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와 산과의사』(미셀 오당 씀, 김태언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
『농부와 산과의사』(미셀 오당 씀, 김태언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

이 책은 2002년에 나왔다. 우리나라에는 2004년에 옮겨서 나왔다. 지금부터 21년 앞서 나온 책이다. 지금에 와서야 더욱 뜻이 깊다. 우리나라는 젊은 사람들이 혼례를 치루지 않고, 혼례를 치룬 사람들도 아기를 하나 낳거나 아예 낳지 않는다. 또 아기는 대부분 병원에서 낫는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반 넘게 배를 갈라서 아기를 낳는다. 유럽에 있는 많은 나라들은 점점 배를 가르며 아기를 낳는 일이 줄어든다.

글쓴이는 말한다. 아기를 낳을 때 기계를 쓰면 아기가 자라면서 거칠어진다고. 또 아기가 서둘러 나오도록 약을 먹으면 아이가 자라면서 약물중독에 빠지기도 한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도 이와 관계가 있다고 한다. ‘분만에 어려움이 있었던 사람들은 자살을 해도 폭력적인 기계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 달리는 기차에 뛰어들기, 총기 사용 등). 한편, 질식에 관련된 자살은 출생시에 있었던 질식상태 경험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71쪽)

물론 병원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또한 폭력성과 자살이 어머니 책임이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어머니도 의료산업이 낳은 피해자이다. 지난날에 어머니 품에서 어둡고 조용한 곳에서 아기를 낳았다.

또 사람들은 아기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 어머니는 아주 힘들다. 맞다. 하지만 어머니 뱃속에서 아기가 스스로 나오려면, 아기는 어머니보다 더욱 힘을 쓴다. 어머니가 주는 힘이 4이면 아기가 주는 힘은 6이라고 한다.

아기가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에 나왔을 때 좀 더 세상을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산과의사들에게 몰매를 맞을지도 모른다. 또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은 사람들은 쓴소리를 할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글쓴이는 이 책을 썼다.

녹색평론사 대표였던 김종철이 이 책을 읽고 쓴 글을 보자 ‘오늘날 우리의 삶은 경쟁, 폭력, 공격성으로 수습 불가능할 정도로 짓이겨져 있다. 이러한 상황을 넘어서기 위해서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의 하나는 세상에 갓 태어나는 아기들을 어떤 방식으로 맞이할 것인가를 다시 생각해보는 일일 것이다. 폭력 없는 세상은 내면적으로 자유롭고 평화로운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고, 인간의 심성은 근본적으로 태어날 때의 분위기에 깊이 좌우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196쪽)

또 글쓴이는 말한다. 지금에 산과의술은 인류가 기계산업문명을 이루면서 함께 이루어졌다고. 지금은 농사를 지을 때, 풀과 벌레를 죽이는 독약을 뿌린다. 농작물을 많이 빨리 거둘 수 있다면 땅이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땅은 어머니다. 땅에 사는 풀과 벌레들은 자식이다. 똑같다. 아기를 낳을 때 고통이 없이 낳겠다는 생각으로 이런저런 호르몬 주사를 맞는다. 그것은 땅에 뿌리는 독약과 같다. 먹을거리는 많이 나오겠지만 튼튼한 먹을거리는 아니다.

아기도 마찬가지다. ‘내가 약탈자 인간이라고 부르는 인간의 변종은, 지구의 미래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고, 후세의 인간들에 대해 아무런 연민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허약한, 혹은 약화된 생태적 본능은 사랑하는 능력 손상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기본적인 질문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사랑의 능력은 어떻게 계발되는가?(89쪽) 이 책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 꼭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아기를 낳을 때 배를 가르는 수술을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나서 맞이할 세상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이미 지구가 너무 더러워져서 그런 아름다운 세상은 다시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글쓴이 은종복 씨는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인문사회과학 책방 '제주풀무질'의 일꾼이라고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책과 사회를 또박또박 읽어내려가는 [또밖또북] 코너로 매달 마지막 주에 독자들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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