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일도이동 소재 책방 '책가방' (사진=요행)
제주시 일도이동 소재 책방 '책가방' (사진=요행)

학교 옆 문방구처럼 없는 것 빼고 있을 것이 다 있는 책방 책가방의 탄생으로 거슬러 가 보자. 때는 2018년도다. 이미 그 전부터 미화씨는 책방을 다니는 걸 좋아했다. 책을 좋아했고, 책방이 풍기는 분위기를 사랑했다. 어떤 책방은 소품을 같이 판매하기도 했다. 그런 것을 보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신만의 책방을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내가 책방을 운영하면 어떨까? 어떤 모습일까?’란 생각이 들었다. 1년여 동안의  깊은 고민 끝에 일단 문을 열기로 결심했다. 결심하기까지가 어렵지 그 후의 일은 일사천리였다. 적절하게 빈 점포를 얻게 됐고 이미 그에겐 책장이며 인테리어 소품이 많이 있었다. 그렇게 2019년 5월 책방 책가방과 88예술소의 문을 열었다.

책을 팔면서 작업실로 운영할 것을 처음부터 계획했다. '88예술소는 그녀가 88년생이어서 붙이게 된 이름이라고. 각종 자격증이 한쪽 벽을 차지했다. 시각디자인, 심리분석사, 도형심리상담사, 자존감코칭전문가, 색채심리상담사 등이다. 책방을 운영하면서 취득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조용히 혼자 지내거나 지인들과 지내는 걸 선호하는 미화씨는 책방을 운영하면서 타인들과 공간을 나눠 써야 했다. 말을 섞어야 하는 순간들도 마주했다. 책방지기로써 당연한 일이었지만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오시는 분들이 책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이 열에 아홉이 돼서 책을 추천하는 과정에서 말이 조금씩 늘어갔다.

제주시 동문로 소재 책방 '책가방'. 김미화 책방지기는 손님들과 진정성있는 소통을 위해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했다. (사진=요행)
제주시 동문로 소재 책방 '책가방'. 김미화 책방지기는 손님들과 진정성있는 소통을 위해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했다. (사진=요행)

요즘 어떤 생각을 많이 하세요?’, ‘혹시 고민이 있으세요?', ‘새로운 것, 도전하는 것 좋아하세요?'

처음엔 어떤 책 좋아하세요?'가 질문의 전부였다. 차츰 질문이 늘었다. 좀 더 적절한 책을 골라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책을 추천해 주기 위해서 미화씨는 이전에는 잘 보지 않던 장르의 책을 읽게 됐다. 손님 덕에 책 편식이 사라진 것이다.

책방을 찾는 손님들은 대게 20~30대 여행객이 주를 이룬다. 공항에 가기 전 시간을 보낼 겸 이곳에 들러 책을 사고 읽다가 가는 경우가 많다. 단골 도민 손님도 있다. 자신의 취향과 너무 잘 맞다며 올 때마다 한아름 책을 사간다고. 그럴 때 책방지기는 뿌듯해지곤 한다.

미화씨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그러니까 본인의 만족을 위해 책방 문을 열었다면 사실 이곳을 운영하고 성장시키는 이는 손님이었다. 책 편식이 사라진 것이 그렇고, 타인과의 만남을 경계했던 마음이 옅어진 것이 그렇다. 이곳을 찾는 분들이 무언가를 마음에 품고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지면서 미화씨는 크고 작은 이벤트를 늘 준비하고 있다.

그 이벤트들은 미화씨에게도 첫 도전이었다. 기분 좋게 책방을 나가는 손님을 볼 때면 자신의 도전이 옳았음을 확인하며 짜릿함을 느낀다. 직접 만든 책 관련 굿즈, 시간표 도서라는 콘셉트의 블라인드북, 선물 고르기를 망설이는 분들을 위해 제작한 랜덤선물박스 등을 증정하기도 한다.

제주시 동문로 소재 책방 '책가방'의 블라인드북 '시간표 도서' 알림북. (사진=요행)
제주시 동문로 소재 책방 '책가방'의 블라인드북 '시간표 도서' 알림북. (사진=요행)
제주시 동문로 소재 책방 '책가방'에서는 '선물 고르기 고민 대신 해드려요' 랜덤박스가 마련돼 있다. (사진=요행)
제주시 동문로 소재 책방 '책가방'에서는 '선물 고르기 고민 대신 해드려요' 랜덤박스가 마련돼 있다. (사진=요행)

무엇보다 책방지기 스스로 가장 잘 했다고 생각하는 건 편지할게요이벤트다. 손님이 손편지를 남기면 미화씨가 책을 추천하는 답장을 역시 손편지로 써서 보내는 것이다.

지난해 가을 무렵 라디오를 듣고 있을 때였다. 당시 미화씨는 어떻게 하면 손님들과 진정성 있게 소통할 수 있을까?’가 고민이었다. 사연을 받고 신청곡을 틀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영감을 얻었다. 미화씨의 가장 큰 장점은 실행력이다. 결론이 나자 역시 바로 실행에 옳겼고 편지지와 편지함을 마련했다.

과연 편지를 쓰긴 쓸까, 쓴다면 어떤 내용일까, 어떤 분일까?’ 설렘 반, 걱정 반 속에 첫 편지를 맞았다.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가벼운 프로젝트라고 여기고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그곳에 남겨진 사연은 꽤 마음이 아팠다. 편지를 남긴 이들은 대부분 20대 여성들이었다. 자신의 이상은 높은데 현실은 너무나 뒤처져 있어서 고민하고 방황하는 영혼들.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이 편지에 담겨 있었다.

제주시 동문로 소재 책방 '책가방'의 '편지할게요' 프로젝트. (사진=요행)
제주시 동문로 소재 책방 '책가방'의 '편지할게요' 프로젝트. (사진=요행)

역시 그 시간을 겪은 미화씨였다. 그렇기에 이야기들에 너무나 공감했고, 같이 아파했다. 그들에게 진심을 담아 답장을 보냈다. 얼마나 큰 힘이 전달될지는 몰랐다. 하지만 당신 마음의 안녕이 궁금한 이가 여기 있음을, 당신의 내일을 적극적으로 응원하는 이가 있음을 전하고 싶었다.

이 프로젝트를 확장해서 대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마음 클래스 마음처방-마음대화. 고민을 나누고 싶은 사람의 신청을 받아서 서로 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를 쓰거나 시를 필사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헤어질 즘 미화씨가 마음처방약을 처방해 준다.

편지할게요프로젝트를 통해 배운 것 중 하나가 사람은 제3자가 지인보다 가깝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가까운 이들에겐 말하지 못할 이야기들을 낯선 이에겐 오히려 더욱 잘 풀어내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런 분들의 대나무숲이 되어 주기 위해 미화씨는 자존감 코칭 전문가, 색채심리상담사 자격증을 수료했다.

제주시 동문로 소재 책방 '책가방'. 내부에는 88예술소 클래스를 운영 중이다. (사진=요행)
제주시 동문로 소재 책방 '책가방'. 내부에는 88예술소 클래스를 운영 중이다. (사진=요행)

88예술소에서는 마음 클래스와 독서 클래스, 미술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원데이 클래스, 정기수업으로 구분돼 있으니 선택의 폭이 넓다.

이곳만의 이벤트가 계속해서 변화하는 것처럼 책과 소품 역시 종종 바뀐다. 언제 어떤 손님이 올지 모르니 언젠가 이곳을 찾을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늘 새로운 모습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니 책가방은 갈 때마다 뭔가 새로운 게 계속 생기는 곳이다. 지인들은 그걸 기대하며 책가방을 찾는다고 했다. 가만히 있지 않고 약동하는 책방. 책이 가득한 방은 책이 주는 어마어마한 상상력만큼이나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중이다.

그는 자신만큼이나 이곳을 찾는 손님들도 가능성을 열어두길 바란다. 사고와 감정이 자유롭게 흐르는 곳. 바탕엔 믿음이 탄탄히 깔린 곳. 책가방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인책방이다. 미화씨가 없어도 과 공간이 주는 힘만으로 운영이 되는 곳.

(사진=요행)
제주시 동문로 소재 책방 '책가방'. 88예술소에서 진행 중인 미술 클래스의 흔적이 자리해 있다. (사진=요행)

한 번은 미화씨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손님이 책을 구입하고 결제를 하고 간 일이 있었다. 계산대에 안내해 놓은 계좌로 책값을 입금하고 메모를 남기고 떠난 것이다.

책이 주는 것은 지식, 경험 여기에 인간성의 회복이 아닐까. 책값을 기꺼이 지불하겠다는 마음은 책에 대한 존중과 작가와 판매자에 대한 존중. 이것은 타인과 사회에 대한 존중에 귀결된다.

책을 판매해서 기대하는 수익을 얻을 수 없으리라는 걸 짐작하긴 했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가혹했다. 매해 임대료 걱정을 하지 않을 때가 없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3년째 운영을 이어가고 있기에 다행이라면서 해맑게 웃는다.

이제 미화씨는 책방에서 발을 뗄 수 없다고 했다. 책방과 함께 여러 갈래의 길을 내고 있는 그다. 그 길들의 끝에 다다르기 전까지 미화씨는 계속해서 내면을 벌크업(Bulk-Up)할 작정이다.

주변의 만류와 깊은 우려의 시선 속에서도 책방 문을 열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기쁨을 체험하니 세상에 두려울 일이 사라졌다. 하나라도 더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제주시 동문로 소재 책방 '책가방'. (사진=요행)
제주시 동문로 소재 책방 '책가방'. 각종 소품과 책방지기가 그린 그림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요행)

그는 언젠가는 자신의 이름으로 기획하고 출간한 책으로 손님들과 마주하길 꿈꾸고 있다. ’민유라는 필명으로 브런치에 에세이도 발행 중이다. 자신의 그림과 글로 그림책을 낼 계획도 있다.

그림 그리기, 사진찍기, 글쓰기, 상담하기, 공부하기, 책 읽기, 책으로 소통하기, 소품 만들기 등. 즐거움엔 끝이 없다는 한 케이블 채널의 슬로건이 미화씨에게 적용될 듯 하다. 늘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해 나가는 즐거움으로 미래를 견인하고 있다.

어떤 미래를 뚜렷하게 그려놓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루하루에 충실히 살아가는 것에서 이미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 미화씨다. 미래를 열어가는 사람은 설렘기대편의 시간을 걷는 사람이다. 그 힘은 고난이 닥쳤을 때 흔들릴지언정 뿌리가 뽑히지 않는 힘을 길러준다. 사랑만큼 강력한 것이기에. 그러니 미화씨가 완성해 나갈 삶의 모자이크가 몹시 궁금해진다.

 

책방지기의 추천 책

#. 작은 가게에서 진심을 배우다 / 김윤정 지음

한 번 오면 단골이 되는 고기리막구수의 비결이란 부제가 붙은 책이다. 외진 마을의 작은 가게를 전국에서 손님이 찾아오는 유명 맛집으로 성장시키기까지 김윤정 대표의 비결과 노하우가 담겨있다. 첫 가게에서 큰 실패를 겪고 차린 국수집은 하루 1그릇을 팔다가 8년후 연 매출 30억 원을 달성할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그 비결엔 고객을 향한 진심이 있었다. ‘매출을 어떻게 올릴까?’ 보다는 손님에게 어떻게 잘해드려서 또 만나 뵐까?’가 인생 최대 고민이라는 김윤정 대표에게서 관계 중심 경영의 가장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안내 팁을 받을 수 있다.

김미화 책방지기는 초심이란 말을 좋아한다. 이 책을 읽고 다시금 그 마음을 다잡게 됐다고 했다. 자신만의 책방이 아닌 모두와의 책방, 이곳을 찾는 분들이 좋은 인상을 받고 추억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책방을 정돈하고 손님을 기다린다.

#. 불편한 편의점 / 김호연 지음

2021년에 이어 올해까지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베스트셀러다. 서울역에서 노숙자 생활을 하던 독고라는 남자가 어느날 70대 여성의 지갑을 주워 준 것을 인연으로 그녀가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노숙인이지만 정의감이 있고 따스한 성품을 가진 독고가 야간 편의점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그는 물론 주변 사람들이 치유를 경험하게 된다.

김미화 책방지기는 작은 친절과 소통의 힘을 이 책을 통해 재확인했다. 손님들의 불편한 마음을 헤아리는 책방지기가 되기를, 그래서 책가방을 통해 작은 위안을 얻기를 바란다.

 

※책방 책가방은 제주시 동문로1411에 있어요.

1시부터 저녁 6시까지 운영하는데

일요일은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 문을 열어요.

매주 월요일은 휴무입니다.

 

요행

제주의 시골에서도 책방을 볼 수 있는 요즘입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책방은 책방지기의 성향에 따라 여러 장르의 책들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책방에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세상으로 초대받곤 합니다. 책방지기의 사심이 가득한 책방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책방지기의 삶을 바꾼 책 한 권과 책방의 탄생기를 들으면서 우리도 인생 설계의 방향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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