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랗게 물들었던 잎새들이 바람에 하나둘씩 떨어지던 늦가을, 우연한 기회에 시작하게 된 헌혈캠페인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과 활력을 되찾아 주었다.

추위와 싸우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노란 점퍼를 입고 “헌혈하고 가세요.” 하고 미소를 권하는 시간만큼은 칭찬을 들어서 신이 난 어린아이처럼 마냥 들뜨고 행복하다.

적십자의 노란 점퍼를 입고 물품구호, 무료급식, 사랑의 도시락 배달 등 할 수 있는 일은 놓치지 않으려고 부지런을 떨며 마음을 나누었지만, 헌혈캠페인은 색다른 매력이 있다. “봉사는 돈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시간이 있어야 할 수 있다” 라는 통념을 깨트리면서 헌혈하는 분들을 나누며 사는 삶에 동참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헌혈도우미일 뿐이지만 그들은 나누미... 그것도 생명을 나누는 짜릿한 사랑 나누미가 된다. 하루 세 시간 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길을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겪다보니 이제는 얼굴만 보아도 헌혈을 할 분인지 아닌지 한눈에 알 수 있겠다.

헌혈이 가능해 보이는 사람이 지나가면 어디서 힘이 솟는지 큰소리로 홍보를 하게 되는데 저 멀리서부터 내게 눈웃음을 보내며 오는 이는 어김없이 헌혈의 집으로 향한다. 한번은 젊은 부부가 아이들 손을 잡고 들어와서 초코파이를 쥐어주고는 헌혈을 하길래 고맙다고 하였더니 “할 수 있는 일이어서 하는 것뿐인데요. 뭐~ 그리고 온 식구가 무료로 영화도 볼 수 있잖아요.” 하며 수줍게 영화티켓을 흔들어 보였다.

가끔씩은 적십자의 헌혈활동 자체에 불만을 갖고 거칠게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저 웃으면서 오해를 풀어드리면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겠냐” 하며 마음을 녹인 채 뒤돌아 가신다. “이 분들도 언젠가는 헌혈을 하시겠지.” 하며 뒷모습에 거는 작은 기대... 이 조차도 나에겐 즐거움이 된다.

가끔씩 얼굴을 알아보고 인사하는 사람들과 학생들이 제법 생겼다. 학생들은 교복을 입기에 학교 구분이 가능한데, 헌혈차가 갔던 학교 학생이 지나갈 때 “너희들은 두 달 후에 오너라 ~" 하면 ”어떻게 헌혈한 줄 알았냐며 친구를 데려오겠다“ 고도 한다.

며칠전 헌혈캠페인을 다녀오고 나서 O형 혈액이 많이 부족하다고 했더니, 시집가서 1년 만에 놀러 온 딸이 “엄마, 내가 O형이잖아. 나도 할게.” 한다. 생각해보면 내게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따뜻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더 뜨겁게 더 많은 일을 중독 시키는 것... 거기에 행복이 자리 잡고 있었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을 자랑할 수 있겠지만 마음의 헛헛함을 달래는 데는 무리가 있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야 말로 정신적 박탈감을 채울수 있는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작은 관심과 배려는... 진정 세상을 풍요롭게 한다.

  - 바바 하리다스 -
  앞을 못 보는 사람이 방에 물동이를 이고, 한손에는 등불을 들고 길을 걸었다. 그와 마주친 사람이 물었다.
 “정말 어리석군요. 당신은 앞을 보지도 못하면서 등불은 왜 들고 다닙니까?”
그가 말했다.
 “당신이 나와 부딪히지 않게 하려고요. 이 등불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부복자.청솔적십자봉사회>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