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집무실에서 도정 현안 공유 티타임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13일 오전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집무실에서 도정 현안 공유 티타임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입장이 없는 것이 입장이다.

최근 오영훈 제주지사의 제2공항 관련 발언을 들어보면 이와 같이 정리된다. 제주도는 현재 국토부의 제2공항 기본계획에 대한 도민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도민들이 여러 가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기본계획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지고 있다. 물론 찬성 여론도 있다. 하지만 오영훈 지사는 별다른 ‘의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단순히 행정 절차를 진행하고 따르는 타성적인 관료의 모습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제주도는 홈페이지를 통해 제2공항에 대한 도민의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의견들이 어떤 방식으로 수합하고, 국토부에 제출할지에 대해서는 결정된 바가 없다.(김재훈기자/사진=제주도청 홈페이지 갈무리)
제주도는 홈페이지를 통해 제2공항에 대한 도민의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의견들을 어떤 방식으로 수합하고, 국토부에 제출할지에 대해서는 결정된 바가 없다.(김재훈기자/사진=제주도청 홈페이지 갈무리)

제주도는 경청회와 제주도청 홈페이지를 통해 도민 의견을 받고 있다. 제주도청 홈페이지에는 11일까지 289개의 의견이 올라왔다. 그 의견들은 비공개로 홈페이지에 게시된다. 그렇게 모인 의견을 제주도는 어떻게 국토부에 제시할까. 국토부는 그 의견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이번에 발표된 기본계획 보고서를 보면 얼마간 예상 가능하다. 국토부 제2공항 기본계획 용역 보고서에 제시된 지역 주민의 의견은 제2공항 건설을 전제로 한 사후 대책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제주도는 당시에 모은 도민 의견을 어떤 방식으로 국토부에 제출했는지 밝힐 필요가 있다. 제2공항 건설로 인한 문제를 제기하고 우려하는 도민의 의견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어느 과정에서 매몰됐을까. 당시에 모은 의견을 제주도가 어떻게 제출했는지, 그리고 이번에 모으고 있는 의견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서 도민은 알권리가 있다.

강성의 제주도의원은 11일 제주도의회 도정질의에서 이와 같은 문제 의식을 갖고 오영훈 지사에게 질의했다. 도민 의견 수렴 과정이 마무리 되면 어떤 방식으로 국토부에 전달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해서. 오영훈 지사는 “의견 수렴 과정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지켜보겠단다.

오 지사는 제2공항과 관련해서 도민의 자기결정권 확보가 중요하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오 지사는 자기결정권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아니, 자기결정권 확보 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조차 하지 않았다. 오 지사가 지켜보는 동안 환경부는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를 통과시키고 국토부가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오 지사는 그때까지 국토부 탓만 하며 시간을 보냈다. 국토부가 제2공항 기본계획을 발표한 후에는 별다른 모습을 보여줬을까. 아니다. 그제서야 시나리오별 대응 전략을 주문했다 한다. 국토부가 시나리오 대로 모든 패를 던졌지만 오영훈 지사가 내민 건 '뻥카'였다.

오 지사는 스스로 무슨 조치를 해야 할디 갈피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초한 일이다. 자기결정권 확보 방안 수립을 계속 미뤄왔기 때문이다. 오 지사와 제주도정이 도민의 자기결정권 확보를 위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역량이 안 된다면 연구용역을 맡길 수도 있었다. 오 지사는 도지사 취임 직후, 15분도시를 비롯해 수 많은 연구 용역을 발주해왔다. 하지만 자기결정권 확보방안 모색을 위한 용역은 추진하지 않았다. 결국, 미루고 또 미루는 것이다. 가능한 한 미루고 있다. 무능하거나 태만하다.

제2공항에 대한 도민 의견을 수렴하는 2차 경청회는 찬반 주민 간 고성과 욕설로 얼룩졌다. 서귀포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정근효 군은 찬반 주민들이 서로를 헐뜯고 인신공격을 하는 데 대해 문제를 제기하다 울음을 터트렸다.(사진=박소희 기자)
제2공항에 대한 도민 의견을 수렴하는 2차 경청회는 찬반 주민 간 고성과 욕설로 얼룩졌다. 서귀포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정근효 군은 찬반 주민들이 서로를 헐뜯고 인신공격을 하는 데 대해 문제를 제기하다 울음을 터트렸다.(사진=박소희 기자)

어느 쪽이든, 그 피해는 도민들이 겪고 있다. 제2공항 경청회에서 찬반 주민들이 격돌했다. 주민 간 고성과 욕설이 오간다. 인신공격도 서슴치 않는다. 2차 경청회는 청소년에 대한 인권침해 논란까지 야기했다. 경청회라는 명분으로 도민 간 싸움을 붙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쯤되면 ‘도민 의견 수렴’이 아니라 도민 갈등에 불을 지르는 격이다. 오영훈 지사가 심판 역할이나 맡고 있는 동안  도민들은 치고 받고, 때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책임 지고 주민 의견을 모아 대표해야 할 행정 수장이 주민을 이간하고 있는 격이다. 역대 도지사 중 이런 도백이 또 있었던가.

정치인이 자신을 향한 비난이 두려워 책임 정치를 외면하면,  이처럼 주민들이 서로를 비난하고 책임을 따지게 된다. 확실히 하자. 이 같은 민민 갈등의 책임은 정치인들의 책임이다. 제2공항 갈등의 경우,  도민의 자기결정권이 중요하다고 기회가 될 때마다 말해왔지만 정작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해 단 한 마디 하지 않는 오영훈 지사의 몫이 크다. 지금 같은 모습으로 일관하면 갈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사진=제2공항 기본계획 일부 갈무리)
제2공항 기본계획은 원희룡 제주도정이 제시한 '제주특별자치도 의견'을 반영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수립하고 원희룡 전 제주지사의 의견을 반영한 것. 이를테면 '원맨쇼'다.(사진=제2공항 기본계획 보고서 일부 갈무리)

이번 국토부의 제2공항 기본계획은 원희룡 국토부장관이 수립하고, 원희룡 제주도정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 현재는 오영훈 지사 체제이다. 하지만 국토부의 제2공항 기본계획은 원희룡 제주도정이 내세운 ‘제주도 의견’을 따르고 있다. ‘원맨쇼’다. 오 지사가 보기에는 썩 괜찮은 것인가. 별도의 의견을 내지 않아도 될 정도인가.

지금과 같이 사실상 제2공항에 대해 입장 없는 입장으로 일관한다면 결과적으로 원희룡 제주도정이 국토부에 제출한 ‘제주도 의견’을 묵인하며 후속 과정을 따르게 된다. 원희룡 도정이 수립한 제2공항 관련 용역들도 유효하다. 원 전 지사가 닦아 준 길을 졸졸 따라가는 오영훈 제주도정이 원희룡 제주도정과 대체 무엇이 다른가. 다른 점이 없는가? 오영훈 지사는 답해야 한다.

도민 자기결정권 확보를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 제주도지사의 의견은 무엇인지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책임을 지면 된다. 

제주도가 지금 방식으로 수합하는 도민 의견은 양적, 질적으로 충분할까. 오 지사가 자기결정권 확보를 위한 방안 마련을 위한 감을 잡는데 충분할까. 모자랄 것이다. 대규모 도민 여론조사를 시행해서라도 도민의 여론을 제주도청 차원에서 파악해야 한다. 오영훈 지사가 결단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면 된다. 그것이 정치인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이런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오영훈이 원희룡이다.' 아니다. 과분하다. 원희룡 전 지사는 최소한 자신의 선명한 노선에 대한 비난을 감수하기라도 했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