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앞천막촌사람들)
제주제2공항 건설사업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2019년 1월 3일 제주도청 현관을 점거했다. (도청앞천막촌사람들)

환경부가 지난 20일 국토교통부가 협의를 요청한 제주 제2공항 건설사업 전략환경영향평가서를 최종 ‘반려’했다. 2015년 발표 당시부터 사업의 타당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약 5조 짜리 국책사업이 협의 대상조차 못된 채 6년 만에 사실상 무산 수순을 밟게 된 것. 

성산으로 예정됐던 제2공항 건설은 이제 추진동력을 잃었지만, 국가가 제2공항 반대를 위해 최전선에서 싸웠던 시민들을 상대로 낸 소송은 아직 진행중이다. 

원희룡 도지사는 최근 자신의 SNS에서 “대통령 및 고위공직자는 국민의 무한한 비판대상이 되는 것을 감내해야 한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시민단체 대표를 모욕죄로 고소한 것에 대해 "국민에 대한 심각한 협박”이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그런데 제주 지역에서 제2공항 반대 운동을 펼치다 재판에 넘겨진 사람만 수십명. 

# 2019년 1월 3일 도청 현관 계단 점거한 날

국토교통부와 제주도가 ‘제2공항 입지선정 타당성 재조사 용역 검토위원회(이하 검토위)’를 강제 종료하고 제2공항 건설에 속도를 내던 2019년 1월 3일. 건설 예정지 피해 주민이었던 김경배 씨는 △원희룡 도지사 공개면담 △제2공항 기본계획 용역수립 중단 등을 요구하기 위해 도청 현관 앞 계단을 점거했다. 김 씨의 말을 빌리자면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도 아닌데 고맙게도" 제2공항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그의 옆에 함께 섰다. 

2018년 5월 지방선거 당시 정책토론회에서 원희룡 후보에게 계란을 던져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김경배 씨는 이날 "짬뽕 국물을 청경에게 뿌렸다"고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음식 반입을 막는 청경들 틈으로 음식을 던지다가 청경 얼굴에 국물이 튄 것. '도청앞천막촌사람들'이 마련한 기금으로 해당 벌금은 냈지만 지난해 1월 환경부에 찾아갔던 그는 관료들이 만나주지 않아 담을 넘다가 ‘현주건조물 침입’죄로 기소돼 아직 진행중인 소송이 남았다.

제2공항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길을 막자 원희룡 도지사가 밟고 지나간 피켓. (사진=도청앞천막촌사람들)
2019년 1월 8일 제2공항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원희룡 도지사의 출근을 막아서자 그들의 피켓을 밟고 지나갔다. (사진=도청앞천막촌사람들)

#2019년 1월 7일 제주시의 '도청앞 천막촌' 행정대집행

2018년 끝자락 제2공항 건설을 막아내고자 제주도청 맞은편 길가에 천막을 치고 모여든 사람들이 있었다. 장기농성에 들어간 ‘도청앞천막촌사람들’을 끌어내기 위해 2019년 1월 7일 제주도와 제주시는 행정대집행을 강행했다. 3동의 천막을 철거하는 과정 등에서 행정과 시민들의 물리적 충돌도 빚어졌다.

이때 A(42) 씨는 집회 참가자들과 도청 현관 계단을 점거하려다 저지선 대열에 있던 여성 공무원을 밀쳤다며 상해 혐의로 기소됐다. 해당 공무원의 고소로 이어진 1심에서 검찰은 150만원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A씨는 즉각 항소했지만 제주지법 재판부는 지난 22일 이를 기각했다. 재판과정에서 A씨가 처벌받기 원하냐고 묻자 해당 공무원은 "여기서 말하기 곤란하다"며 답변을 거부하기도 했다. 

행정대집행이 있던 2019년 1월 7일 도청앞 천막촌 사람들은 그날 밤 다시 천막을 세우고 ‘우리는 부당한 공권력에 분노하는 얼굴입니다. 이 섬에서 일어나는 모든 학살의 당사자입니다.’라는 제목의 첫 성명을 발표했다. 그들은 그날 공권력을 향해 “지금은 우리가 도청 앞 천막을 지키고 있지만, 이것은 제주도를 지키고, 민주주의를 되찾는 일”이라고 외쳤다. 

# 2019년 2월 7일 ‘도청 캐노피 기자회견’

같은해 2월 7일 제2공항 반대를 위해 몇몇 시민들이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제주도청 현관 옥상에 올랐다. 도청앞 천막에서는 무기한 단식농성이 진행되고 있었고, 일명 ‘도청 캐노피 기자회견’에 참가한 8명은 ‘무단 침입 및 퇴거 불응(공동주거침입)’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원심에서 70만원부터 200만원까지 각기 다른 벌금형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공무원이 법령 근거 없이 퇴거요청을 한 사건"으로 규정하고 "헌법이 보장한 집회의 자유를 실현한 피고인들의 유죄를 인정한 법원 판결은 위헌이자 위법"이라며 항소한 상태.

제2공항 건설 저지를 위해 도청앞 천막촌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을 벌였던 윤경미 민주노총 제주본부 공공운수노조 조직국장은 “다른 지역에서도 도청 현관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시민을 상대로 법적대응을 하지는 않는다. 제2공항 도청 앞 집회와 관련해 행정이 시민을 상대로 고소·고발 한 게 수십 건"이라며 개탄했다. 

모든 국민은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갖는다. 집회의 자유는 인권의 문제고 자유권의 일종이다. 따라서 윤 국장은 "집회 참가자들을 사법 대응으로 처리하는 제주도정의 태도는 집회 문화에 대한 무지함을 드러낸 것”이라며 “이는 시민 머리 위에서 상전 노릇하려는 공무원 사회의 오만한 단면”이라고 꼬집었다.

(사진=도청앞천막촌사람들)
도청 앞 천막촌 사람들이 2019년 2월 15일 오후 5시 30분 제주도청 앞에서 '제주도의회의 기본계획 수립 중단 결의안 채택 촉구'와 '원희룡 도정의 제2공항 사업중단'을 촉구하는 도민 100인과 함께 100배를 진행했다. (사진=도청앞천막촌사람들)

# 2019년 3월 12일 원희룡 출근길

제2공항 반대 아침집회에 참석했던 B씨는 2019년 3월 12일 출근하는 원희룡 도지사에게 손에 들고 있던 물을 뿌렸다. 이 일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B씨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고 현재 항소 중이다. 

B씨는 제2공항 건설사업이 무산돼 억울한 감정도 다 털어버렸다고 했지만, 김경배 씨는 "짬뽕국물은 눈에 들어가면 따갑기라도 하지. 물은 마르면 그만인데 그걸 뿌렸다고 집행유예 2년은 가혹한 처사"라고 했다. 

# 2019년 3월 14일 도청 현관 점거 철수 협상 결렬

1월 3일부터 60일이 넘는 기간 동안 제주도청 현관에서 제2공항 저지 노숙 연좌농성을 펼쳤던 시민들과 제주도가 철수를 두고 협상을 하던 시기였다. 제주도는 이미 농성 관계자 10 여 명을 업무방해 등 혐의로 고소·고발한 바 있었고, 철수를 조건으로 이를 모두 취하하기로 했다. 반대측 시민은 도청 현관 계단에 설치한 텐트를 철거하는 조건으로 알고 이를 수락했지만 도청 관계자는 피켓팅까지 철수하는 조건이었다고 나와 갈등이 고조됐다. 피켓을 들고 시위를 이어갔던 이들은 2019년 3월 14일 폭행행위등처벌에과한법률위반(공동퇴거불응) 혐의로 경찰에 넘겨졌다. 협상에 나왔던 도청 공무원은 승진해 서귀포 시청으로 갔으며 2021년 6월 17일, 이들은 증거불충분으로 2년 여 만에 혐의를 벗었다.

(사진=도청앞천막촌사람들)
제2고항 건설 백지화를 촉구하고 있는 안재홍 녹색당 정책위원장(사진=도청앞천막촌사람들)

# 2019년 6월 19일 ‘제2공항 기본계획 수립용역 최종보고회’ 저지

도청앞 천막촌 행정대집행 당시 기소돼 벌금형을 선고받은 A씨는 재판 하나가 더 걸려있다. 그는 2019년 6월 19일 제주 농어업인회관에서 진행된 국토부 주관 ‘제2공항 기본계획 수립용역 최종보고회’ 저지 과정에서 사회를 보려고 준비하던 국토부 소속 사무관을 밀쳐 넘어뜨린 혐의(공무집행방해)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것. 그는 재판 결과에 불복했고, 다음달 항소심 선고가 있다. 

함께 있던 농민 C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항소를 포기해 내년 4월 27까지 보호관찰 대상이다. 제2공항 건설 피해지역 주민인 농민 C씨는 “농민이 자기 땅 지키겠다는게 뭔 죄냐”며 "국토부와 제주도가 제2공항 건설을 밀어붙이기 위해 반대 주민들 입에 재갈(소송)을 물린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강당 안에 (우리를 찍으려고) 미리 카메라를 설치했던 걸 보면 국가가 우리를 범죄자로 만들기 위해 의도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일단 환경부의 제동으로 '제2공항 성산편'은 종료됐지만 화순, 위미 자초되자 강정에 밀어붙인 해군기지 꼴 되지 말라는 법 있냐"며 원희룡 도 지사를 향해 제2공항 원천 무효 선언을 촉구했다. 

캐노피 기자회견에 참석했다가 원심에서 200만원 벌금형을 받은 정재호(30)씨는 "제주 제2공항은 환경부가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반려'해 사실상 일단락 됐다고 하지만 고소·고발 재판중인 사람들이 아직 많다"며 "제2공항 갈등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모든 고소·고발을 취하하고 사과부터해야 한다"고 했다. 

안재홍 제주녹색당 정책위원장(49) 역시 "사실상 도정이 갈등을 부추겨 왔다. 갈등 해결의 첫 걸음은 제2공항 관련 싸움 과정에서 벌어진 소송을 취하하는 것이다. 말로만 갈등을 해소하겠다고 떠들지 말고 당장 무고한 시민을 상대로 낸 고소·고발을 취하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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