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지나간 봄날

흐드러진 벚꽃 뒤로하고 
저물녘 들어선 들판에

들꽃들과 어우러져 
여기저기 고사리들 피어난다.

제비꽃 트멍에 여린 햇고사리 하나
고사리손 이쁘게 내민다.

해 지고 세상 어둠 속에 잠들 때
동녘 하늘로 둥근달 떠오른다.

어린 시절 시골집 컴컴한 골목길 
올레 입구 은은한 가로등처럼 

붉은 보름달 
부드러이 들판 곳곳 비춰준다.

여린 봄풀로 허기채우는
어린 망아지에게도

동무랑 노느라 멀리 떨어진
새끼 향하는 어미말에게도

어쩌면 그해 겨울 눈보라 속 
들판을 헤매던 원혼들에게도

어머니 품처럼
따스하게 비춰준다.

4ㆍ3 추념일 지나면
어머니 모시고 들판에 들어야겠다.

어머니, 봄이 와수다
고사리 꺾으러 가게마씀

"달이 뜬다.
둥근 달이 떠오른다.

불빛 한점 없는 들판
긴밤 지샐 여린 생명

어머니 품처럼
살포시 비춘다

저 달이 지고
붉은 해 떠오르면

다시
사월이다"

 

김수오

제주 노형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수오 씨는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뒤늦게 한의학에 매료된 늦깍이 한의사다. 연어처럼 고향으로 회귀해 점차 사라져가는 제주의 풍광을 사진에 담고 있다. 낮에는 환자들을 진맥(診脈)하고 출퇴근 전후 이슬을 적시며 산야를 누빈다. 그대로가 아름다운 제주다움을 진맥(眞脈)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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