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들어 퇴근길 나서도
들판 저녁놀 감상할 정도로 해가 길어졌다

비가 잦아든 저녁 
먹장구름 살피며 들판으로 들었다

이맘때 들판에는 만삭의 말보다
햇망아지 붙어다니는 어미말 많아진다

봄날에 꽃피고 가을에 열매 맺듯 
여름과 가을에 걸쳐 부지런히 자라야
혹독한 겨울을 견뎌낼 테이니
망아지들도 이맘때 꽃처럼 피어난다

가랑비에 젖은 수풀 헤치며 
햇망아지들을 따라 다니다
누워있는 만삭의 어미말과
어미를 지켜보는 해지난 망아지를 만났다

순간 전율이 일었다.
아! 결정적 순간이구나!

어미말이 놀라지 않게 서서히 다가가
숭고한 현장을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가랑비를 맞으며
몸부림과 지친 호흡을 반복하는 어미말

먹장구름 속 숨죽인 저녁노을이 스러질즈음
마침내 혼신의 힘을 다해
뱃속 생명을 세상으로 내보냈다

피묻은 양막에 싸인 여린 생명
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나고

어미말은 가쁜 숨을, 
지켜보던 망아지와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찢긴 양막 사이로 
머리부터 나온 여린 망아지

지친 어미는 새끼를 핧아주고
새끼는 비틀거리며 어미젖을 물었다

밤 깊을수록 밝아진 집어등 불빛에
먹장 구름 낮게 깔린 수평선 멀리
하늘이 열리고

어느새 꼿꼿이 일어선 망아지
어미와 나란히 밤풍경 바라보다
어둠 깊은 들판으로 시나브로 사라져갔다

서녘 하늘 상현달도 스러지고
돌아선 들판길이 아득하니 꿈길같다

 

김수오

제주 노형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수오 씨는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뒤늦게 한의학에 매료된 늦깍이 한의사다. 연어처럼 고향으로 회귀해 점차 사라져가는 제주의 풍광을 사진에 담고 있다. 낮에는 환자들을 진맥(診脈)하고 출퇴근 전후 이슬을 적시며 산야를 누빈다. 그대로가 아름다운 제주다움을 진맥(眞脈)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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