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형사제4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가 4·3 수형 희생자 68명(군사재판 67명·일반재판 1명)에 대한 특별재심 두 번째 심문기일을 열고 있다. 김종민  4·3중앙위원회 위원이 진술에 앞서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6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형사제4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가 4·3 수형 희생자 68명(군사재판 67명·일반재판 1명)에 대한 특별재심 두 번째 심문기일을 열고 있다. 김종민 4·3중앙위원회 위원이 증언에 앞서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 재판은 군법회의(군사재판)를 다루는 재판입니다. 간첩이니, 뭐니 하는 말은 더 이상 나와선 안 되겠습니다.(…) 이상한 단체들이 ‘이 사람은 폭도 대장이다, 뭐다’ 글을 쓴 것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지 마시고 재심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해주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6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형사제4-1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4·3 수형 희생자 68명(군사재판 67명·일반재판 1명)에 대한 특별재심 두 번째 심문기일을 열었다. 

이날 심문은 지난 12일 진행된 첫 번째 심문기일에서 검찰 측이 “재심 청구인 68명 중 4명이 희생자로서 결격 사유가 있다”는 취지로 추가 심리를 요청하자 재판부가 증인 진술을 듣는 자리로 마련됐다. 

재판부가 증인으로 채택한 김종민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이하 4·3중앙위원회) 위원이 출석했다. 

김종민 위원은 지난 1987년 제민일보에 입사, 1988년 3월부터 4·3취재반에서 2000년까지 13년간 관련 취재와 보도를 했다. 이를 바탕으로 <4·3은 말한다> 집필에 참여했으며 7000명이 넘는 증언 채록을 진행했다. 

이후 2000년부터 2013년까지 4·3중앙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진상조사보고서 작성 등 실무를 담당했다. 지금은 같은 위원회 위원이자 4·3실무위원회 보상심의분과위원장을 맡으며 30년이 넘도록 4·3 연구 및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같은 이력으로 4·3 분야 국내 최고 전문가로 손꼽히고 있으며 재판부가 증인으로 채택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날 심문기일에서 김 위원은 명성에 걸맞게 검찰의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제주투데이는 검찰의 질문과 김 위원이 답변한 증언 내용 요지를 정리했다.

26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형사제4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가 4·3 수형 희생자 68명에 대한 특별재심 두 번째 심문기일을 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6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형사제4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가 4·3 수형 희생자 68명에 대한 특별재심 두 번째 심문기일을 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 수형인명부에 기재된 형량은 어떤 기준으로 정해졌나

검찰은 “수형인명부를 보면 성명과 본적지, 선고일자, 형량이 기재돼 있다”며 “형량은 사형, 무기징역, 20년 등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이런 구분은 어떻게 이뤄진 것으로 평가하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김종민 위원은 “수형인명부가 얼마나 엉터리로 만들어졌는지 특징을 보면 알 수 있다”며 “같은 사람이 두 번 기재된 경우도 많고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을 경우 기존의 형량을 기록한 문서(별지)에 ‘사형’이 아니라 ‘무기징역’으로 기재된 것도 있다. 사후에 작성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구형무소로 간 수형인의 형량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15년형이고 대전형무소로 간 수형인의 형량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7년형”이라며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형무소로 보내놓고 ‘어? 얘는 대구로 갔네? 그럼 15년. 얘는 대전으로 갔네? 그럼 7년’ 이런 식이다. 사후에 작성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장찬수 판사는 “증인의 답을 들어보면 형량을 정하는 데 있어서 그 사람이 어떤 죄를 저질렀고 어떻게 가담했다는 정도에 따른 게 아니라 오히려 행정 편의 등을 위해서 형량이 사후에 만들어진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는 말인가”라고 다시 확인했다. 

그러자 김 위원은 “사형이나 무기징역은 좀 더 죄질이 무겁고 1년 또는 7년은 죄질이 가볍다는 정도의 구분은 하지 않았겠느냐는 게 질문의 취지인 거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답했다. 

 

#2. 희생자 제외 대상자는 어떤 자료로 확인할 수 있나

검찰은 “(희생자에서) 제외된 분들은 수괴급이라고 하는데 실질적인 사료 안에서 (남로당 제주도당) 조직표에서 등급이나 역할이 구분되느냐”고 물었다. 

이에 김종민 위원은 “그분들이 이 세상 분이 아니다 보니까 취조를 하거나 재판을 해서 계보를 다 확인한 게 아니라서 정확한 건 알 수 없다”면서도 “4·3중앙위원회에서 참고로 한 자료는 두 개다. <제주도 인민들의 4·3무장투쟁사>와 미군보고서”라고 답했다. 

이어 “전자의 경우 4·3 당시 무장봉기가 불가피했다는 걸 주장하는 내용이 담긴 책인데 그런 정황을 봤을 때 여기에 쓰인 남로당 제주도당 간부 명단은 믿을만한 것 아니겠는가”라며 “미군보고서는 당시 한국 자료와는 상대가 안 될 정도로 남로당 간부 명단이 꼼꼼하게 작성돼 있다”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위원회에서 이분들을 제외 대상자라고 의결했을 때 물론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못마땅했다”며 “4·3특별법이 누구를 처벌하자는 법이 아니라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회복을 위한 수혜적 법률인데 왜 이들을 제외시켜야 하는가. 하지만 당시 제가 의결권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단 한 분도 희생자로 인정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26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형사제4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가 4·3 수형 희생자 68명(군사재판 67명·일반재판 1명)에 대한 특별재심 두 번째 심문기일을 열고 있다. 김종민  4·3중앙위원회 위원이 진술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6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형사제4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가 4·3 수형 희생자 68명(군사재판 67명·일반재판 1명)에 대한 특별재심 두 번째 심문기일을 열고 있다. 김종민 4·3중앙위원회 위원이 증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3. 김○○, 간첩으로 남파됐다는 의혹..어떻게 설명할 건가

검찰은 희생자 결격 문제 제기를 한 4명 중 김○○에 대해 “한국전쟁 중 월북했다가 간첩으로 남파됐다는 언급이 나왔다”며 “사실 확인은 안 됐지만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다소 있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김종민 위원은 “김○○은 대단한 인재로 훌륭한 교사로 잘 알려진 분”이라며 “4·3 때 형무소로 끌려간 사람들이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이 서울을 함락하며 옥문을 열었을 때 무서워서 제주로 다시 올 수 있었겠느냐. 북에 갔다가 잠잠해지자 고향이 그리워 제주로 돌아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진짜 간첩으로 처벌 받았다면 40년은 옥살이를 해야하는데 이분은 제주에서 생업을 하다 돌아가셨다”며 “설사 집행유예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판결문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검찰이 제시한 자료(지난 2014년 4·3중앙위원회가 김○○을 심사한 자료)를 보니까 국가기록원 행형 조회도 하고 국가정보원과 경찰청 조사를 했는데 간첩이라는 어떠한 증거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100번 양보해서 정말 간첩이었다고 하더라도 지금 재판은 간첩 사건이 아니라 군법회의(군사재판)를 다루는 재판”이라며 “이 재판에서 논의할 가치도 없다. 이런 문제를 제기한 것 자체가 이상하다. 여기서 간첩이니 뭐니 하는 말은 더 이상 나와선 안 되겠다”고 일축했다. 
 

#4. 김○○이 남로당 제주도당 간부라는 조직표가 있다?

검찰은 지난 2014년 4·3중앙위원회가 희생자를 심사하면서 참고한 자료에 김○○이 남로당 제주도당 간부라고 주장하는 조직표에 대한 의견도 물었다. 이 표는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제주지회가 작성한 것으로 표시됐다.

이에 김 위원은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라는 조직은 들어본 적이 없다”며 “보수 인사들이 1500명의 명단을 나열하면서 누가 무장대 무슨 급 이런 주장을 하면서 별의별 소송이 다 있었다”고 떠올렸다. 

이어 “4·3 당시 제주에선 통행증이 없으면 이웃마을도 못가는 상황이었다”며 “지금처럼 텔레비전이나 언론매체에서 남로당 수괴급이 누구다 이런 게 잘 알려지는 시절도 아니지 않았나. 그런 시기에 어떻게 개인이 남로당 수괴급이 누군지, 어떻게 알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4·3은 말한다>나 4·3연구소 자료를 통해 마치 그때 알았던 것처럼 말하는 경우가 많다”며 “자기 마을에서 산에 올라갔다고 하면 다들 대장 노릇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따지면 대장은 수백명은 될 것이다. (검찰이 제시한) 조직표는 신뢰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26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형사제4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가 4·3 수형 희생자 68명(군사재판 67명·일반재판 1명)에 대한 특별재심 두 번째 심문기일을 열고 있다. 김종민  4·3중앙위원회 위원이 진술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6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형사제4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가 4·3 수형 희생자 68명(군사재판 67명·일반재판 1명)에 대한 특별재심 두 번째 심문기일을 열고 있다. 김종민 4·3중앙위원회 위원이 증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5. 이○○이 남로당 조직부 책임자라는 증언이 있다?

검찰은 또 다른 희생자 이○○이 제주 내 한 마을의 당 책임자라는 증언이 있다며 이에 대한 의견도 물었다. 

김 위원은 “누가 어떤 말을 했고 녹음하고 녹화했다고 해서 이게 다 증언이고 다 사료가 되는 건 아니”라며 “미군보고서나 신문자료 등 여러 다른 사료들과 교차 검증을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6. 임○○, ‘폭도’가 됐다는 증언이 있다?

검찰이 또 다른 희생자 임○○이 폭도가 됐다는 증언에 대한 의견을 묻자 김 위원은 “그분은 각별하게 기억한다”며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인격적으로 아주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마을에 피해를 하나도 안 준 사람이라고 얘기했기 때문이다. 다수의 마을 주민들이 그렇게 얘기를 해 기억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밖에 나머지 희생자 문○○과 관련해서 김 위원은 “이분이 누구한테 해를 끼쳤다는 건 들은 바 없으며 희생자 제외 대상으로 언급된 사람들 중에도 이분 이름이 없다”고  말했다. 
 

#7. 김종민 위원의 마무리 증언

검찰은 “충실한 증언을 통해서 국민이나 유족분들 모두 충분한 설명을 들었을 걸로 생각된다”며 “검찰 측 심문은 여기까지 하겠다”고 마쳤다. 

검찰 측의 심문이 끝나자 김 위원은 “희생자 제외 대상 기준과 희생자 결정은 4·3중앙위원회 의결로서 된 것”이라며 “추후 제외 대상자 기준이 완화되거나 변경 사항이 생길 때 이런 논의를 하는 건 좋지만 이상한 단체들이 ‘이 사람은 폭도 대장이다’ 이런 글을 쓴 걸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는 건) 하지 말아달라. 제외 대상자가 아니라면 재심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게 해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증언을 마쳤다. 

한편 이날 장찬수 부장판사는 “조만간 결정하겠다”며 심문기일을 마무리했다. 

26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형사제4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가 4·3 수형 희생자 68명(군사재판 67명·일반재판 1명)에 대한 특별재심 두 번째 심문기일을 열고 있다. 김종민  4·3중앙위원회 위원이 진술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6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형사제4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가 4·3 수형 희생자 68명(군사재판 67명·일반재판 1명)에 대한 특별재심 두 번째 심문기일을 열고 있다. 김종민 4·3중앙위원회 위원이 증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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