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영국올림픽 개막식. 영국 노동자들 모습을 그리고 있다.  (편집=하종강 교수)
2012년 영국올림픽 개막식. 영국 노동자들 모습을 그리고 있다.  (편집=하종강 교수)

장래 희망이 벽돌공인 네덜란드 학생 이야기가 국내에 화제가 된 적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는데, 하루 종일 음악을 크게 들으면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한국사회에서 한 학생이 "벽돌 기술자가 돼 평생 음악을 들으면서 행복하게 살겠다"고 말하면 그 주변에선 어떻게 반응할까.

제주노동존중사회의원연구포럼은 1일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를 초빙, 오후 2시 대회의실에서 '한국사회 노동 바로 이해하기'를 주제로 정책간담회를 열었다. 

하종강 교수 (사진=도의회)

하종강 교수는 "대학에 가지 않고 벽돌공이 돼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네덜란드 중학생의 꿈이 실현 가능한 이유는 벽돌공의 수입이 대기업 정규직이나 대학교수와 큰 차이가 없고 일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노동문제를 해결해야 교육문제도 풀리고, 저출산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노동기본권 보장으로 직종 간 임금 격차가 해소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이 사라지면 학문에 뜻 없는 학생들까지 기를 쓰고 대학에 갈 필요가 없어진다는 설명이다. 

벽돌공이 행복한 사회...우리도 가능할까?

하종강 교수는 벽돌공이 행복한 사회를 위해서 '학교 안 노동교육'을 강조했다.

사회구성원 대부분 노동자가 되거나 노동자의 가족이 된다. 판사가 되든 경비원이 되든 화이트칼라든 비정규직이든 노동자라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노동 문제를 자신과 무관하게 생각한다. 

하 교수는 이러한 현상이 학교에서 노동법이나 노동인권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봤다. 그러다 보니 학생에서 노동자로 신분이 바뀐 뒤에도 자신을 방어하지 못한다. 노동자의 권리, 근로기준법, 노동조합, 최저임금제도 등 예비지식이 없으니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부당한지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설령 인식하더라도 어디에 어떻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조차 제도권 교육이나 교사 양성 과정에서 노동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노동운동이 어떻게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지 가르칠 수 있을까. 

그는 학교에서 노동교육을 철저히 받은 상태에서 노동자·경영자·정치인·교사 등이 되는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는 노동문제를 이해하는 수준이 다르다면서 그 차이를 영화를 통해 설명했다.

노동운동을 이해하는 사회의 일상

프랑스 영화 '뉴욕에서 온 남자, 파리에서 온 여자'에서 딸이 "데모 때문에 차 막히고 난리 났어요"라고 말하자 엄마가  "불쌍한 간호사들이 파업도 못하니? 여기는 미국이 아니야"라고 일갈한다. 파업하는 노동자를 비난하는 일은 '천박한 자본주의 국가'에서나 하는 교양 없는 짓이라고 비난하는 대사다.

프랑스 영화 '뉴욕에서 온 남자, 파리에서 온 여자' 한 장면. 

하 교수에 따르면 유럽사회는 노동운동을 이해하지 못하면 교양이 없다는 정서가 형성돼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프랑스에서는 초중등학교 필수과목인 '시민교육'의 핵심이 바로 '노동인권교육'이다. 초등학교 교과서 대단원에 '일,노동,권리'가, 소단원에 '취업할 권리'와 '취업한 뒤 권리'가 수록돼 있다.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는 '단체교섭의 전략과 전술'만 1/3을 차지한다.  

독일의 노동교육 열기도 만만치 않다. 초등학교에서 모의 단체교섭이 특별활동으로 자리 잡혀, 1년에 6차례 정도 모의 노사교섭을 진행한다. 

추상적이거나 이론적인 내용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하 교수에 따르면 독일 금속노조와 사용자 단체가 체결한 임금협약, 이들이 체결한 기본협약 등과 함께 노동조합이 발표한 성명서, 노동문제에 대한 신문기사 등이 교과서에 수록돼 있다. 

단체협약으로 확보한 노동조건이 노동자(자신)의 삶과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판단 능력을 초등학생때부터 기르는 것이다. 

하 교수는 "사회구성원 대부분이 노동자이거나 노동자 가족으로 구성된 사회에서 노동자나 경영자가 모두 노동 문제를 안다는 것은 사회 전체에 유익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회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면서 노동의 권리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산 것'과 '죽은 것' 만큼의 큰 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으며 그 차이는 평생 지속된다고 했다. 

노동운동을 이해 못하는 사회의 일상

앞서 언급한 영화 속 인물을 한국사회로 옮겨보자. 딸이 "시위 때문에 차 막히고 난리 났어요"라고 말하면 과연 비난의 화살은 어디로 향할까. 

최근 화물차 노동자들이 안전운임제 확대를 위한 파업을 진행했을 때 실제 한국정부는 '민폐 노총' '기획 파업' 운운하며 주유소 품절 안내문에  화물연대 파업 탓이라고 알리도록 했다.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11년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민주시민교육에 노동인권교육을 담겠다고 하자 경영계를 비롯한 일부 교원 단체와 정치권에서 교육과정에 노동인권을 담는 것이 이념교육이라고 비난했다. 

시민계급이 축적한 자본을 기반으로 자본주의 경제 체제로 이행한 유럽과 달리 한국은 일제 식민지라는 비정상적 방식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주입됐다.

신분사회의 모순을 백성들이 스스로 깨닫고 뜯어고친 경험이 없는데다, 도덕적 우월성을 상실한 친일파들이 지배세력이 되면서 근대적 합리성이 제대로 자리잡을 수 없었던 것이 한국의 현실. 노동인권의 중요성 노동운동의 역할, 노사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역사 발전 과정에서 생략된 것이다. 

하 교수는 이같은 점을 설명하며 한국사회는 전형적인 자본주의 시장경제 사회인 미국보다 노동문제에 대해 훨씬 더 보수적이고 부정적이라고 했다. 그는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며 노동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종강 교수 발제문 캡처
하종강 교수 발제문 캡처

"좋은 직장에 다닌다면 나는 노조에 가입 할 것입니다. 내 가족의 생계를 보장할 좋은 직업을 원하십니까? 누군가 자신의 뒤를 든든하게 봐 주기를 바라십니까? 그렇다면 나는 노조에 가입할 것입니다. 내가 여러 나라를 다녀보니 노조가 없거나 금지한 나라도 많습니다. 그런 곳에서 가혹한 착취가 일어나고, 노동자들은 보호받지 못한 채 늘 산업재해를 당합니다. 노동조합 운동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출산 문제의 해법이 노동교육에 있다고?

하 교수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OECD 회원국 중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가장 높고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속도도 가장 빠르다. 

하 교수는 대기업 노동자를 만난 이야기를 들려줬다. 한국 최고 수준의 임금을 받는 이른바 '귀족 노동자' 중 상당수가 "결혼 계획은 있지만 아기는 낳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치열한 생존경쟁 사회에서 자신의 자녀를 자기처럼 대기업 정규직으로 만들 자신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경쟁에서 승리해 특권을 획득한 삶만이 '헬조선 탈출법'처럼 가르쳐온 사회 시스템이 대한민국을 저출산 국가(세계 220위)로 만들었다. '능력주의'와 '공정'이 등가인 한국사회는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별을 정당화 했다. 

하종강 교수 발제문 발췌
하종강 교수 발제문 발췌

하 교수는 유럽의 교육제도가 지금처럼 자리잡게 된 것은 활발한 노동운동을 통해 대부분의 직종의 노동자들이 정당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사회로 만든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하는 것도 훌륭한 일이지만 사회적 약자들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우리 사회 구조를 조금씩 바꿔 가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사회문제를 구조적 관점에서 보면 왜 헌법이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기 위해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갖는 모순이 노동자로 하여금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측면이 있어서다. 

하종강 교수 발제문 발췌 
하종강 교수 발제문 발췌 

한국사회는 노동자 파업을 사회에 막대한 손실을 끼치는 행위로 인식하는 정서가 있다. 그러나  유럽사회는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 사회 전체에 유익하다는 것을 경험치로 안다. 

하 교수는 노동문제를 한 회사의 노사관계 안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대한 폭넓은 시각으로 봐야 모든 노동자가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봤다. 

한국사회에 살면서 "벽돌 기술자가 돼 평생 음악을 들으면서 행복하게 살겠다"는 꿈을 꿀 수 있으려면 먼저 차별이 자연스러운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바꿔야 한다. 대학을 가지 않고도, 대기업에 가지 않고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라면 출산률도 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 제도권 내 노동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