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호텔 시리우스에서 열린 '제주 마을여성 만남의 날: 성평등 마을 네트워킹 데이'에서 김영순 고팡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이 여성 리더십 강의를 진행했다. (사진=양유리 인턴기자)
지난 12일 호텔 시리우스에서 열린 '제주 마을여성 만남의 날: 성평등 마을 네트워킹 데이'에서 김영순 고팡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이 여성 리더십 강의를 진행했다. (사진=양유리 인턴기자)

단 2명. 제주지역의 여성 이장 숫자다. 전체 179명의 이장 중 여성 이장 비율은 1.2%이다. 제주지역의 저조한 여성 대표성은 해결되지 못한 오랜 문제이다.

지난 12일 제주여민회가 주최하고 전국여성농민회연합 제주도연합(전여농), 제주YWCA가 협력, 제주특별자치도가 후원한 ‘제주 마을여성 만남의 날: 성평등 마을 네트워킹 데이’ 행사가 호텔 시리우스에서 진행됐다. 

제주여민회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추진해 온 제주 성평등 마을 조성사업의 경과 및 사업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진행은 강은미 제주여민회 대표가 맡았으며 한라산놀이패의 연극 공연 ‘느영 나영 혼디 만드는 성평등 제주사회’가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지난 12일 호텔 시리우스에서 열린 '제주 마을여성 만남의 날: 성평등 마을 네트워킹 데이'에서 한라산놀이패가 연극 공연 '느영 나영 혼디 만드는 성평등 제주사회'를 선보였다. (사진=양유리 인턴기자)
지난 12일 호텔 시리우스에서 열린 '제주 마을여성 만남의 날: 성평등 마을 네트워킹 데이'에서 한라산놀이패가 연극 공연 '느영 나영 혼디 만드는 성평등 제주사회'를 선보였다. (사진=양유리 인턴기자)

연극은 마을 잔치를 앞둔 가상마을 꽃길리를 배경으로 한다. ‘음식 준비는 왜 늘 여성의 몫인가’라는 한 여성의 의문 제기로 부녀회 여성들과 남성 이장이 갈등을 겪으며 끝내 화해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을 선보였다. 

이어서 정이은숙 제주여민회 정책위원장이 ‘성평등 마을규약 표준조항이 마련되기까지, 3년여의 여정’을 발표했다. 

마을규약 표준조항이란 전통 지역사회 내에서 구성원들 서로 간 합의해 정한 규칙들을 말한다. 성평등 마을규약 표준조항 마련은 제주의 여성대표성 강화와 마을 내 성평등 실현을 위해 마을의 자치규약인 마을운영규약을 성평등하게 개정하는 활동을 이른다. 마을 부녀회가 직접 검토해 지역의 실정에 맞게 조항을 반영한다. 

제주여민회는 2017년 제주여성 100인 원탁회의를 시작으로 제주 여성의 공적 대표성 강화를 위한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2018년 마을 여성대표성 제고를 위한 정책토론회 및 자료집 발간에 이어 2019년에는 성평등 마을규약 표준조항 마련과 공론화를 진행했다. 

지난 12일 호텔 시리우스에서 열린 '제주 마을여성 만남의 날: 성평등 마을 네트워킹 데이'에서 정이은숙 제주여민회 정책위원장이  ‘성평등 마을규약 표준조항이 마련되기까지, 3년여의 여정’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양유리 인턴기자)
지난 12일 호텔 시리우스에서 열린 '제주 마을여성 만남의 날: 성평등 마을 네트워킹 데이'에서 정이은숙 제주여민회 정책위원장이  ‘성평등 마을규약 표준조항이 마련되기까지, 3년여의 여정’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양유리 인턴기자)

성평등한 제주를 위한 여러 발걸음 중 왜 마을을 택했을까. 정이은숙 정책위원장은 “마을은 제주사회의 여성대표성 제고의 밑바탕”이며 “제도화되지 않은 영역으로, 여성 저대표성 해소를 위해선 마을에서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발언했다. 

여민회가 제시한 성평등 마을규악 표준조항에는 모든 주민회원이 ‘마을의 모든 의사결정에서 배제되지 않고, 발언 기회를 균등하게 가질 권리’를 지닌다고 명시돼 있다. 

이를 위한 의무로서 △ 연령·성별 등에 따라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서로 배려하고 존중할 의무 △ 마을 내 인권문제(가정폭력, 아동학대, 노인학대, 성폭력 등) 발생 시 주민회원 누구나 적극적으로 피해자 보호조치 시행 의무를 제안한다. 

더불어 마을 임원조직에서 △ 개발위원회 구성 시 40% 이상을 여성 위원으로 구성할 것 △ 그 외 각종 위원회 구성 시에도 성별과 연령을 고려해 구성할 것 △ 의결권·선거권과 관련해 1인 1표권을 기본으로 할 것을 규정했다. 

해당 사업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제주여민회와 전여농 제주도연합이 12개 마을에서 시범운영했다. 이후 성평등 마을규약이 마련된 곳은 한림3리, 신도1리, 대평리, 금악리, 동일2리로 총 6개 마을이다. 

이 중 금악리는 2021년 마을규약 개정 사업이 종료되었음에도 마을에서 개정 작업을 이어나가 2023년 올해에도 마을규약을 보완했다. 이전에 없었던 △ 균등한 의사결정권 △ 운영위원회 남녀 성비 반반 구성 △ 인권문제 발생 시 적극적 피해자 조치 보호 의무 △ 연령·성별 등에 따라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배려·존중할 의무 등의 조항이 추가됐다. 

정이은숙 정책위원장은 “마을 규약변경 과정과 개발위원회에 여성이 참여하게 되더라도 실제로 개정에 이르기까지 벽에 부딪히는 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인식과 문화의 변화는 느리다. 더디지만 변화한다는 사실은 확실하다”며 성평등 마을 조성사업 확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성평등 마을규약 표준조항 마련을 위해 마을 부녀회와 제주여민회, 전여농 제주도연합 활동가들이 함께 의논하는 모습. (사진=제주여민회 유튜브 갈무리)
성평등 마을규약 표준조항 마련을 위해 마을 부녀회와 제주여민회, 전여농 제주도연합 활동가들이 함께 의논하는 모습. (사진=제주여민회 유튜브 갈무리)

사업 이후 제주여성가족연구원에서는 지난 2021년 성평등규약 시범마을을 중심으로 ‘제주지역 성평등마을 활성화 방안’ 연구를 진행했다. 

해당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사업이 ‘사업 참여자들의 민주적 마을운영의 필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됐으며, ‘여성 대표성 확대 및 일부 마을 규약개정 등 가시적 성과’를 보였다고 평가된다. 또한 ‘남성 참여자들의 성평등 관점 인식 전환 계기’로 작용했다고 전했다. 

다음으로는 김영순 고팡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의 여성 리더십 강의 ‘제주여성, 뭐든지 할 수 있다!’가 이어졌다. 김 이사장은 마을에서 여성의 발언권이 강화되기 위해선 “마을 여성들 간의 소통과 협력을 통해 동의와 제청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제주지역 여성 시민단체들의 연대를 촉구했다. 

지난 12일 호텔 시리우스에서 열린 '제주 마을여성 만남의 날: 성평등 마을 네트워킹 데이'에서 참가자들 간의 네트워킹 시간이 진행됐다. (사진=양유리 인턴기자)
지난 12일 호텔 시리우스에서 열린 '제주 마을여성 만남의 날: 성평등 마을 네트워킹 데이'에서 참가자들 간의 네트워킹 시간이 진행됐다. (사진=양유리 인턴기자)

행사의 마지막은 김연순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이사장의 진행으로 참가자들 간의 네트워킹 시간이 마련됐다. 참가자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자신을 소개하고 마을 혹은 부녀회 활동에서 느꼈던 어려움을 나눴다.

네트워킹 시간에서 공유된 성평등 마을 조성 방안으로는 △ 여성 이장 등 마을 임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 마련 △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 △ 여성 스스로의 참여 및 개선 의지 △ 여성의 발언권 강화 등이 제시됐다. 

한편, 2022년 잠시 멈춰졌던 성평등 마을 조성사업은 2023년부터 제주여민회 주관, 전여농 제주도연합과 제주 YWCA의 협력으로 재기되어 지역사회의 성평등 마을 형성을 위한 노력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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