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진주의료원 폐쇄, 2015년 메르스 사태 등을 겪으면서 공공의료 필요성과 확충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특히, 공공의료 기반 확충은 COVID-19 대확산을 계기로 그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의료민영화의 첫걸음이 될 영리병원 불씨가 제주도를 넘어 강원도까지 번지는 상황. 이에 제주투데이와 의료연대본부 제주지부는 지역 차원에서 의료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는 정책 방향성과 대안을 10차례에 걸쳐 모색한다. <편집자주>

오상원 의료영리화 저지 도민운동본부 정책기획국장
오상원 의료영리화저지 도민운동본부 정책기획국장

얼마 전 제주지방법원에서는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두 번째 개설 허가 취소와 관련한 소송이 열렸다.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과 관련된 세 번째 법적 다툼이다.

2015년 시작된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으로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영리병원은 언제부터, 무슨 목적으로 그 제도가 시작됐을까?

 

 

#. 영리병원, 정주 외국인을 위한 ‘외국인 전용 병원’

영리병원 논란은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2년 12월에 제정된 경제자유구역법으로부터 시작됐다. 당시 경제자유구역법상 영리병원은 우리나라에 정주하는 외국인을 위한, 외국인 전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설립도, 이용도 외국인만 가능했고, 공공보험인 국민건강보험은 적용되지 않았다. 법안이 이렇게 제정된 이유는 국내 의료체계에 끼치는 악영향을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영리병원은 수익성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무도 설립하려 하지 않았다. 급기야 노무현 정부는 2004년에 재정경제부를 앞세워 영리병원에 대한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해 영리병원에서 내국인 환자도 진료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이후엔 설립 주체마저 외국자본과 국내 자본 합작투자로 영리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그런데도 경제자유구역인 인천, 부산 등에서 추진되던 영리병원은 국민들의 반발에 부딪혔고, 그렇게 영리병원의 생명은 다해가는 듯 보였다.·

&nbsp;제주헬스케어타운 내 녹지국제병원.&nbsp;(사진=박소희 기자)
&nbsp;제주헬스케어타운 내 녹지국제병원.&nbsp;(사진=박소희 기자)

#. 10전 11기? 제주 영리병원 도입을 위한 끊임없는 시도

경제자유구역에서 맥을 못 추던 영리병원은 2006년 제주특별법이 발효되며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특히 제주에서는 관광지라는 특성을 이용한 의료관광 활성화 명목으로 영리병원 설립 시도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 2006년 6월, 미래의료재단의 ‘제주 메디컬 리조트’ 설립 시도

- 2007년 7월, 미국 PIM-MD의 영리병원 설립 시도

- 2007년 7월, 일본 의 진화-NK 바이오의 영리병원 설립 시도

- 2008년 4월, 서울대병원-JDC 의료관광·의료산업 활성화 헬스케어타운 조성사업 MOU 체결

- 2008년 7월, 김태환 제주도지사의 국내 영리병원 도입 시도

- 2009년 7월, 국내 영리병원 도입을 위한 제주도의회의 ‘제주특별법 4단계 제도개선안’ 의결

- 2010년 6월, 미국 영리의료법인 스템스USA의 ‘스템스 메디컬센터’ 설립 시도

- 2010년 9월, 중국 북재청조그룹-홍콩 엔지니스의 성형 테마 타운 추진

- 2013년 2월, 중국 천진화업그룹의 ‘싼얼병원’ 설립 시도

- 2015년 4월, 중국 녹지그룹의 ‘녹지국제병원’ 설립 및 개설 허가 취소

제주에는 특별법 발효 후 10여 년간 10여 차례의 영리병원 도입 시도가 있었다. 특히 개원 직전까지 갔던 녹지국제병원이 있었지만, 이마저도 제주도민과 전국의 국민들 반대에 부딪혔다. 도민들은 녹지국제병원 개설 문제를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공론조사를 통해 결정했다. 결과는 불허 58.9%, 허가 38.9%로, 영리병원 개설 불허를 결정했다.

하지만 원희룡 전 지사는 도민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녹지국제병원에 '내국인 진료 제한'이라는 조건을 달아 개설을 허가했다. 중국녹지그룹은 제주도의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해 여전히 재판은 진행 중이다.

17일 의료영리화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가 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녹지국제병원 손을 들어준 대법원과 이를 방관한 제주도를 규탄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17일 의료영리화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가 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녹지국제병원 손을 들어준 대법원과 이를 방관한 제주도를 규탄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 제주 안되니 이제는 강원 영리병원?

그런데 제주에서 중단된 영리병원이 강원도에서 부활 조짐을 보인다. 지난해 9월, 박정하 (국민의힘·강원 원주 갑)국회의원이 강원 영리병원 도입 내용을 담은 ‘강원 특별자치도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국회에 대표 발의한 것이다. 이 강원 특별법 개정안 발의로 제주에서 죽어가던 영리병원은 좀비처럼 부활하고 있다.

2002년부터 이어져 온 영리병원 문제는 영화에 나오는 죽어도 죽지 않는 ‘좀비’와 매우 흡사하다. 경제자유구역에서, 제주에서 말끔하게 정리해내지 못한 영리병원은 이제 특별법이라는 이름을 타고 강원도로 번져 나가고 있다. 야당인 민주당이 다수인 국회 상황을 고려하면 2024년 중반까지는 강원 영리병원 설립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하지만 영리병원 제도를 최초로 도입하고, 영리병원을 쉽게 설립하도록 법 개정에 앞장서 온 곳이 민주당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보면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이해관계가 맞으면 영리병원 제도 도입을 위한 강원 특별법 개정안은 지금 당장이라도 국회 통과를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의료영리화 저지와 의료공공성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는 지난해 9월 28일 낮 제주지법 일대에서 녹지그룹 조건부 허가 취소소송의 각하를 촉구하는 피켓시위를 진행했다. (사진=박지희 기자)
의료영리화 저지와 의료공공성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는 지난해 9월 28일 낮 제주지법 일대에서 녹지그룹 조건부 허가 취소소송의 각하를 촉구하는 피켓시위를 진행했다. (사진=박지희 기자)

#. 문제는 민영화·규제 완화 윤석열 정권

무엇보다 현시기에 가장 큰 우려는 역대 어떤 정권보다 전 산업을 망라한 민영화와 규제 완화를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윤석열 정권이다. 현 정권의 야욕과 영리병원이 결합한다면 전국 9개 권역에 걸쳐 전국을 뒤덮고 있는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 강원도에서 우리는 좀비처럼 부활하는 영리병원을 전국 도처에서 목도하게 될 것이다.

영리병원과 결별할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제주특별법과 경제자유구역법에서 영리병원 허용조항을 완전히 삭제하고, 강원 특별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막아내는 것뿐이다.

20년 영리병원 논쟁의 역사. 이 역사는 영리병원을 막아온 국민의 투쟁 역사다. 영리병원 법안은 있지만 우리나라 어디에도 영리병원은 없다. 30년. 40년 논쟁을 이어간다고 우리 국민들이 건강권과 생명권을 훼손하는 영리병원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제는 20년 영리병원 논쟁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을 때다. 모두 함께 외치자!

"이제 그만! 영리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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