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전체가 관광지인 제주.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관광 활성화’라는 미명 아래 섬 곳곳이 공간에 대한 고민 없이 인공적 구경거리로 조성됐다. 모든 공간은 역사와 같은 사회문화와 자연환경 등 고유의 특성, ‘장소성(性)’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한 고민 없이 만들어졌다가 사라진 공공시설물 사례를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보기로 한다. 또 잘못된 행정 판단으로 인해 소요되는 적지 않은 예산과 공사 기간 불편 등 사회적·경제적인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지난 5월 철거된 탐라문화광장 내 산지천조형물. 지난 2016년 약 5억원을 들여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사진=다음지도 캡처)
지난 5월 철거된 탐라문화광장 내 산지천조형물. 지난 2016년 약 5억원을 들여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사진=다음지도 캡처)

정소희(55·여·제주시 아라동)씨는 지난 24일 휴가철을 맞아 제주를 찾은 자녀 가족들과 동문재래시장을 들렀다가 유난히 휑해 보이는 탐라문화광장을 보고 의아했다. 

시장 2번 입구 맞은편 광장에 있던 대리석조형물이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다. 

정씨는 “딸애 가족들이 집에 놀러 올 때마다 시장에 오는데 몇 달 전만 해도 이 중앙에 있던 대리석으로 만든 조형물이랑 화단 벤치가 다 없어졌다”며 “몇 년 동안 있었던 걸로 아는데 왜 없어진 건가 궁금해서 주변 가게에 물어봤더니 민원 때문에 시에서 철거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정씨가 말하는 조형물은 지난 2016년 탐라문화광장 조성사업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산지천을 소개하고 한라산과 현무암 등 제주도를 형상화해 제작됐다. 주변엔 대리석 벤치도 조성됐다. 광장을 찾는 도민·관광객에게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 포토존으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제작비용만 약 5억원에 이른다.  

‘값비싼’ 산지천 조형물과 벤치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이유는 민원 때문이다.  

조형물 주변에서 장시간 머무는 주취·노숙인들이 늘어난 것이다. 그러자 많은 주민들이 주취·노숙인들이 벌이는 음주소란으로 인해 주변 상가 영업에 피해를 끼치는 것은 물론 이곳을 지나는 도민·관광객들에게 불쾌감을 준다고 주장하며 불편 민원을 꾸준히 제기했다. 

이에 제주도는 지난해 9월 ‘탐라문화광장 음주소란 및 성매매 근절을 위한 민관합동 TF(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또 인근 지역인 일도1동 주민자치위원회 등 주민 121명은 같은 해 11월 해당 조형물의 철거를 도의회에 청원하기도 했다. 이후 지난 1월 도의 결정에 따라 넉 달 뒤인 5월, 말 많던 조형물은 철거됐다. 시에 따르면 철거비용으로 약 2천200만원이 소요됐다.

결국 애물단지 조형물을 짓고 없애는 데 예산이 5억2천만원이 넘게 든 셈이다. 주민과 전문가들은 행정당국이 애초에 조형물의 조성을 계획할 때 주민 의견과 전문가의 자문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 억원에 이르는 예산이 낭비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탐라문화광장 내 산지천조형물이 사라진 자리. (사진=조수진 기자)
탐라문화광장 내 산지천조형물이 사라진 자리. (사진=조수진 기자)

이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고영림 (사)제주국제문화교류협회장은 “그곳에 원래 분수시설이 있어서 많은 아이들이 놀던 곳이었다. 그런 좋은 곳에 어느 날 뚝딱 커다란 대리석조형물이 생겼다가 또 어느 날 갑자기 온데간데 없어졌다”며 “거기서 자라서 그 지역에 관심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조형물이 생길 때도 그랬지만 없어질 때도 전혀 몰랐다”고 비판했다. 

고 회장은 “그 정도의 사업비 규모라면 원도심 지역만이라도 도시 디자인 차원에서 총체적인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그에 맞게 예산을 어떻게 쓸지 결정했어야 했다”며 “이 모든 과정을 공개적으로 의논하고 주민과 전문가로부터 의견을 모으는 과정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내 문화계 관계자 A씨는 “주민 불편 때문에 철거를 한 건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도나 시에서 사업을 계획할 때부터 앞으로의 영향을 감안하지 않고 작업을 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뜯고 없애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이번에 문제가 된 조형물은 산지천을 소개한다면서 산지천을 안 보이게 막는 위치에 설치가 되는 등 공공디자인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시설물이었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제주시 관계자는 “조형물 설치 취지와 달리 주취·노숙인 문제로 인해 주민 피해가 심하고 조형물 특성상 옮기는 것도 여의치 않아 불가피하게 철거 결정이 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철거 후 조형물이 있던 위치가 완전히 오픈된 공간이 돼서 이곳을 점거했던 주취·노숙인 감소 효과는 어느 정도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첫 단추를 잘못 끼워 예산을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과 관련 당초 사업을 추진한 제주도 관계부서에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끝내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