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문상 씨.
서울, 경기지역의 한 케이블방송 작가가 필자에게 전활 걸어왔다.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재래시장을 출연진 레이싱 모델들과 함께 ‘시장의 기능을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해 보자’는 제안이 있어 흔쾌히 촬영장 안내를 약속해 주고는 덧붙여 “제주올레에 대해 취재할 의향은 없느냐?”고 반문했더니 “그건 벌써 찍어 방영했다”고 한다. 말끝에 “올레가 그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급부상한 배경과 매력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라고 되묻기에 뭐라고 주섬주섬 건넸는지 기억이 없다.

전화를 끊고 아무리 상념에 취해 보아도 선뜻 거둘 길이 없다. 서귀포의 딸 서명숙, 그녀의 이력과 당찬 행로? 아니면 길이 주는 태고적 신비? 그도 저도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어렵사리 얻은 해답 아닌 해답은 필자가 가입된 서울의 문학사에서 발행하는 월간지에 탈고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생이 다할 때까지 길을 걷고 또 걸어야 하며 거기에서 소망을 품고 생명도 이어야 한다.

또한 길은 우리 삶의 숙명이요, 근원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걸 외면했고 버려왔다. 거기에다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구부정한 참맛을 지닌 제주 길을 자꾸만 곧게 만들고 시멘트와 아스팔트를 덧씌웠다. 어느새 관광천국이라 불리는 제주는 차창 너머의 하루 이틀 풍경에 지나지 않아왔다.

이제 다시 잊혀졌던 그 길이 올레꾼들에 의해, 그것도 많은 뭍사람들이 꾹꾹 밞아주고 있으니 어찌 ‘산티아고 길’에 견주지 못하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길을 만드는 일에는 적잖은 이들이 있었음을 그녀의 책을 통해 알았다. 때론 끊어져버린 길을 잇고자 돌다리 하나하나를 수놓아 준 장병들에게 “먼 훗날 사랑하는 애인, 아내를 데리고 왔을 때 당신을 위해 깔아놓은 길이라 당차게 말하라”는 대목은 당시의 피와 땀을 감동으로 회고하고 있다.

몇 달 전에 올레 7코스를 완주하고 돌아간 서울에 사는 한 문인에게서 손수 쓴 편지를 받았다.
“수십 년 전, 천지연폭포에서 찍었던 빛바랜 흑백사진 한 장을 두고 제주관광 마침표를 찍었던 자신은 요즘 무엇에 홀린 듯 하다”며 “마농잎을 따는 아낙네의 평화로움을, 폐부 깊숙이 들어온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빽빽한 소나무 사이로 손짓하고 있는 무인도들을, 매캐한 도시 흙바람이 일 때마다 어서 찾고픈 충동에 사로잡혀 있다”고 토로하고 있었다.

사월의 한들거리는 봄바람은 여인네 치맛자락만 훔쳐본 게 아닌가 싶다. 굽이굽이 진 길에 흩날리게 핀 유채꽃은 가느다란 목젖을 산들바람조차 겨워했으면서도 진한 향내를 뿌렸는가 보다.

내 사랑 올레, 일상에 파묻힌 모두에게 심신의 고난을 털어 내주는 그런 불멸이 되어주기를 바래본다. <강문상.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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