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자가 없는 세상》 권정생 시, 김규정 그림, 개똥이 펴냄
《애국자가 없는 세상》 권정생 시, 김규정 그림, 개똥이 펴냄

2021년에 나온 그림책이다. 권정생 쓴 시와 김규정의 그림을 담았다. 시 전문을 보자.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고/ 대포도 안 만들 테고/ 탱크도 안 만들 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 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 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 테고//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애국자.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어느 나라나 사람들에게 나라를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왜 글쓴이는 ‘나라를 사랑하지 말라’고 말할까. 정말로 나라를 사랑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일까. 아니다. 나라를 제대로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은 국가란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충성을 바란다. 물론 국가를 지켜야지 다른 국가로부터 백성들을 지킬 수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국가는 백성을 지키는 일보다 국가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 미국 하와이대학에 있는 학자 럼멜은 말했다. 지난 100년 동안 국가권력으로 죽은 사람은 2억 명쯤 된다. 그 가운데 1억3000만 명은 그 나라 통치자들에 의해 죽었다. 총을 들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한국전쟁으로 30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죽었다. 그 가운데 200만 명은 총을 들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여순항쟁, 국민보도연맹, 제주4,3항쟁으로 죽은 사람만 30만 명이 넘는다. 5.18 광주항쟁, 6.10민중항쟁을 거치면서 국가 통치에 저항한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고 간첩으로 몰리고 철창에 갇혔다. 국가는 폭력집단이 되었다. 그렇게 국가폭력을 휘두른 사람들은 처벌을 받지 않는다. 민중들이 일어나서 단죄를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더군다나 애국자라는 이름으로 그런 국가폭력집단을 두둔하면서 권력을 누리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외치는 잘못된 나라사랑이, 같은 나라 사람들을 죽이는 일에 나서고, 힘이 약한 다른 나라 사람들을 죽이는 일에 도움을 준다.

이 책에의 첫 장면에 여러 나라 국기가 보인다. 자세히 보면 그 국기들은 실제로 있는 국기가 아니다. 상상해서 그렸다. 왜 그랬을까. 국기란 것은 백성들을 지켜주고 하나로 뭉치게 하는 상징이다. 하지만 지금 국기들은 자기 나라 이익만을 생각해서 다른 나라 사람들과 자연을 마구 해치는 상징물이 되었다. 국익이라는 ‘괴물’은 어떤 일을 해도 그 나라 사람들에게 용서를 받는다. 국가가 이익만을 앞세우니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자기 이익만을 앞세운다. 세상은 지옥불이 되었다.

이 그림책에서는 곰과 늑대가 총부리를 겨눈다. 어느 날 그 무리 속에서 아이 둘이 곰과 늑대 탈을 벗고 나온다. 책 가운데 애벌레가 꿈틀거리다 나비로 바뀐다. 아이들이 그것에 다가가서 사랑스럽게 보듬자 더욱 아름다운 나비로 바뀐다. 아이들 옆에서 서로 죽일 듯이 기관단총을 겨누던 곰과 늑대들도 하나 둘씩 탈을 벗어서 맨 얼굴을 드러낸다.

잡아먹을 것 같은 표정은 사라지고 맑고 환한 사람 얼굴로 바뀐다. 기타를 치고, 꽃 선물을 주고, 책을 읽고, 입술에 풀잎을 물고 잠을 자고, 입에 먹을거리를 넣어준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아주머니, 아저씨, 아이들, 동네 삼춘들이 다 모였다. 기뻐서 눈물을 흘리고, 꼭 껴안아준다. 그림 가장자리에는 그들이 벗은 곰과 늑대 탈이 나뒹군다. 곰과 늑대가 나쁜 존재로 표현된 점은 조금 불편했지만 국가가 없고 애국자가 없는 세상은 이렇게 평화롭다. 이것은 헛된 꿈일까?

글쓴이 은종복 씨는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인문사회과학 책방 '제주풀무질'의 일꾼이라고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책과 사회를 또박또박 읽어내려가는 [또밖또북] 코너로 매달 마지막 주에 독자들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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