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자료사진. (사진=LG전자 홈페이지)
텔레비전 자료사진. (사진=LG전자 홈페이지)

반복 주입과 교묘한 편집

식당이든 술집이든 TV가 켜있는 곳은 피한다. 피곤해서 그렇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루 종일 떠든다. 공해도 이런 공해가 다시 없다. 그런데도 업소에선 원하는 손님이 있다며 그 소음을 방치한다. 그러니 내가 알아서 피할 수밖에. 

소음 정도가 아니다. 부지불식간에 서서히 온몸으로 퍼져가는 독이다. 생각 없이 TV 뉴스를 보고 있자면 가짜뉴스도 마치 사실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반복 주입이라서 그렇다. 교묘한 편집이라서 그렇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 암살 미수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어처구니없는 보도가 반복되었다. 종이칼이라는 기사, 자작극이라는 기사, 가벼운 상처만 입었다는 기사 등이 그렇다. 명백한 거짓이다. 그럼에도 사과나 정정 보도는 없다. 기득권 언론의 욕망을 그냥 배설할 뿐이다. 

하지만 그 거짓도 반복해서 주입하면 믿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나치의 선전술이 그랬다. 국민이 믿을 때까지 반복해서 거짓을 쏟아냈다. 

교묘한 편집도 문제다. 팩트를 말하더라도 편집에 따라 고약한 기사가 되기도 한다. ‘흉기 피습, 이재명 재판 연기’라는 제목이 그렇다. 대부분의 기득권 언론이 이런 제목을 달았다. 본질은 단순한 ‘흉기 피습’이 아니다. ‘암살 미수’ 사건이다. 그럼에도 의도적으로 본질을 흐리고 있다.

더 한 것은 ‘재판 연기’라는 워딩이다. 물론 팩트다. 하지만 불순한 의도로 만든 제목이다. 그 워딩을 통해, 무수한 의혹의 대상자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이재명에게 씌우고 있다. 그런 문제 많은 인간이 이 사건을 구실로 재판을 피해 가고 있다는 뉘앙스도 풍긴다. 의도적이다. 역시 ‘악마화’의 일환이다. 오히려 더 교묘한. 

다음 포털에서 '피습 이재명 재판 연기'로 검색했을 때 노출된 언론보도. (사진=다음 포털) 검색일: 2024년 1월11
다음 포털에서 '피습 이재명 재판 연기'로 검색했을 때 노출된 언론보도. (사진=다음 포털) 검색일: 2024년 1월11

 

악마화를 일삼는 언론들

혹자는 말한다. 국민이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고. 물론 일정 부분 맞는 말이다. 생각하는 국민은 다르다. 그러나 하루하루의 바쁜 생계로 성찰할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따라간다. 비판적 사고를 할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엔 의아하게 생각하다가도 반복해서 듣다 보면 그냥 젖어 들게 된다. 이재명 암살 미수 사건도 그런 맥락 속에서 일어났다. 10년 넘게 지속된 이재명 ‘악마화’의 맥락 말이다. 모든 기득권 언론이 이재명 악마화에 매달렸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사실 확인은 필요 없었다. 의혹이면 족했다. 아니 그 의혹마저도 억지로 만들어 낸 것이 태반이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인디언 기우제식으로 국민이 믿을 때까지 악마를 만들면 그만이다. 그런 바탕이 있었기에 이제 이런 암살 시도까지 자행하게 된 것이다. 

나치 시대에 악마가 된 유대인들, 그 유대인들에 대한 자연스러운 학살과 유형이 같다. 히틀러는 무력으로 권력을 장악하지 않았다. 나치 선동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성찰하지 못한 국민이 그에게 표를 줬다.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했다는 말이다. 또한 유대인을 학살한 것은 나치 당원만이 아니다. 성찰 없는 평범한 독일 국민이 그 학살에 앞장섰다.

종합편성채널 CI. (이미지=채널A, TV조선, JTBC, MBN 홈페이지)
종합편성채널 CI. (이미지=채널A, TV조선, JTBC, MBN 홈페이지)

종교가 된 언론

기득권 언론의 영향력이 실제 그렇게 강할까? 그렇다. 거의 절대적이다. 하루하루의 일상을 장악한다. 언론은 현대판 종교다. 많은 사람이 아침 눈을 뜨면 TV를 켠다. 그러고는 어제의 사건 사고를 훑어본다. 새벽 기도를 대체한 하루의 첫 일과다.

출근해서도 사적 시간을 만들어 뉴스를 검색한다. 점심 식사에선 음식과 함께 종편 뉴스가 흡수된다. 잘 소화되어 사고 구조에 영양분을 공급한다. 퇴근해서 들어온 집의 거실에선 다시 TV가 말을 걸어온다. 정점은 종합 뉴스다. 하루를 마치며 신께 드리는 감사 기도가 종합 뉴스 시청이다.

이렇게 반복 주입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착각한다. 주입이 아니라 자주적 판단이라 여기는 것이다. 스스로 성찰하여 형성한 사고 체계라 믿는 것이다. 그리하여 제법 똑똑한 척 시사 문제를 떠벌린다. 하지만 그 발언 내용은 종편이 반복 정리해 준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어리석으나 어리석은 줄 모르는 것, 이것은 자신의 삶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불행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타율적으로 주입된 사고다. 일방적 정보에 반복 노출되어 맹목적으로 형성된 사고일 뿐이다. 중세 인간이 신을 맹목적으로 숭배했듯, 현대 한국인은 종편을 그렇게 숭배한다.

하므로 이제 이 말도 바꾸어야 할 것 같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가 아니라 ‘종편은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이영권

역사사회학을 전공하고 《새로 쓰는 제주사》, 《제주역사기행》 등을 저술한 이영권 박사는 제주4.3연구소, 제주참여환경연대 등에서 활동한 바 있고, 일선 학교현장에서 역사 교사로 오랜 시간 교편을 잡았다. 2022년부터 제주투데이 논설위원으로 위촉된 이영권 위원의 칼럼은 매달 두번째 금요일 게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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