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영화 '몽상가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영화 '몽상가들'

안녕하세요. 저는 제주투데이 데미무어입니다. 

최근 대표이사가 바뀐 제투는 매주 금요일 낮 사무실에 모여 한 주간 동향을 파악하고 쟁점 토론을 하는데요. 수다에 가까운 쟁점 토론 이게 저만 듣기 아깝더라고요.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독자들과 소통하면 어떨까 제안했다가 이렇게 총대 메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날카로운 통찰과 깊이 있는 사유를 얻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여기까지 읽는 것을 권장합니다. 막상 정리하다 보니 혼자 듣긴 아깝지만 꺼내 놓기 부끄러운 아무말 대잔치더라고요. 

거듭 주의사항을 드립니다. 읽어봤자 영양가 일도 없습니다. 언론사 위신에 걸맞은 사회적 통찰, 기대하신다면 부디 접으세요. 시간이 금이다 생각하시는 분은 차라리 유튜브에서 ‘한사랑 산악회’를 시청하며 배꼽 잡으시길.

하여튼.

제투 쟁점은 아무나 제안하면 무조건 안건으로 올라갑니다. 해서 지금까지 트램, 성중립화장실, 재난지원금 지급방안 등 쉽지 않은 쟁점들을 다뤄 왔는데요. 어느 날 얼핏 보면 유준상을 닮은 것 같기도 한 '부추'가 “꼭 무거운 사회 이슈만 다룰 필요 있냐”며 ‘폴리아모리(polyamory)’를 제안했어요. 

폴리아모리란 '많은'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폴리(poly)’와 ‘사랑’이라는 뜻의 라틴어 ‘아모르(amor)’의 변형태인 ‘아모리(amory)’의 합성어로 두 사람 이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예요. 서로를 독점하지 않는 다자간(多者間) 사랑, 즉 비독점적 다자간연애를 의미해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체계와 서식 부적응자’ 부추가 쟁점 토론 시간에 발제문을 자그마치 두 장이나 준비했거든요. 누군가는 환호를, 누군가는 손뼉을 쳤던 것도 같습니다. 그가 두 장짜리 문서를 만들어 구성원들에게 내밀었다는 건 엉또 폭포에 물이 쏟아지는 것처럼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는 진귀한 장면이거든요.  

부추의 요즘 화두는 연애인데요. 가능한 모든 연애 방식을 탐구하다 폴리아모리까지 갔는지, 폴리아모리를 지향하는 누군가를 좋아하게 됐는지 아무도 몰라요. 다만 그가 폴리아모리에 꽂혔고, 그가 꽂히면 제투는 휩쓸린다는 것. 이런 영향력, 부추의 반짝반짝한 능력이죠.

하여튼. 아 제가 앞으로 하여튼을 남발할 건데요. 하여튼은 개인적 사정으로 칩거에 들어간 '프린스'의 언어습관으로 두서없는 글에서 논리 점프할 때 참 요긴하네요. 이렇게나마 쟁점 토론에 참여하지 못한 프린스를 추억하면서. 하여튼.

부추에 따르면 우리 사회가 절대적 당위로 받아들이고 있는 ‘모노가미(일부일처제Monogamy)’는 인류의 25%만 법으로 정하고 있대요. 출처는 모른대요. 부정확한 근거를 제시한 불찰로 부추는 오드리에게 혼부터 났죠. 아, 오드리는 영화배우 출신으로 제투에서 사랑스러움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제투 수다의 관전 포인트 팁을 드리자면, 부추와 오드리의 티격태격인데요. 영혼의 쌍둥이인 둘은 앙숙이었다가, 절친이었다가 오래된 부부 같아요. 서로를 또라이라고 부르죠. 

모노가미가 자연법에 도전한 인류 문명의 결과라면, 독점적 사랑은 자연스러운 것인가. 만약 다른 방식의 사랑이 실정법으로 제정된 곳에 우리가 산다면? 

언제나 성실하게 쟁점 토론을 준비해오는 '비키'가 “모노가미, 즉 일부일처제는 농경사회의 부산물”이라고 했어요. 농사를 짓게 되면서 계급이 발생하고, 주된 노동력을 제공하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가 제도화 됐대요. 농경사회는 수렵·채집 시절과 달리 잉여생산물이 발생하는데, 이 사유재산을 누구에게 상속하느냐를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체제가 일부일처였다는 거죠.

저는 처음알았는데요. 이게 여성들의 전략적 선택이기도 했답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며 일부일처제 내용이 여성을 착취하는 가부장 형태로 채워졌지만요. 이는 독일의 사회주의자 프리드리히 엥갤스의 《가족, 사적소유, 국가의 기원》에 나타난 주장과 맥을 같이 하는데요. 인간이 생산수단을 발전시킴에 따라 야만시대-미개시대-문명시대로 나아가는데, 거기에 상응하는 가족형태가 야만시대에는 군혼(두 씨족간 행해진 집단 혼인), 미개시대는 대우혼(한 혈족의 형제 또는 자매와 다른 혈족의 형제나 자매 사이에 남자 한 사람에 여자 한 사람씩 짝을 짓는 혼인), 문명시대에는 일부일처제라고 주장합니다. 이 글은 ‘킬링타임’ 용이므로, 복잡한 엥갤스 이론은 여기까지 거론하는 것으로 갈무리하겠습니다. 

부추는 폴리아모리 국내 사례로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저자 홍승은과 두 애인 인터뷰(링크)를 일부 발췌해 왔는데, 우리는 그것을 함께 읽었어요.

부추의 정리에 따르면 폴리아모리에는 크게 3명이 꼭짓점 구조를 이루는 트라이어즈(Triads), 3명이 상호 섹슈얼한 관계망인 트라이앵글(Triangle), 3명 이상의 가정 공동생활인 폴리피델리티(Polyfidelity)가 있다고 하는데요. 홍승은 작가를 꼭짓점으로 형성된 두 명의 애인(우주, 지인) 관계는 '트라이어즈'가 되는 거죠.  하여튼 영어인 것으로 보아 다 수입된 개념이네요.

폴리아모리와 바람피우기가 다른 점은, 모든 관계를 서로에게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데 있대요. 이때 핵심적인 감정은 질투. 이 감정을 관계망 안에서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폴리아모리의 성패가 달렸다는 거죠.  

부추는 뜬금없이 질문했어요. '질투는 무엇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러면서 더 뜬금없이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인용했어요. 

‘질투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네 번 괴로워하는 셈이다. 질투하기 때문에 괴로워 하며, 질투한다는 사실에 대해 자신을 비난하기 때문에 괴로워하며, 내 질투가 그 사람을 아프게 할까 봐 괴로워하며, 통속적인 것의 노예가 된 자신에 대해 괴로워한다. 나는 자신이 배타적인, 공격적인, 미치광이 같은, 상투적인 사람이라는 데 대해 괴로워하는 것이다’

원래 말하다 보면 삼천포로 빠졌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그러는 거잖아요. 질투는 무엇이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냐는 부추의 질문은 까맣게 잊고 본인들은 질투가 많은지, 없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오드리는 질투를 부정적인 감정이라 생각하지 않았어요. 자연스러운 감정인데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왜 괴롭냐는 거죠. 그러면서 사람들이 질투가 많고 질투하는 자신이 싫어서 질투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개념화하게 되는 것 아니냐고 부추에게 물었어요. 자신은 질투란 무엇이냐 그런 질문을 해본 적 없이 질투가 나면 질투를 했다는 거죠. 사람은 참 다양해요. 어떤 감정을 해소하는 사람이 있고, 억제하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오드리는 폴리아모리에 있어 감정은 각자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고, 합의가 중요한 것 같다고 했어요. 그러자 부추는 “발제문을 잘 보시면 감정의 문제 앞에 합의와 규칙을 먼저 썼죠?”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하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어요. 

하여튼.

폴리아모리의 개념과 연애의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에 대해 장황한 설명이 오가자 오드리가 "복잡한 것은 모르겠고, 여기 모인 분들이 폴리아모리를 받아들일 수 있냐 없냐가 궁금해요”라고 물었죠. 이때 비키가 ‘담타’를 요청했어요. 

시몬 드 보부아르와 장 폴 사르트르는 평생 결혼은 하지 않은 채 서로 사상적 동지로, 연인으로 동등한 관계를 이어갔으며 때때로 ‘폴리아모리’를 실천했다고 한다.
시몬 드 보부아르와 장 폴 사르트르는 평생 결혼은 하지 않은 채 서로 사상적 동지로, 연인으로 동등한 관계를 이어갔으며 때때로 ‘폴리아모리’를 실천했다고 한다.

담배를 피우며 생각을 정리한 비키는 현재 할 수 있다 없다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불현듯 폴리아모리라는 상황에 놓여 봐야 자신이 어떤 선택을 내릴 수 있을지 알 수 있다고 했어요. 

비키의 말에 격하게 리액션을 하던 오드리가 저에게 물었어요. 폴리아모리 상황에 놓인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저는 깜짝 놀랐죠. 회의는 원래 멍 때리는 자리 아닌가요. 멍하게 있다가 뭐라도 이야기를 해야 했죠.

저는 멀티가 안 되는 비효율 끝판왕입니다. 사랑도 체력처럼 정해진 양이 있다고 생각해요. 한 사람도 힘든데, 어후. 그래서 저는 상황에 놓이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원천 봉쇄라고 했죠.  

저는 폴리아모리는 잘 모르겠고, 폴리아모리를 생각하다, 과연 연애란 무엇이고 사랑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연애를 하고, 무엇을 위해 사랑하나. 그런 질문을 하게 됐어요.

부추가 가져온 인터뷰 중에 “관계를 시작한 처음 한 달은 전혀 안 힘들었고, 그 후 1년은 지옥의 시간이 펼쳐졌고, 지옥에서 나온 뒤로 많이 좋아졌다”는 지민의 고백이 있었는데요. 불지옥을 경험해야 하는 사랑이 사랑인가. (BGM: 김광석이 부릅니다. 너무 아픈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저는 물었죠.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 사람을 정말 사랑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냐고. 좋아하는지 아닌지 그걸 어떻게 모를 수 있냐며 깜짝 놀라는 오드리의 표정은 ‘오블리’ 했죠. 

그러자 비키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것이 사랑인지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옛사랑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여기서 게임 끝. 영화 같은 비키의 사랑 이야기를 듣다 그만 회의시간이 끝났죠. 제투는 또 회의시간을 칼 같이 지키거든요. 

그러자 오드리는 사무실을 배회하며 억울해했어요. 자기 이야기는 반도 안 했는데, 회의가 끝나버렸다고요. 자기는 폴리아모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경험들이 있는지 아직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고. 그래도 끝은 끝.

네? 허무하다고요? 그래서 경고했잖아요. 뭔가를 구하고자 하는 분들은 이 글을 읽지 마시라고요. 본래 실존은 허무한 거라, 이 글 전체가 실존에 대한 메타포라....

하여튼.

부추가 물었죠. 

“제가 폴리아모리를 선언했는데, 50년 동안 상대를 못 만났어. 그럼 전 폴리아모리스트인가?”

우리의 수다를 옆에서 듣고 있던 옆방 입주자는 담배를 피우러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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