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7차 50만 교원 총궐기 대회가 열렸다. 이날 참가자 수는 주최 측 추산 30만명이다. (사진=독자 조민희 제공)
지난 2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7차 50만 교원 총궐기 대회가 열렸다. 이날 참가자 수는 주최 측 추산 30만명이다. (사진=독자 조민희 제공)

9·4 공교육 멈춤의 날

30만이다. 지난 9월 2일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교사들의 숫자다. 대한민국 교사는 모두 합쳐 47만이다. 그 47만 중에 30만이 집결한 것이다. 

그리고 이틀 뒤인 9월 4일, 교사들은 ‘9·4 공교육 멈춤의 날’을 선포하고 전국 동시다발 집회를 열었다. 이날은 고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일이었다. 제주에서는 2000명이 넘는 교사들이 제주도교육청 마당으로 모여들었다. 

이건 절박함이다. 억울한 죽음이 내게도 닥쳐올 수 있다는 위기감이다. 교사로서의 자존감이 바닥까지 추락하고 있다는 좌절감이다. 모든 책임을 떠맡아야 하는 교사들의 불안감이다. 

그들의 그 절규가 ‘공교육 멈춤’이었다. 공교육을 잠시 멈추고 우리 사회 모두가 우리 교육을 들여다보자는 호소였다. 이날 그들이 발표한 성명서는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다시는 어떤 교사도 홀로 죽음을 택하지 않도록, 

우리가 지킬 것이고, 우리가 바꿀 것이다. 

우리 교육은 9월 4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아니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9월 4일은 끝이 아닌 시작의 날이다. 

대한민국 교사의 이름으로 우리는

오늘을 공교육 정상화 시작의 날로 선포한다.

전교조 제주지부와 제주도교원단체총연합회 등 도내 6개 교원단체가 주최한 '9·4 추모문화제'가 4일 제주도교육청 앞에서 열린 가운데, 참가자들이 묵념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전교조 제주지부와 제주도교원단체총연합회 등 도내 6개 교원단체가 주최한 '9·4 추모문화제'가 4일 제주도교육청 앞에서 열린 가운데, 참가자들이 묵념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무엇이 문제일까?

그들의 ‘멈춤’은 정당하다. 그러나 한 번의 멈춤으로 공교육이 정상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모순이 쌓이고 쌓여있기 때문이다. ‘교실 붕괴’가 언급된 지도 벌써 20년이 지났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다. 오히려 더 악화되었을 뿐이다.

그런 만큼 ‘교육개혁’은 언제나 사회적 의제였다. 하지만 늘 겉돌기만 할 뿐, 본질을 건드리는 개혁은 없었다. ‘정시와 수시의 비율’, ‘수능 난이도 조절’, ‘절대평가와 상대평가’, ‘내신 반영 비율’, ‘학교 폭력’, ‘왕따’ 등이 자주 오르내리던 단어다. 공교육의 본질에 대한 천착은 없다. 문제가 터지면 임기응변으로 일관해왔을 뿐이다.

현대사회 공교육은 우선 ‘민주시민 육성’에 방점을 둔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갖춰야할 자질을 키우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격 도야와 자아실현을 이뤄가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민주시민’, ‘더불어 사는 사회’가 아니라 ‘각자도생’이다. ‘인격’이 아니라 ‘고득점’이다. ‘적성’에 맞는 ‘자아실현’이 아니라 ‘고소득 실현’이다. 적성 따라 의과대학에 진학하는 게 아니잖은가? 돈 때문에 간다는 건 상식이지 않은가? 이게 학생과 학부모들이 원하는 덕목이다. 고득점이 고소득으로 연결되니 말이다. 학교가 출세를 위한 도구로 전락한 지 이미 오래다.

이러니 공교육을 정상화시키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실제 수요자, 소비자로 등장하는 학부모들의 고득점 서비스 요구를 무시하면 ‘교실’은 ‘붕괴’된다. ‘시장으로서의 교실’ 말이다. 시장에서 소비자는 당당하게 클레임을 건다. 거친 클레임에 공급자 교사들이 상처 입는 것쯤은 그들이 감당할 몫이다. ‘교육상품’ 공급자주제에 ‘교사로서의 자존심’을 언급하는 건 사치다. 공급자들의 극단적 선택은 물론 소비자들도 원치 않지만, 그래도 그건 공급자 책임이다. 

이와 같은 시장 상황에서 ‘도덕’은 교과서 안에서만 존재한다. ‘인격’과 ‘적성’은 박물관 전시실에서만 숨을 쉰다. ‘민주주의’는 시험 정답으로서만 의미를 가진다. ‘더불어 사는 삶’은 작문 시간에만 활용되는 소재일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부모들을 탓할 수도 없다.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의 장래를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겠는가? 고소득, 고지위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시 받지 않는 삶 정도는 챙겨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 아니던가? 그러니 어떻게 그들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7차 50만 교원 총궐기 대회가 열렸다. 이날 참가자 수는 주최 측 추산 30만명이다. (사진=독자 조민희 제공)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7차 50만 교원 총궐기 대회가 열렸다. 이날 참가자 수는 주최 측 추산 30만명이다. (사진=독자 조민희 제공)

 

사회개혁 없이 교육개혁 없다

결국 문제는 사회개혁이다. 사회개혁 없이 공교육 정상화는 없다.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사회개혁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렇다면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무엇인가? 다들 안다. ‘내 자식이 무시 받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내 애들이 경제적으로 쪼들리지 않고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화려하게 사는 것까지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저 소박하게, 행복하게 살아주면 다행이다.

그건 바로 사회 안전망이다. 한국은 세계 최고 강도의 경쟁사회이기 때문이다. ‘밀리면 죽는다’는 말이 괜한 엄살만은 아니다. 그러니 이 구조를 깨야 한다. ‘밀려도’ 보편적 삶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먼저 학력 차별 철폐다. 구체적으로는 대졸자와 고졸자의 임금 격차를 없애는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무상교육이 전제되어야 한다. 내 돈으로 공부한 것이 아니니, 대학 졸업했다고 임금을 더 받을 이유가 없게 된다. 대학은 전문직 희망자만 입학하게 해야 한다. 꼭 필요한 사람만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모두가 대학가는 것은 국가 차원에서 엄청난 낭비다. 대학생 수가 줄어들면 대학 무상교육도 충분히 가능하다.

대다수는 적성에 따라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기본적인 삶이 가능하게 해줘야 한다. ‘청년 수당’, ‘국민기본소득’ 같은 안전망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처럼 국가가 기본 생활을 보장해준다면 과도하게 경쟁할 일이 없게 된다. 경쟁이 줄어들면 고득점에 대한 열망도 줄어든다. 

고득점을 향한 맹목적 돌진이 사라질 때, 그때야 비로소 인격도, 적성도, 민주시민도, 자아실현도, 더불어 사는 사회에 대한 성찰도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공교육 정상화의 기초가 마련된다는 말이다.
 

전교조 제주지부와 제주도교원단체총연합회 등 도내 6개 교원단체가 주최한 '9·4 추모문화제'가 4일 제주도교육청 앞에서 열렸다.  (사진=박지희 기자)
전교조 제주지부와 제주도교원단체총연합회 등 도내 6개 교원단체가 주최한 '9·4 추모문화제'가 4일 제주도교육청 앞에서 열렸다.  (사진=박지희 기자)

무엇을 할 것인가?

개혁은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현재의 사회 시스템에서 이익을 보는 자들은 개혁을 허락하지 않는다. 강하게 저항하며 탄압한다. 그리고 그 탄압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데올로기를 동원한다. 거짓이지만 그럴싸해 보이는 논리를 활용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교사는 정치적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말은 맞다. 교육 활동에서 정치적 중립은 필요하다. 그러나 교사도 민주시민이다. 그런 만큼 교육활동 이외의 시공간에서는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정당 활동도 하고, 정치적 발언도 해야 온당한 시민권을 누린다고 할 수 있다. 이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게 아니다. 민주시민으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함일 뿐이다. 

개혁은 정치활동을 통해 이뤄진다. 제도와 정책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다. 그걸 알기에 기득권자들은 교사들의 정치적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교육개혁을 가로막겠다는 의도다. ‘교육의 순수성’, ‘정치 배제’를 얘기하는 것이야말로 선동이다. 

페이스북에 댓글 하나 달았다고 교사의 지위가 위태로워지는 게 현실이다. 교사들을 아예 정치 금치산자(禁治産者: 자기행위의 결과를 합리적으로 판단할 의사능력이 없는 심신상실의 상태에 있는 자) 취급을 한다. 그렇게 기득권자들의 의도대로 길들여진 교사들이 또다시 학생들을 그렇게 길들이라는 의도다.

학교에서 땀과 시간과 뼈를 갈아 넣으며 헌신적으로 교육하는 교사들을 종종 만난다. 하지만 그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교육계 밖으로 나올 수 있어야 한다. 교사들의 정치권 행사 없이 ‘공교육 정상화’는 불가능하다. 

다음으로 ‘교직은 성직이다’라는 말. 이 역시 맞다. 하지만 성직이라고 해서 ‘노동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성직자이면서도 노동자다. ‘교육환경 개선’은 ‘교육 노동환경 개선’과 같은 말이다. 

교사로서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면, 나를 옥죄는 노동조건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학부모들의 도 넘은 간섭을 막으려면 노동환경 개선이 꼭 필요하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고 싶다면 자신의 노동자성을 깨닫고 노동환경 개선에 나서야 한다. 

더불어 노조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필요하다. 30만 결집 집회는 피크일 뿐, 이제 분열책이 들어오고 힘이 빠지면 5만 집회도 어려워진다. 그러면 여론도 관심을 거둔다. 교사들의 일상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다. 그런 일상에서 집회를 지속하긴 어렵다. 

그래서 노조가 필요한 것이다. 힘을 가진 교사 노조가 있어야 싸움을 계속할 수 있다. 지속적이며 조직된 싸움만이 세상을 바꾼다. 그러니 노조에 대한 오해와 불신을 걷어내고 힘을 모아야 한다. 교사는 노동자다. 단결한 노동자가 세상을 바꾼다. 세상을 바꿔야 교육이 바뀐다.

9월 4일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그들의 결의를 격한 가슴으로 응원한다. 

이영권

역사사회학을 전공하고 《새로 쓰는 제주사》, 《제주역사기행》 등을 저술한 이영권 박사는 제주4.3연구소, 제주참여환경연대 등에서 활동한 바 있고, 일선 학교현장에서 역사 교사로 오랜 시간 교편을 잡았다. 2022년부터 제주투데이 논설위원으로 위촉된 이영권 위원의 칼럼은 매달 두번째 금요일 게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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