의식속에 정의와 의협심을 키우고, 용기도 길렀던 것이다.

제주의 경우만 해도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이 수십 년 묵었으되 이데올로기에 가려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지 않던 미증유의 비극 4.3민중항쟁의 진상을 알리고, 해결의 실마리를 가져오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제주는 문학적 변방이라는 탓도 있어서 모든 문학이 거의 그렇지만 특히 소설의 경우 뚜렷한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40~50년대 출생의 소설가 몇 사람과 고원정의 시대를 지나면서 어떤 이유인지 이렇다할 소설가 군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국문과가 지난 2002년에 발간한 <국문학과 50년>에 따르면 시와 시조를 포함하여 37명의 문인을 배출한 반면 소설가는 이 학과 개설 반세기 동안에 겨우 6명뿐 나왔다.

그런데 이 6명중에도 현길언, 고시홍 단 두 사람만이 작품집도 내고, 중앙에 알려져 있는 작가들이다.

왜 이럴까. 소설가는 장편 같은 작품을 쓰려면 적어도 몇 달 동안 피가 마르는 노력이 필요하고, 단편 한 편 쓰는 데도 100매가 넘은 원고지를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작가들끼리는 "소설가로서 성공하는 길은 엉덩이 질긴 힘이다."는 우스개 소리를 한다. 그리고 좋은 소설가가 되는 길은 "많이 읽고, 생각하고, 쓰는 것"뿐, 다른 왕도는 없다.

한국소설가협회가 주최하고, 문화관광부와 제주투데이가 후원하는 북제주군 관내 청소년문학캠프가 오는 3~4일 양일간 금릉청소년수련원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행사에는 정연희, 유현종, 유재용 등 이사장단과 한국 소설계의 거물들이 대거 참여하여 참여 학생들에게 문학강연과 소설 낭송 등 읽고, 생각하고, 쓰기의 기초를 다지게 된다.

좋은 기회를 통해 대작가, 훌륭한 작가가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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