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일고 신이 알고 내가 알고 그대가 아는데 어찌 아는 이가 없다고 하는가”(天知, 神知, 我知, 子知, 何謂無知).

후한시대 존경받았던 관료 양진(楊震·54~124)이 했던 말이다. 후한서에 나온다.

양진이 동래 태수로 임명되었을 무렵이었다. 왕밀(王密)이라는 사람이 밤중에 몰래 양진을 찾았다. 벼슬을 얻기 위해서였다.

왕밀은 품에서 황금 열 근을 꺼내 양진에게 바치면서 “아무도 모를 터이니 받아 주십시오”라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자 양진이 “하늘과 신과 나와 네가 다 알고 있다”는 이른바 ‘사지론(四知論)으로 깨우치며 왕밀을 내쳤다는 이야기다.

이 말은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말로 인용되기도 하고 ‘뇌물에 대한 경계(警戒)’로 사용되는 고사(故事)이기도 하다.

뇌물(賂物)은 ‘제 이익을 위해 사람을 매수하는 부정한 돈이나 물건‘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 까지 뇌물은 사회적 국가적 골칫거리다. 개인을, 가정을, 사회를, 국가를 병들게 하고 썩게 하는 바이러스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예방이나 치유 백신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은밀성과 독성을 자양분으로 한 뇌물은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갈수록 종류가 다양해지고 주고받는 수단이나 방법이 더욱 은밀하고 오묘해지고 있다.

‘뇌물의 역사’(2015년 출간) 공동 집필자(임용한 김인호 노혜경)는 “뇌물은 세상을 움직이는 은밀하고도 거대한 악마의 힘”라고 했다.

그들은 책에서 국제투명성기구가 전 세계 107개국 4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하여 “응답자의 4분의 1이 누군가에게 뇌물을 줬거나 받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이를 근거로 하여 상당수 사람들은 뇌물과 관계가 있고 ‘뇌물의 영역’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뇌물의 역사’는 그러면서 “지금은 교묘하게 뇌물이 진화하고 있다”고 했다. 뇌물은 인간의 기초적 본능적 욕망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전염성과 독성이 강해 사회 구석구석을 부패하게 만든다고 정리 했다.

왜 뜬금없이 뇌물이야기인가.

최근 제주도가 공무원 출신이 운영하는 특정 방역업체에 수의계약으로 방역사업을 몰아준 정황이 확인됨으로써 이것이 ‘진화된 뇌물의 형태’가 아닌가하는 논란을 부를 수도 있는 것이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정황은 원희룡지사와 특정 용역업체 대표와의 개인적 관계, 고액 방역 사업의 비정상적인 편중 수의계약 등이 얼키설키 엮어지면서 특혜의혹과 함께 “넓은 의미의 포괄적 뇌물 수수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의문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매체인 제주투데이는 지난 20일자 기사에서 ‘제주도가 올해(1월~10월16일) 수주한 방역사업 수의계약 용역비 21억8855만2549원 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4억6521만4000원(37건)을 문제의 특정업체에 몰아줬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업체의 지난해 수주금액은 6건에 2천607만7000원이었다. 올해 수주액과 수주건수와 비교하면 금액으로는 20배, 건수로는 6배 이상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관련업체 대표는 방역업체를 또 하나 새로 만들어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이 새 업체는 8월 4천261만4000원짜리 대형 용역을 수의계약으로 따냈다.

9월에는 3천476만9000원(3건)사업도 따냈다. 1년도 안된 신생업체가 7천7백 만 원 넘는 사업을 따낸 것은 놀라운 일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그래서 의심의 눈초리가 싸늘하다.

지사와 인연이 있는 특정업체 대표에게 특혜를 준 것이 아니냐는 색안경을 낀 시각이 존재하는 이유다.

이 같은 의혹은 제주도청 홈페이지 수의계약 정보 목록에서도 의미 있는 흔적을 남겼다.

우선 2천만 원 이상 고액 수의계약 21건 중 문제의 특정업체와 공동대표로 있는 신생업체가 10건을 싹쓸이 했다. 나머지 11건은 10개 업체가 하나씩 나눠 가졌다.

1천만 원 이상 수의 계약 건수도 해당 특정업체 계약률이 부동의 1위였다. 100여개가 넘는 제주도내 방역(소독)업체 상황을 감안하면 대단한 장악력이며 실적이다. “뭔가 구린내가 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그래서 권력과의 은밀한 커넥션 등 수의계약 배경에 대한 설왕설래가 나오고 있다.

공무원 출신인 해당업체 대표는 원희룡 지사의 펜클럽 관계자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원지사의 페이스 북 비공개그룹인 ‘원희룡 시대’의 관리자로, 또 프랜즈 원 하나로 봉사단의 회장으로서 봉사활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런 인연으로 해당업체에 수의계약 용역을 몰아 줬다면 심상하게 넘길 일이 아니다. 도민에 대한 배신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향후 자신의 정치적 입지 강화나 지지그룹 확대 등 개인의 욕심을 위해 공공예산을 지지그룹으로 연결된 특정인에게 배려했다면 정상적 지도자라 할 수 없다.

이는 업자 줄 세우기를 통해 도민을 내편 네 편으로 편 가르겠다는 신호로 읽혀질 수 있다. 도정과 지사에 대한 불신만 키울 뿐이다. 코로나 19 현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도민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특정업체에 일감을 몰아주고 이것으로 앞으로의 정치적 활동에 대한 지원을 받으려는 요량이라면 ‘진화된 포괄적 뇌물수수 행위’라는 일각의 비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제주도는 수의계약 특혜시비 및 특정업체 몰아주기 논란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지난 2017년 1월부터 ‘수의계약 투명성 제고 방안’을 마련하여 시행하고 있다.

수의계약 범위 하향 조정, 특정업체 3회 이상 수주 금지 등 반복수주 금지 등이 주요 골자다.

그런데도 일감 몰아주기 특혜시비를 부르는 올해 방역용역 수의계약 행태는 제주도가 개선안을 만들어 놓고 스스로 그 안을 찢어 뭉개버린 꼴이다.

이에 대한 도 당국의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나 해명이 있어야 한다.

이와 함께 도 감사위원회 등 감사기관에서는 특정업체와의 반복적 수의계약으로 야기된 일감몰아주기 특혜 의혹에 대한 철저한 감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도민에게 보고해야 할 것이다.

이를 간과했다가는 도민 적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주도민들은 착하기는 해도 불의에 둔감하거나 무력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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