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봉수 제주대 교수 
강봉수 제주대 교수 

제주4·3, 75주년을 앞둔 최근 참으로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극우를 표방하는 우리공화당, 자유당, 자유민주당, 자유통일당과 자유논객연합이라는 정당과 단체가 4·3에 대해 북한 김일성과 남로당이 저지른 폭동이라 규정한 현수막을 곳곳에 내걸었다. 나아가 그 무시무시했던 서북청년단의 맹신을 잇는다는 불명의 단체는 4·3추념 일에 제주로 내려와서 4·3을 폄훼하는 집회를 열겠다고 전한다.

이 나라에 저러한 극우정당과 단체들이 있었는지도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대체 백주대낮에 어떻게 제주4·3을 폄훼하는 작태를 벌일 수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근원은 윤석열 정부에 있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

지난 대통령 선거 운동과정에서부터 윤대통령은 노동·농민·통일·민주화 운동세력을 친북·종북주의자라 여기는 편향된 시각을 드러낸 바 있다. 그래도 집권이후에 보여준 인식과 행태 만큼일 줄은 몰랐다. 그러한 인식과 행태들이 급기야 제주4·3을 폄훼하는 작태를 벌일 수 있는 토양을 극우세력들에게 제공한 것이다.

윤 대통령이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근저에는 일방적 친자본·반노동과 철지난 반공이데올로기가 깔려있는 듯하다. 그가 기회 있을 때마다 반복하여 외치는 자유와 공정의 바탕에도 그러한 세계관이 놓여 있는 것이라 여길 수밖에 없다. 경제와 안보를 강조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의 흐름 속에 있다.

그래서 그는 69시간 노동을 말하고, 노동조합들을 불온하게 대한다. 기존 남북합의서의 철회를 넘어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과 핵무장을 거론하기도 한다. 친일굴욕 외교에서 보듯 미국의 세계전략과 미일군사협력 구도 속에 한국안보를 복속시키며 제2의 동북아 신냉전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공안탄압저지 및 민주수호 제주대책위는 28일 오전 11시 제주도청 앞에서 '윤석열 정권 공안탄압 분쇄대회'를 개최한 가운데, '윤석열정권 공안탄압 분쇄하자'는 문구가 담긴 종이를 참가자가 들고 있다.(사진=박지희 기자)
공안탄압저지 및 민주수호 제주대책위는 28일 오전 11시 제주도청 앞에서 '윤석열 정권 공안탄압 분쇄대회'를 개최한 가운데, '윤석열정권 공안탄압 분쇄하자'는 문구가 담긴 종이를 참가자가 들고 있다.(사진=박지희 기자)

윤석열 정부는 저러한 국내외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부 환경조성의 일환으로 공안정국을 밀어붙이는 듯하다. 검찰공화국을 방불케 하는 인사정책이 출발점이었다. 대선 과정에서 윤대통령의 부인인 김건희가 ‘우리가 정권을 잡으면 권력기관들이 알아서 할 것’이라고 했던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아니, 권력기관들이 보여주는 최근 행태는 ‘알아서’ 하는 차원을 넘어설 정도다. 마치 지난 문재인정부의 권력기관 민주화 정책에 복수라도 하듯이 검찰이건 국정원이건 너도나도 들고 일어나고 있다. 경찰은 물론이고 공수처조차 무릎을 꿇었다. 정적제거 차원을 넘어 노동과 농민운동진영 인사들에까지 공안탄압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공안당국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진보정당과 민주노총을 비롯한 여러 노조사무실과 개인 자택을 압수수색했고, 관련자들을 구속하기도 하였다. 가장 최근에도 네 명이나 같은 협의로 구속영장 심사를 앞두고 있다. 대체 갑자기 이 정부에 들어와서 북한인사와 접촉하고 북한의 지령을 받고 활동하는 간첩들이 뜬금없이 생겨나는지 모르겠다. 지난 정부시절에는 있어도 그냥 모른 체 넘어갔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들이 이전에는 직무유기를 한 것이 아닌가? 이제야 공안탄압에 나서는 것은 결국 그들과 뜻을 같이하는 윤석열 정부의 등장과 무관하지 않다고 할 것이다.

공안탄압 저지 및 민주수호 제주대책위(이하 대책위)는 12일 제주국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가운데, 대책위 관계자가 '윤석열 정부는 정권위기 탈출용 공안탑압 중단하라'는 문구가 써진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공안탄압 저지 및 민주수호 제주대책위(이하 대책위)는 12일 제주국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가운데, 대책위 관계자가 '윤석열 정부는 정권위기 탈출용 공안탑압 중단하라'는 문구가 써진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돌이켜보면, 공안정국은 과거 권위주의정권들이 늘 써먹던 수법이다. 권위주의 정권들은 주요 정치적 시기마다 국가보안법을 빌미로 정치적 방해세력을 탄압하고 정권위기를 타개하는 수단으로 이용해왔다. 이러한 경험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번 공안정국에 대해서도 정권위기 탈출용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집권초기부터 여러 국가적 재난과 위기상황의 대처에서 미숙하고 국민적 감정과 뜻에 반하는 대응을 해옴으로써 스스로 정권위기를 자초해왔다. 이점에서 작금의 공안탄압이 정권위기 탈출용이라는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적 진단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윤 대통령 자신의 잘못된 세상보기 인식 때문이라 여긴다. 오히려 지금 자행하는 공안정국과 탄압정책이 돌이킬 수 없는 정권의 위기를 가져올 것이다.

국가보안법 혐의로 공안탄압을 당하는 제주출신 인사가 4명에 이른다. 진보정당 인사, 농민회출신 인사, 평화활동가들이다. 그것도 제주4·3, 75주년 추념 일을 앞두고 벌어진 일이다. 공안탄압에 이어 국민의힘 소속의 태영호 국회의원, 극우정당과 세력들의 4·3 폄훼주장이 펼쳐지고 있다. 과연 제주에서 작금에 일어나는 작태들이 윤석열 정부와 무관하다고 볼 수 있는가?

지난 시절 이 나라 보수 세력들이 제주를 빨갱이 섬으로 규정했던 역사가 현 정부에서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것이 아니라면 윤대통령이 먼저 나서 4·3을 폄훼하는 작태를 중지케 하고, 철지난 방법으로 자행하는 공안탄압 정국을 철회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지향하는 미래국가 건설의 비전과 정책을 실현하려는 진정한 뜻이 있다면 자기중심적 세상보기와 공안정국이 아니라 야당과 대화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길에 나설 일이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