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도청 정문 앞에 설치된 바리케이드. (사진=독자 제공)
지난달 29일 도청 정문 앞에 설치된 바리케이드. (사진=독자 제공)

“도청 광장은 시위 공간이 되어선 안 됩니다. 이건 불법 상황이죠.”

취임 초기부터 ‘소통하는 도지사’를 강조한 오영훈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오 지사는 ‘적극 소통’을 위해 현재 청사 내 집무실을 정문 쪽으로 옮기는가 하면 서귀포시에도 별도로 집무실을 마련했다. 

이러한 행보에 도민사회의 기대도 높아졌다. 취임 후 5개월이 지난 지금 오영훈 지사에게 ‘소통하는 도지사’라는 수식어가 여전히 유효할까. 19일 오영훈 지사는 도청 소통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제주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오 지사의 소통 행정 현주소를 엿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지난달 도청 정문에서 철제 바리케이드가 설치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동부하수처리장 증설 공사를 반대하는 월정리 주민과 시민들이 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었다. 바리케이드가 다시 등장한 건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지역사회 갈등이 최고조였던 2010년 이후 12년 만이다. 

집회에 참여했던 한 시민은 “불통이라 불리던 전임 도지사보다 더 심하다”며 “2022년에 바리케이드가 웬 말인가. 도민을 어떻게 이렇게 대우할 수 있나”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19일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도청 소통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19일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도청 소통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오영훈 도정의 소통 기준

오 지사는 지난 지방선거 때 대학생 시절 총학생회장으로서 학생운동에 적극 나섰던 과거에 대해 대대적으로 홍보했었다. 약자들이 연대해 목소리를 내는 일을 주도한 경험이 있었던 인물이라 소통 행정에 대한 도민사회의 기대는 더욱 컸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오 지사는 취재진이 “바리케이드 설치는 지금까지 강조해왔던 소통행정과 거리가 멀어보인다”고 묻자 도청 광장에서의 집회는 불법이라 규정했다. 

이어 “다만 면담을 요청하거나 따로 소통을 요청하는 부분은 대부분 반영하고 있다”며 “그렇게 입장을 밝히고 싶다면 도민 소통공간인 도민카페라거나 도의회 기자실, 도청 기자실을 활용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막지 않으면) 도청으로 오시는 다양한 민원인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측면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원희룡 도정이 도청 본관 현관 앞 계단에 점거 시위를 막기 위해 화분을 설치하면서 했던 변명과 판박이다. 

(도청 정문에서부터 출입을 막는데 도청 기자실에는 어떻게 들어가라는 건가하는 질문은 제쳐두더라도) 오 지사의 ‘소통’ 기준은 엄격했다. 미리 자신과 약속을 잡아 점잖게 나누는 대화가 아니라면 ‘소통’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집회나 시위는 권력을 가진 책임자와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여기는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권력자와 지역사회에 목소리를 내기 위한 수단이다. 영향력 있는 ‘지위’를 가지지 못한 도민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사회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공간 중 하나가 도청 앞이다.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근처에서 집회가 끊이지 않는 이유와 같다. 

#권력자들의 단골 프레임 ‘시민 불편’

권력자들이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불편’이다. 시민이라면 장애 여부를 떠나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이동권을 요구하기 위해 출근길 시위를 할 때, 목숨을 건 위험천만한 운전을 해야만 하는 노동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파업을 할 때 권력자들은 “다른 시민들을 불편하게 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손쉽게 여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 

오 지사는 갈등 관리 방안을 이야기할 때마다 ‘선제적’이란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오 도정에게 있어 선제적 갈등 관리는 ‘차단’과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인다. 지역사회 갈등을 선제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모든 공무원들에게 언론취재 동향을 즉시 보고하라고 했던 ‘지침’ 역시 같은 양상이다.

공무원들은 도지사에게까지 전달되는 보고를 해야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취재에 응하는 과정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자신의 말 한마디로 비판적인 기사가 나올 경우 도지사에게 보고된다고 떠올려 보라.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할 행정 정보는 이렇게 도민에게 알려지는 과정에서 차단된다. 

오영훈 도정과 도민사회 사이에 쳐진 여러 형태의 바리케이드. 윤석열 대통령이 출근길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을 중단하고 가림막을 설치한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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