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대이동의 일본 정월 연휴를 TV에서 부럽게 바라볼 때 고향의 생각을 훔친 시집 두권이 왔다.

제주 토박이 김수열 시인의 네번째 시집 <생각을 훔치다>였다.

한권은 김시종 선생님 몫이었는데 고향 친구처럼 반가웠다.

혼자서는 갈 수 없는 줄 알았다.
설은 서른에 바라본 쉰은
너무 아득하여 누군가
손잡아주지 않으면 못 닿을 줄 알았다
비틀거리며 마흔까지 왔을 때도
쉰은 저만큼 멀었다.

<쉰>이라는 시의 일연을 발췌했는데 그 쉰이라는 나이 나에게 돌려달라고 하고 싶지만 사양하겠다.

막 환갑을 넘은 필자가 나이타령 하면 칠십의 인생 선배에게 똑 같은 소리 들을 것같다. 나이란 어쩌면 환상의 언어 개념일지도 모른다.

다음은 <고등어를 굽다가>전문을 게재한다.

등 푸른 고등어 한 손사다
절반은 구이용으로 패싸고
나머지는 조림용으로 토막내고

불판에 올려 고등어를 굽는다
적당히 달구어 뒤집어야
유연한 몸매 그대로 살아
푸른 물결 찰랑이는데
대책 없는 서툰바치
뒤집을 때마다 몸통 갈라지고
머리통 떨어져나간다
능지처참이다

사람 만나는 일
더도 덜도 말고 생선 굽듯 하라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 망가뜨리면서
나는 여기까지 왓을까
또 얼마나 많은 사람 무너뜨리면서
남은 길 가야 하는가

비늘도 없어서 버릴 것 거의 없는 고등어 요리 하나 제대로 못해서 뒤집을 때마다 몸통 갈라지고 머리통 떨어져 나가면서 능지처참이다.

더도 덜도 말고 생선 굽듯하라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 망가뜨리면서 나는 여기까지 왔을까.

겸허한 자성의 화살은 시인의 가슴이 아니고 독자의 가슴을 겨눈 반어(反語)의 화살이 되어 날아 온다.

섬뜻한 긴장감 속에 시집을 모두 읽고 고명한 고명철 문학평론가의 해설을 읽고 맥이 빠졌다.

필자의 이러한 감상을 솔직히 전할려고 했는데 고명철 평론가는 이 시집에 게재된 (쉰)과 (낮술)까지 곁들여서 더욱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필자의 감상은 재탕 삼탕의 베껴쓰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쓰는 것은 시집을 읽지 않는 미래의 독자들을 위해서라고 스스로 달래고 있다.

오랜만에 겸상을 한 어머니와의 식탁, 쉰안되도 듣보기 없으니 어머니의 잔주름 하나 안보이는데 여든 다된 어머니는 돋보기 없어도 자식의 새치 잘도 센다.

빈젓가락 든 어머니가 이것 저것 먹어보라고 하는데 자식이란 놈은 손사래 치면서 됐수다. 됐수다.

전문에 가까운 <내리사랑>인데 일년에 한두번 제주가서 뵙는 백살 다되는 어머니가 오버랩된다.

<이제는 함께해야지요>의 일연에서는,

무자년 겨울이었지요
아무죄 없는 아버지의 아버지를 앗아간
칼바람에 질려 수평선으로 날아간 바람까마귀처럼
아버지는 아버지의 큰아들, 형님의 손을 잡고
한라산도 모르게 밤바다로 나섰지요 
해산 날 기다리는 어머니에게
살아 있으면, 살아만 있으면 만날 거라며
어미 뱃속에서 세상 물정 모르고
발길질만 하는 둘째 부탁한다면
밀항선에 몸 실어 현해탄 건넜지요

한일 일본과 제주와의 4.3 이산가족은
이렇게 해서 새로운 비극과 갈등을 낳는다.

그때의 아버지와 형님은 어느 하늘 아래  계신지 아직도 연락이 없다.

2년전 4.3, 60주년 오사카 공연 때 시인 스스로의 자작시 낭송은 장내를 숙연케 했다.

<생각을 훔치다> 전문은

꽃은
하늘 올려다 보면서

올까
말까

비는
땅을 내려다보면서

갈까
말까

<어머니의 전화> <할망 하르방> <여름날 오후> <대맹일 써사 헌다> 등 제주도가 철철 넘치고 4.3의 무거운 시들 속에 시인은 유독 어른의 읽을 동요 <생각을 훔치다>를 표제로 올려 놓았다.

한땐 그랬다
저 밥솥처럼 씩씩거리다가
지금은 늙은 밥솥하나
흐린 정물처럼 고즈넉하다

<늙은 밥솥을 위하여>의 부분 발췌지만 시인은 그렇게 시를 관조하면서 표제를 선택했다.<제주투데이>


▶1949년12월 제주시 삼양출신,  1973년 병역마치고 도일, 1979년「현대문학」11월호 단편「오염지대」초회추천, 1980년<오사카 문학학교>1년 수료(본과52기), 1987년「문학정신」8월호 단편「영가로 추천 완료,  중편「이쿠노 아리랑」으로 2005년 제7회 해외문학상 수상, 2006년 소설집 <이쿠노 아리랑>발간, 2007년 <이쿠노 아리랑>으로 제16회 해외한국 문학상 수상, 1996년 일본 중앙일간지 <산케이신문 주최 <한국과 어떻게 사귈 것인가> 소논문 1위 입상. 2003년 인터넷 신문「제주투데이」'김길호의일본이야기'컬럼 연재중, 한국문인협회,해외문인협회,제주문인협회 회원. 현재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면서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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