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행방불명 희생자인 김OO과 양OO이 전주형무소에 수감됐던 형행문서가 확인됐다. (사진=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 제공)
4.3 행방불명 희생자인 김OO과 양OO이 전주형무소에 수감됐던 형행문서가 확인됐다. (사진=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 제공)

4·3 당시 재판 절차를 제대로 갖추지도 않은 불법 군사재판을 통해 억울하게 실형을 언도 받은 수형희생자는 2530명이다. 제주도엔 형무소가 없어서 많은 수가 육지부 다른 지역 형무소에서 수감 생활을 했다. 전주형무소의 경우 여성 수형희생자들만 갔던 곳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남성도 구금됐었다는 사실이 기록을 통해 밝혀졌다.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대표 양동윤·이하 도민연대)는 형행문서인 형사사건부와 묘적부 등을 통해 행방불명 희생자인 남성 청년 2명(김OO, 양OO)이 전주형무소에서 수감됐다는 기록을 발견했다. 

이에 따라 지난 1일 도민연대가 전라북도 전주시 효자동 황방산 기슭에서 봉행한 ‘4·3항쟁 제75주년 전주형무소 희생자 진혼제’ 신위 명단엔 기존 여성 수형희생자 132명 외에 이번에 발견한 2명의 이름이 추가됐다.

지난 1일 전라북도 전주시 황방산 기슭에서 봉행된 ‘4·3항쟁 제75주년 전주형무소 희생자 진혼제’ 에서 강미경 4·3도민연대 조사연구실장이 초혼을 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1일 전라북도 전주시 황방산 기슭에서 봉행된 ‘4·3항쟁 제75주년 전주형무소 희생자 진혼제’ 에서 강미경 4·3도민연대 조사연구실장이 초혼을 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강미경 도민연대 조사연구실장에 따르면 김OO과 양OO는 모두 법적 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로 전주형무소에 구금됐던 미결수다. 이 때문에 수형희생자를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직권재심 청구인에서도 제외됐다. 유죄판결을 받은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구금일수에 따른 피해 배보상을 민사 소송 청구할 순 있지만 직권재심과 달리 유족이 개별적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소송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지난해 4·3특별법 전부개정을 통해 직권재심 조항이 생겨나면서 수형희생자의 명예회복이 큰 진전을 이뤄냈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 ‘진전’에 포함되지 못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제주도지사는 여러 공식석상에서 “단 한 분도 억울한 일이 없도록”이라는 다짐을 하곤 하지만 낙관하기는 어렵다. ‘명예회복’은 ‘공식기록’을 가진 이들에게만 유효하기 때문이다. 

양동윤 대표는 현재 4·3의 과제 중 기록을 찾아내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지금 4·3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겠다고 하는데 아직 진상규명이 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며 “특히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해선 ‘죄가 없다’는 것을 밝히는 걸 넘어 ‘누가 죽였느냐, 가해 책임이 있느냐’를 밝혀야 한다. 하지만 정부도, 우리조차도 이 일엔 관심이 없다”고 탄식했다. 

지난 1일 4·3도민연대가 전라북도 전주시 효자동 황방산 기슭에서 ‘4·3항쟁 제75주년 전주형무소 희생자 진혼제’를 봉행했다. 오른쪽이 양동윤 4.3도민연대 대표.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1일 4·3도민연대가 전라북도 전주시 효자동 황방산 기슭에서 ‘4·3항쟁 제75주년 전주형무소 희생자 진혼제’를 봉행했다. 오른쪽이 양동윤 4.3도민연대 대표. (사진=조수진 기자)

이어 “이를 밝힐 수 있는 기록이 없는 게 아니다. ‘헌병대장’ 같은 문건만 봐도 많은 정보가 있다. 하지만 이런 문건은 우리 같은 민간 조사단에서 접근할 권한이 없다”며 정부 차원 노력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도민연대가 4·3유적지 순례나 진혼제를 매해 진행하는 이유는 정부가 관련 역사를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겨주길 염원하는 마음에서다”라며 “벽돌 하나하나 쌓는 심정으로 매년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일 4·3도민연대가 전라북도 전주시 효자동 황방산 기슭에서 ‘4·3항쟁 제75주년 전주형무소 희생자 진혼제’를 봉행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1일 4·3도민연대가 전라북도 전주시 효자동 황방산 기슭에서 ‘4·3항쟁 제75주년 전주형무소 희생자 진혼제’를 봉행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한편 도민연대는 지난 1일부터 오는 3일까지 ‘4·3항쟁 75주년 전주형무소 터 및 희생지역 순례’를 전북 전주시 일대에서 진행하고 있다. 

도민연대에 따르면 전주형무소는 1923년 광주감옥 전주분감에서 개칭한 곳으로 한국전쟁 직전 4·3 당시 1400~1600명을 수용하고 있었으며 재소자 대부분이 좌익 등 정치사범이었다. 현재 전주동부교회가 있는 전주시 덕진구 반촌4·5·6길 일대가 옛 터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작성한 ‘광주 목포 순천 전주 군산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2010년 상반기 보고서)에 따르면 전주형무소 재소자 수는 1949년 8월 1533명, 한국전쟁 직후엔 1900여명까지 이르렀다. 이중 정치범은 1500여명이었다. 한국군에 의한 재소자 학살은 1950년 7월4일부터 20일까지 황방산 기슭과 전주농고 동쪽 기슭 야산 일대에서 벌어졌다. 

학살을 자행한 군부대는 제7사단 3연대와 15연대 헌병대이다. 이후 한국전쟁 중 북한군이 퇴각하면서 전주형무소에 수감된 민간인 500여명을 학살했다. 

4·3도민연대는 지난 1일부터 오는 3일까지 전북 전주시 일대에서 ‘4·3항쟁 75주년 전주형무소 터 및 희생지역 순례’를 진행했다. 사진은 전주형무소 옛 터인 전주동부교회. (사진=조수진 기자)
4·3도민연대는 지난 1일부터 오는 3일까지 전북 전주시 일대에서 ‘4·3항쟁 75주년 전주형무소 터 및 희생지역 순례’를 진행했다. 사진은 전주형무소 옛 터인 전주동부교회.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1일 4·3도민연대는 전북 전주시 황방산 기슭에서  ‘4·3항쟁 제75주년 전주형무소 희생자 진혼제’를 봉행했다. 사진은 전주형무소 재소자 학살 사건 유해발굴이 진행된 황방산 일대. 바퀴가 지나간 듯한 길게 이어진 부분 아래에서 유해 100여구가 엉켜있는 도둑이 발견됐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1일 4·3도민연대는 전북 전주시 황방산 기슭에서 ‘4·3항쟁 제75주년 전주형무소 희생자 진혼제’를 봉행했다. 사진은 전주형무소 재소자 학살 사건 유해발굴이 진행된 황방산 일대. 바퀴가 지나간 듯한 길게 이어진 부분 아래에서 유해 100여구가 엉켜있는 도둑이 발견됐다. (사진=조수진 기자)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