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내 관광선박 업체들이 남방큰돌고래에 가까이 접근한 모습. (사진=핫핑크돌핀스 제공)
제주도내 관광선박 업체들이 남방큰돌고래에 가까이 접근한 모습. (사진=핫핑크돌핀스 제공)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 법적 인격을 부여하는 '법인'. 한국같은 법치주의 국가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자본주의 시대, 기업과 재산 등 법인격을 부여받았지만, 자연은 그렇지 못했다. 인간의 소유물일 뿐 주체가 아니었다. 그런데 현재 제주에서 '생태법인'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자연에게도 법적 권리능력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법인격이 부여되면 후견인 또는 대리인을 통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법적주체가 될 수 있다. 

지난 3월 31일, 제주도는 '생태법인' 제도화를 위한 워킹그룹을 출범시켰다. 논의 중심에는 제주 연안에 살고 있는 멸종위기종 남방큰돌고래가 있다. 1980년대부터 수족관과 돌고래쇼, 선박관광 등 관광자원으로 활발히 이용된 존재들이다. 그러나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제주여행 필수코스로 여겨졌던 돌고래쇼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불법 포획 사실이 드러나면서 '불쌍하다'는 정서가 자리잡았다. 동물복지적 관점에서 돌고래 그 자체가 권리를 가질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생태법인은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관점과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다는 점에서 생태위기 및 기후위기 문제와 닿아있다.

지난 26일 제주도의회 제주해양산업발전포럼이 주관.주최한 '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 도입에 다른 제주해양산업 발전방안 모색 정책토론회'에서 진희종 제주대 강사는 생태법인을 만들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공동체를 만드는 주권자의 의지이고, 사회현상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지난 26일 제주도의회 제주해양산업발전포럼이 주관.주최한 '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 도입에 다른 제주해양산업 발전방안 모색 정책토론회'가 진행된 가운데, 진희종 제주대 강사가 발제하고 있다. (사진=제주도의회 제공)
지난 26일 제주도의회 제주해양산업발전포럼이 주관.주최한 '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 도입에 다른 제주해양산업 발전방안 모색 정책토론회'가 진행된 가운데, 진희종 제주대 강사가 발제하고 있다. (사진=제주도의회 제공)
지난 26일 제주도의회 제주해양산업발전포럼이 주관.주최한 '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 도입에 다른 제주해양산업 발전방안 모색 정책토론회'가 진행된 가운데, 김익태 KBS기자가 발제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지난 26일 제주도의회 제주해양산업발전포럼이 주관.주최한 '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 도입에 다른 제주해양산업 발전방안 모색 정책토론회'가 진행된 가운데, 김익태 KBS기자가 발제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돌고래에 악영향 주는 선박관광 ... '공유지의 비극'될까

'제주 돌고래관광에 나타난 관광커먼즈의 비극'이라는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낸 바 있는 김익태 KBS 제주방송총국 기자도 지방정부 차원에서 '생태법인'이라는 의제를 선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제주가 생태 관련 연구·교육·정보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경제적 측면 뿐만 아니라 여러 자원이 집결되는 접점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에 따르면 고래관광은 국제적으로 규모있는 산업이다. 2008년 기준 119개 나라가 고래관광을 벌이고 있다. 과거에는 포경산업 위주였지만 '살아있는 고래가 죽은 고래보다 더 가치있다(Mader,2003)'는 인식이 퍼지면서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수족관 관광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선박관광이라는 형태가 등장했다. 

김 기자는 "제주만 해도 현재 김녕과 대정, 중문 등에서 이뤄지고 있는 선박관광 사업체는 셀 수 없이 많다"면서 "돌고래 관광을 표방하지 않은 곳도 실제로는 표방하는 곳도 다수다. 추정되는 직접매출액만 지난해 기준 34억원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생명의 가치가 부각되고 있는 시대엔 이조차도 완벽한 대안은 아니다. 제주연안 남방큰돌고래 개체 수는 110여마리 안팎으로 유지되고 있는 상황. 선박관광이 돌고래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여러 연구 및 관찰을 통해 증명됐다.

주인 없는 바다의 자원은 남용되고, 돌고래 개체 수가 줄어드는 현상은 필연적일 수 있다. 공유자원의 이용을 개인의 자율에 맡길 경우, 자원이 남용되거나 고갈된다는 개념 '공유지(commons, 커먼즈)의 비극'도 유명해진지 오래다.

(그래픽=김익태 기자)
돌고래 선박관광 (그래픽=김익태 기자)

"인증제·해양보호구역 등 적절한 관리로 '희극'될 수도"

그러나 김 기자는 오히려 공동체 관리를 잘해서 공유지를 성공적으로 키워나가는 희극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역주민의 수익으로 직결되는 시스템을 갖춘 '제주올레'를 예로 들었다. 돈보다는 제주가치를 쫓는 민간 주도 사업이다.

공공도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해수부는 2017년 선박관광 가이드라인을 마련했고, 올해부터는 과태료 부과까지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 기자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으로 해양보호구역 지정과 인증제를 내세웠다. 대만에서는 1990년대 모든 고래류 종을 보호 포유류 목록에 추가한 것을 시작으로, 친환경 선박 인증라벨을 지정하고 있다.

그는 "현재 도내 돌고래 관광선박 운영 시간표도 파악되고 있지 않아 컨트롤이 안되는 상황"이라면서 "제주도 차원의 실태조사 및 과학적 연구를 통해 규모를 갖춘 업체에 인증을 해주는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려면 철저히 객관적인 과학적 연구가 진행돼야 하며, 이를 위해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면서 "'관광산업'하면 경제적 측면만 생각하지만 생태 연구·교육·정보의 중심지로 자리잡는 것도 그 일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박지희 기자)
(사진=박지희 기자)

"지속불가능한 '자연 착취' ... 해녀 등 생태법인 대상에 포함돼야"

 토론에는 ▲황경수 제주대 행정학과 교수 ▲김도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 ▲양수남 제주자연의벗 사무처장 ▲강민철 제주도 특별자치법무담당관 팀장 ▲김종수 제주도 해양수산국 과장이 참여했다.

여기서 자연을 착취하는 방식의 관광산업은 더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 공존 및 생태의 가치를 중심으로 한 방식이어야만 지지를 얻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여기서 생태법인 제도는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다.

김도희 변호사는 "공유재로서의 자원을 논의할 때 인간이 아닌 생명체를 포함한 '미래세대'가 고려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현재 돌고래를 비롯한 자연물은 권래의 객체 밖에 되지 못한다"면서 "뉴질랜드나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등 자연물에 법인격을 부여한 사례를 보면, 권리의 주체로서의 지위를 인정한다는 게 의미있다. 국내에서도 여러 시도는 있었지만 인정된 사례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본이 후쿠시마 핵오염수를 방류하는 것에 대해 한국이 해야할 의무를 다하고 있지 않은 것과 관련, 헌법소원을 준비 중이다. 후쿠시마 앞바다에 서식하는 돌고래도 청구인으로 넣어둔 상황"이라면서 "관광산업에 대해 새로운 기준을 만드는 등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생태법인 도입은 자연물 뿐만 아니라 해양산업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구체적으로 권리를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왔다. 

황경수 교수는 "해녀나 어부, 해상풍력발전 사업자 등 여러 이해당사자들이 자신의 권리 주장을 위해 상대를 구체화시켜서 주장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생태를 보호하기 위해 책임 및 의무를 다하는 대신 제약에 대한 보상 요구에 대해서도 당당히 주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수남 사무처장은 "생태법인은 남방큰돌고래를 넘어서 생태계 전반에 적용되는 철학적 개념이기 때문에, 기존 해양산업의 체계 및 제주도정의 비전 전환, 조례 개정 등 여러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남방큰돌고래에만 한정시킨다고 해도 보호대책과 실제 주민 삶의 괴리를 풀어나가는 것도, 바다의 주체인 해녀를 생태법인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 등도 고민해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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