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바람이 많이 불던 13일 오후 제주도청 앞에 천막이 세워졌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제주도연맹(이하 전농)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제주도연합(이하 전여농)이 설치한 것. 감귤 수확으로 일손도 부족한 시기에 농민들이 농사도 제쳐두고 천막에 모인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이날 오전 11시 전농과 전여농은 오영훈 제주도지사와 김경학 제주도의회 의장을 상대로 제주지역 1차산업 비중을 줄여야 한다고 발언한 데 대해 사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농과 전여농은 당초 기자회견 직후 ‘1차산업 축소 발언’과 관련해 김희현 도 정무부지사와 면담 일정을 잡아놨다. 하지만 공무원들과 청원경찰들이 출입을 막아 건물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실제로 이날 오전 도청 출입문은 임시 폐쇄됐고 직원들은 옆문을 통해 출입하기도 했다. 

농민들에 따르면 “어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들여보내 주지 못하면 어떡하느냐”며 “우리가 못 들어간다면 김희현 부지사가 밖으로 나와 만나달라”고 요청했으나 아무도 이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농민들은 도청 현관 앞 계단에 앉아있다가 그대로 있을 수 없어 오후 3시30분쯤 천막을 쳤다. 그제서야 김희현 부지사가 ‘귀한’ 걸음을 했다. 

오전에 농민들과 만나주지 않은 이유에 대해 김 부지사는 “면담 약속을 어긴 것이 아니다. 사무실에서 한 시간 정도 기다렸으나 농민회에서 오지 않아 다음 일정에 간 것뿐”이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또 출입을 통제한 데 대해 면담 약속을 한 인원은 5명인데 그보다 많은 인원이 들어가려고 해서 막았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농민들은 여기에 대해 “도청 1층 로비는 도민들에게 개방된 공간 아니냐. 날씨가 추우니 5명을 제외한 나머지 분들이 건물 안에서 기다리려 한 것뿐인데 도청이 과잉 대응을 했다”고 반박했다. 

김윤천 전농 제주 의장은 “우리가 밖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걸 뻔히 알고 있었고 출입을 통제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면서 우리를 완전히 무시한 것”이라며 “제주도가 지금까지 제주농업과 제주농민을 무시하던 현실이 여기서 벌어지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잠깐의 만남을 통해 전농과 전여농이 오영훈 지사의 ‘1차산업 축소’ 발언과 관련해 묻자 김 부지사는 “오 지사의 발언을 오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농업을 비롯해 1차산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줄어들고 있으니 관련 산업의 비중도 자연스레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 하지만 1차산업 관련 예산은 줄어들지 않으니 걱정 말라고 안심시켰다고 한다. 

이 같은 해명에 농민들은 더욱 분개했다. 농업은 단지 돈 안 되는 산업이고 농민은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직업으로 전락했기 때문. 

제주시 구좌읍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강순희씨는 이 과정을 지켜보며 울음을 터뜨렸다. 강씨는 “30년 정도 농사를 지으며 ‘제주 농업을 지키자’고 싸워왔다”며 “소농들에게 농사는 돈이 안 되는 일이지만 농업을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에 계속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까지 무시를 당한 건 처음”이라며 “지난 원희룡 도정 때도 이러지 않았다. 최소한 면담은 잡아줬는데 오늘 여기 와보니 책임자들은 나오지도 않고 공무원 몇 명이서만 왔다갔다 손쉽게 조율하려고만 한다”고 지적했다.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에서 농사를 짓는 김미랑씨는 “2차산업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하는데 공장도 없는 제주에서 서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건 1차산업”이라며 “3차산업도 제주에선 1차산업에서 다 파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광산업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결국 이건 돈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 아니냐”며 “외부에서 투자해서 땅값 올라가고 하면 원주민이나 농민들은 쫓겨나게 된다. 오영훈 도정에서 말하는 농업에선 먹거리 생산을 담당하는 주체인 농민이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김옥임 전여농 제주 전 회장은 “예산을 줄이고 늘리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며 “농업이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이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대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지역에 비교해 1차산업 비중이 높기 때문에 줄여야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김희현 부지사는 자연적으로 농업 인구가 감소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데 마치 농업인구가 자연스럽게 줄어들어 농업 비중이 축소되기를 바라는 것 같이 들린다”고 꼬집었다.

이들 단체는 오영훈 지사와 면담 일정이 잡히는대로 천막을 철거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이날 제주투데이는 김희현 부지사와 도 농업정책과의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회의 또는 출장 중이라며 연락이 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