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봉개동 북부광역환경관리센터 노동자 57명이 지난해 11월 7일 오전 천막 설치 전 제주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봉개소각장 노동자들의 원청인 제주도는 고용승계를 통해 책임을 다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제주시 봉개동 북부광역환경관리센터 노동자 57명이 지난해 11월 7일 오전 천막 설치 전 제주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봉개소각장 노동자들의 원청인 제주도는 고용승계를 통해 책임을 다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제주시 봉개동에 위치한 북부광역환경관리센터 내 소각장 시설이 이달 말 문을 닫는다. 이에 따라 직원 56명이 집단 해고, 일자리를 잃게 된다. 

이 시설은 지난 2003년부터 제주특별자치도가 민간기업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었다. 소각장 폐쇄 시점이 다가오자 시설에 고용된 직원들은 원청인 제주도를 상대로 고용 승계를 요구, 지난해 11월7일 도청 앞에 천막을 치고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도는 시설 운영 위탁을 받은 사업자의 고용 문제에 대해선 “직접적인 책임 또는 의무가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천막농성 100일째인 14일. 이날 오전 10시쯤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천막을 방문, 안용남 북부광역환경관리센터 노조위원장과 임기환 민주노총 제주본부장 등을 만났다. 

#노정협의체 어떤 역할 하나?

이 자리에서 오 지사가 내놓은 대책은 노정협의체를 꾸리겠다는 것. 협의체는 대량해고 위기에 처한 봉개 소각장 노동자들의 고용 문제 해결을 위해 도 유관 부서와 노동자 대표 등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협의체의 역할은 올 연말까지 봉개 소각장 해고 노동자들이 취업 교육과 취업 연계 등을 통해 환경 관련 시설에 재취업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핵심이다. 이는 지방자치단체가 위탁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의 고용 안정에 책임을 가진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날 오 지사는 “민간 위탁사업장의 경우 노동 관련 법에 따라 법적 책임의 귀책사유는 위탁기관에 있지만 제도 개선을 통해 지방정부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어 “앞으로 유사한 문제가 발생할 것을 대비해 조례 제·개정을 통해 도 차원의 제도적인 지원 체계를 마련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겠다”며 “이번 고용위기 해결 경험을 통해 10인 이상 집단 고용위기가 발생하면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14일 오전 오영훈 지사가 도청 앞 봉개 소각장 집단 해고 관련해 농성 중인 천막을 찾았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14일 오전 오영훈 지사가 도청 앞 봉개 소각장 집단 해고 관련해 농성 중인 천막을 찾았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말뿐인 노정협의체는 ‘NO’, 실질적인 성과 내야

소각장 노동자들과 노동단체는 노정협의체 구성 및 운영에 대해 일단 환영하면서도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용남 북부광역환경관리센터 노조위원장은 “우리는 20년동안 제주지역 환경을 위해 일해왔다. 원청인 제주도는 노동자들이 지속적으로 고용을 유지할 수 있게끔 보장해줘야 한다”며 “노정협의체에서 그런 부분이 나온다면 천막도 철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당장은 환경 관련 사업 부문에 우리가 갈 만한 자리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8~9개월간 실업 급여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 나가겠지만 그 이후엔 취업을 희망하는 노동자에게 일자리가 연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임기환 민주노총 제주본부장은 “봉개 소각장 해고 노동자들이 유관 부서 사업장으로 배치될 수 있는 방안이 나와야 한다”며 “이번 사례를 통해 제주도가 공공부문에서 나아가 민간위탁 부문 사업장까지 포괄해서 고용 안정과 관련한 방안을 폭넓게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무엇보다 이번 협의 기구를 통해서 노동자와 제주도 간 대화가 이뤄지고 신뢰가 쌓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14일 오전 오영훈 지사(오른쪽)가 도청 앞에 설치된 제주북부광역환경관리센터노조 천막을 찾아 안용남 위원장(가운데)과 임기환 민주노총 제주본부장(검은 점퍼) 등을 만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14일 오전 오영훈 지사(오른쪽)가 도청 앞에 설치된 제주북부광역환경관리센터노조 천막을 찾아 안용남 위원장(가운데)과 임기환 민주노총 제주본부장(검은 점퍼) 등을 만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향후 민간 위탁사업 고용 문제의 선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행정서비스 중 전문성과 효율성 등을 이유로 민간기업에 공공사무를 위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위탁사업이 단순히 인건비를 낮추기 위한 손쉬운 해고 명분이 되어선 안 된다. 

한국 사회는 IMF 경제위기와 2008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는 명목 아래 노동자를 싼 값에 쉽게 갈아치우는 소품으로 전락시켰다. 철저히 기업의 이윤 창출이라는 목적에만 초점을 맞춰온 것이다. 이 때문에 저임금과 고용 불안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자 지난 문재인 정부에선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또는 무기계약직) 전환 정책(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추진했다. 

이번 봉개 소각장 시설의 경우 민간위탁 사무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3단계에 해당한다. (△1단계: 고용노동부 공공부문 실태조사 대상기관 △2단계: 자치단체 출연.출자기관, 공공기관 및 지방공기업 자회사 △3단계 민간위탁기관)

한 노동법률 전문가는 “북부광역환경관리센터 소각장은 정책상으로 정규직 전환 대상 사업장이었다. 정부 또는 지자체에게 민간위탁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의 고용 안정을 유지할 의무가 있다는 건 분명하다”며 “제주도는 앞으로도 환경 관련 민간 위탁사업 계획을 잡고 있기 때문에 이번 사례가 어떻게 처리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봉개 소각장은 지난 2020년 2월28일 민간위탁이 종료될 계획이었으나 압축쓰레기와 폐목재 처리를 위해 사용기간을 3년 연장했다. 이에 따라 오는 28일 운영이 만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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